[장재훈 기자] 이청연 인천시교육감 당선자는 말을 아꼈다.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 이후 교육계에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진보교육감들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다. 교육부와 전교조의 대결구도 속에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인 이 당선자는 사법부의 판결에 유감을 나타냈고 교육부의 무리한 요구는 수용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친정인 전교조에게는 지혜로운 해결을 당부했다.
교육정책과 관련, 그는 수능시험을 자격교사로 전환하고 서울대를 폐지해야 한다는 급진적 주장을 폈다. 대학입시 제도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공교육 정상화를 기대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또 누리과정과 돌봄교실 확대에 따른 재원부담에 대해서는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대통령 공약 사업을 하면서 모든 경비를 시도교육청에 떠넘기는 것은 파렴치한 행위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전국교육감이 한자리에 모이면 이 문제부터 반드시 짚고 넘어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6월21일 토요일, 인천시 주안동에 위치한 교육감직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소탈한 인상이지만 거칠고 단단한 투사의 내공이 강하게 느껴졌다.
전교조 법외노조는 현실 무시한 판결.. 교육부 지침 수용 안해
- 진보교육감 당선자 중에서도 강성으로 분류되는데 동의하는가.
“동의하지 않는다.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이어서 강성으로 보는 것 같은데 사람들이 만들어 낸 선입견일 뿐이다.”
- 스스로를 평가한다면.
“나는 진보적 가치를 중시하는 합리주의자다.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나눔과 배려할 줄 아는 그런 품성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당선인이 말하는 교육의 진보적 가치는 무엇인가.
“미래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창의력과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이웃과 협력하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그동안 낡은 교육시스템은 무조건 줄 세우기를 강요 했고 수능 점수만 중시했다. 하지만 교육은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또 그런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행위가 이뤄져야 한다. 변화하는 교육, 그것이 진보다.”
- 시민들이 변화를 원했다고 보는가.
“우리교육을 이대로 둬서는 절망적이라는 판단을 한 같다. 교육에 새로운 변화의 패러다임이 필요하고 미래가 요구하는 인재를 길러내 달라는 인천 시민들의 열망이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 솔직히 말하자. 보수 후보 분열로 진보진영이 승리한 것 아닌가.
“ 보수 측 분열이 원인일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진보진영의 공정하고 깨끗한 단일후보 선정이 시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것 같다. 우리의 단일화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 이후 통제중심 교육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표심에 반영됐다고 본다.”
‘평교사 교장 만들겠다’..내부형 공모제 적극 검토중
- 인수위원회 명칭이 ‘행복교육준비위원회’다. 행복교육 이란 박근혜정부 교육 슬로건 쓴 이유가 뭔가.
“우리 교육이 행복해 져야 한다는 데 박대통령이 쓰던 말이면 어떤가. 난 그런 거 따지지 않는다. 아이들 교육시키는데 진보가 어디 있고 보수가 어디 있으며 여야 구분이 왜 필요한가. 선거 때는 유권자들의 선택을 돕기 위해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서 서로 차이점을 찾아내고 강조하고 그랬지만 당선된 지금은 인천시민의 교육감이다.”
- 지필시험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학생들의 학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모든 지필시험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다. 일제식 지필시험, 객관식중심의 지필시험, 1~2점으로 비교하는 지필시험을 폐지하도록 학교현장에 강하게 권고 할 것이다. 이 정부가 추진하는 자유학기제도 지필시험을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다만 무조선 시행하기 보다는 현장에서 충분히 적응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실시하고 대안적 평가도 모색할 생각이다.”
- 평교사도 교장이 될 수 있는 내부형 공모제는 시행할 것인가.
“내부형 공모교장은 인천에서 한번 도 없었던 시도다. 지금 인수위에서 검토중이다. 가능한 방향으로 적극 검토하고 있다.”
- 법외노조 판결을 받은 전교조가 조퇴 투쟁을 벌인다고 한다. 이에 대한 입장은.
“글세, 내가 그 질문에 답을 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 왜 없다고 생각하나.
“난 전교조 조합원도 아니고... 교육감 당선인으로서 입장을 말하기는 좀 그렇다.”
- 교육감에 취임하고 나면 얼마든지 부딪힐 수 있는 문제다. 교육감은 사(使)를 대표하기 때문에 직접 연관이 있다.
“교육부 지침이 있겠지. 일단 교육부 지침을 따라야겠지만 그러나 (지침을) 판단컨대 바르지 않다고 생각되면 교육감으로서 제동을 걸 것이다. 교육부가 시키는 대로 무조건 하지는 않겠다. 지역 교육실정과 여건에 맞춰 책임 있는 행정을 하는 것이 민선교육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전교조와 관련된 부분에서 내가 가장 강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것은 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는 것이다.”
-언론과 인터뷰서 법외노조 판결을 상식 밖 결정이라고 비판했는데.
“해직교사 9명 때문에 6만명이 가입한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드는 것은 상식 밖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전교조 해직교사 9명은 희생자다. 그 사람들이 개인비리로 희생된 게 아니라 민주주의 와 전교조 활동을 통해 희생된 사람들이다. 당연히 노조에서 구제하고 보호해 줘야한다.”
- 퇴직하면 노조 조합원 자격을 상실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 전교조는 엄연한 현실이다. 6만 조합원이 있고 인천에도 3천 여명에 이른다. 사소한 것을 트집 잡아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바람직한 처사가 아니다. 지금 보면 함께 끌어안고 가기 보다는 (전교조를)무조건 내치고 보자는 식 같다. 법과 괴리된 부분 있다면 법을 보완하고 또 함께 고민하면서 다른 방법 찾는 것이 힘 있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 전교조는 법원 판결을 따라야 하나 아니면 불복해야 하나.
“ 전교조 자체 판단에 맡길 일이지 내가 답변할 상황은 아니다. 이러쿵 저러쿵 아야기 하는 것은 맞지 적절치 않다. 지혜롭게 풀어나가길 바란다.”
- 진보진영이 지방교육권력을 장악함으로써 교육부와 사사건건 충돌 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데.
“언론이 갈등을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 (웃으며)그러면 재미있나. 진보교육감 등장은 거저 얻어진게 아니라 시민들이 선택한 시대정신 이다. 한 두명도 아니고 무려 13명이나 된다. 이게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정부가 민심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자기들(정부) 마음에 안 든다고 무조건 누르려 하기 보다는 낮은 자세로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누리과정- 돌봄교실 재정부담 왜 교육청에 떠넘기나 분통
- 교육감들의 영향력이 커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교육부에 요구하는 것도 많을 텐데.
“우선 아주 어려운 것이 교육재정이다. 누리과정, 초등 돌봄교실이 문제인데 이건 대통령 공약사항이다. 그런데 공약을 이행하면서 생색은 정부가 내고 재정 부담은 온전히 시도교육청에 떠넘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인천교육청은 연간 2028억원의 예산을 이들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연간 교육청 총예산 2조7천억원중 3500억원 정도를 가용 재원으로 쓸 수 있는데 여기서 2028억원을 빼고 나면 돈이 거의 없다. 사실 교육청들은 이렇다 할 수입도 없는데 국가가 책임져야할 사업까지 떠 안게 되니 지방교육재정이 파산 날 지경이다. 전국 17개시도교육감들이 만나면 제일 먼저 이 부분에 대한 대책을 교육부에 촉구할 생각이다.”
- 교육정책에 대한 개선 요구는.
“무엇보다 대학입시 정책에 대한 변화를 강력히 주문할 것이다. 아마 수능시험 자격고사화 같은 문제에 교육감들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까 싶다. 아시다시피 대학입시는 우리교육의 블랙홀이다. 어떤 명분과 가치도 입시 앞에서는 설득력을 잃는다. 공교육을 황폐화 시키는 주범인 대학입시 제도가 바뀔 수 있도록 대안 마련을 강력히 요구하겠다.”
- 서울대 폐지론이 진보교육감들 사이에 거론되고 있다. 어떤 입장인가.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대학 서열화는 없어져야 한다. 파리 1대학, 2대학..하는 것 처럼 서울대와 같은 대학들이 전국에 세우고 네트워크를 이뤄야 한다. 일종의 고등교육 평준화다. 그래야 전국이 고루 균형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일부는 서울대 폐지라는 말이 나오니까 무조건 거부 반응부터 보이는데 이해할 수 없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학벌주의를 타파하고 능력중심 사회를 만들자면서 서울대의 독점적 지위를 없애자는 주장에는 반대한다. 이율배반 아닌가.”
- 7월1일 취임이다. 어떤 교육감이 되고 싶은가.
“ 교육감에게 필요한 것은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이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원하는 교육감은 책상에 앉아서 결재만 하는 교육감이 아니라 현장 친화적 행보를 중시하고 소통 하는 교육감이라고 생각한다.”
- 4년 뒤 인천교육은 지금과 어떻게 달라지나.
“혁신학교가 정착돼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학교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교육관료들이 많아져 있을 것이다.”
- 전임교육감의 정책 중 잘 된 것과 아쉬운 것을 꼽는다면.
“효(孝) 교육을 꾸준히 강조한 점은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관행적인 부정과 비리는 인천교육을 부끄럽게 했다.”
- 교육현장 의견을 청취하는‘경청투어’를 가졌는데 느낀 점은.
“ 얼마 전 만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40여년 교직생활 동안 교육감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었던 게 이번이 처음이라며 정말 고맙다고 하더라. 자신이 제안한 정책을 들어주고 안 들어주고 문제가 아니라 교육 책임자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었던 게 너무 감사하다며 두 손을 꼽 잡는데 나도 가슴이 찡 했다. 그분 눈빛이나 말씀 자체가 듣기 좋으라고 하는 의례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나도 그분께 ‘교육감 당선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다.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된다. 앞으로도 난 늘 이렇게 할 것이다’ 라고 약속드렸다. 교육감실 문 활짝 열어놓고 시민들과 언제든지 차 한잔 나눌 수 있는 ‘착한 교육감’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