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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리그' 충남 삼성고 임직원 자녀가 70%인 귀족학교

인서비1 2013. 11. 8. 17:10

'그들만의 리그' 충남 삼성고 임직원 자녀가 70%인 귀족학교

한겨레 | 입력 2013.11.08 15:20

[한겨레][이슈추적] 삼성이 충남 아산 인근 4계열사 직원 위해 추진 중인 '충남삼성고' 1인당 연간 학비는 842만원, 70%를 임직원 전형으로 뽑기로

'삼성 재벌이 과연 특권 귀족학교까지 세워야 하는가?'

'노동탄압·인권탄압도 모자라 공교육 파괴까지!'

지난 10월의 마지막 날. 서울 서초동에 있는 삼성 본사 앞에 낯선 구호가 등장했다. 언뜻 보면 하나같이 글로벌 기업인 삼성과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공교육 관련 내용들이었다. 길거리를 지나는 삼성 직원과 행인들의 어리둥절한 시선이 피켓을 든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장)에게 쏠렸다. 그는 삼성에 항의하려고 1인시위에 나선 다섯 번째 교수다. 교육운동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와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소속 다른 교수들도 앞서 하루씩 릴레이 시위를 벌였다.

"'삼성이 해봐라' 제안해서 만든 것뿐"

이들이 성토하는 대상은 삼성이 내년 3월 충남 아산시 탕정면에 문을 열기로 한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충남삼성고등학교'다. 아산시 인근에 본사나 공장을 두고 있는 삼성디스플레이·삼성전자·삼성SDI·삼성코닝정밀소재 등 4개 계열사가 지난해 7월부터 공동으로 설립을 준비해온 학교다. 삼성고를 운영할 학교법인 충남삼성학원의 이사장은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맡았다. 삼성은 총 1천억원 규모의 투자를 통해 삼성고를 적극 지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고가 도마 위에 오른 배경에는 자사고라는 특수성이 있다. 자사고는 학교법인이 정부의 지원 없이 학생 등록금과 재단 전입금만으로 운영하되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특수 사립학교다. 등록금도 일반고의 3배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러다보니 자사고가 성적이 우수하고 부모의 경제적 능력도 뒷받침되는 학생들을 독점한 뒤 입시 과목 위주로 가르치면서 고교 서열화를 부추기고 공교육을 마비시킨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삼성이 설립하는 자사고에 각계각층에서 우려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유독 비싼 학비도 '귀족학교' 논란을 키우는 데 한몫 하고 있다. 삼성고의 학생 1인당 연간 학비는 842만원(2014년 학교회계 세입세출 명세서 기준, 입학금·수업료·기숙사비·식비·방과후교실비 등 포함)으로 웬만한 대학의 등록금 수준이다. 2년 전 통계이긴 해도 전국 자사고의 평균 학비 659만원(2012년 기준)보다도 180만원이나 비싸다(정진후 정의당 의원).

삼성 쪽은 억울하다는 분위기다. 자녀 교육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서 근무하는 임직원들의 생활 안정을 위해 불가피하게 삼성고를 설립했다고 삼성은 주장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아산 인근에서 근무하는 3만8천 명의 임직원 자녀 가운데 내년에만 580명 정도가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이 다닐 고등학교가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도 상당수 임직원 자녀는 부모와 떨어져 수도권에서 학교를 다니거나, 부모와 같이 살더라도 1시간 넘게 통학하고 있다. 몇 년 동안 교육청에 학교 설립을 요청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교육청에서) '삼성이 해봐라'라고 제안해서 (학교를) 만들게 된 것뿐이다."

그러나 삼성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도 있다. 단순히 임직원 자녀를 수용할 만한 고등학교가 필요했다면 일반 사립고를 설립할 수도 있었음에도, 삼성은 자사고를 선택했다. 여기엔 학생 선발권이 있는 자사고는 일반 사립고와 달리 임직원 자녀에 대한 입학 특례가 보장돼 있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삼성은 이런 자사고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삼성고는 학년당 모집정원 350명 중 70%인 245명을 임직원 자녀 전형으로 뽑기로 했다. 충남 지역의 삼성디스플레이·삼성SDI·삼성코닝정밀소재·삼성전자 등에서 1년 이상 재직한 임직원의 자녀가 주요 대상이다. 충남의 일반 학생에게 허용된 인원은 정원의 10%(35명)에 그친다. 나머지 20%(70명)는 의무적으로 뽑아야 하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에 자동 할당됐다.

입학설명회, 임직원 명함 있어야 입장 가능

삼성고가 정한 '임직원 자녀 비율 70%'는 다른 기업이 세운 자사고와 비교했을 때도 높은 편이다. 이 수준으로 임직원 자녀를 특별 선발하는 곳은 포스코의 광양제철고 정도다. 나머지는 정원의 15~60%를 임직원 자녀에서 뽑고 있다. "기업이 임직원 복지를 위해 세운 학교는 입학 정원의 일정 비율을 종업원 자녀로 선발할 수 있다"고 정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근거해서다. 삼성디스플레이 관계자는 "내년에 신입생 정원의 70%인 245명을 임직원 자녀에서 선발하더라도 전체 자녀 580명의 40%에 불과하다. 기업이 운영하는 자사고와 비교해봐도 과도한 수준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임직원 자녀를 지나치게 배려한 전형은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됐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상희 의원(민주당)은 10월24일 충남교육청을 대상으로 한 국감에서 "삼성고 입학설명회에는 (삼성) 임직원 명함을 갖고 있어야 입장이 가능한데다 선발 기준이 임직원 자녀가 70%나 차지하는 등 현대판 교육신분사회를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삼성고가 들어설 아산시의 지역사회에서도 우려가 높다. 입시 명문고로 꼽히는 자사고가 처음 생긴다 하더라도, 지역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기회는 극히 적은데다 지역의 공교육 분위기마저 한번에 망가뜨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평등교육실현 아산학부모회'의 박준영 집행위원장의 비판이다. "지금까지 아산시에는 자사고가 없었고 특목고도 외고 하나밖에 없었다. 그 덕에 비평준화 지역이긴 해도 학교 간 서열화가 아주 심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삼성고가 들어오면 다른 학교들은 바로 2류, 3류로 전락할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돈이 없고 부모가 삼성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집 앞에 생긴 학교에도 못 가는 아이들의 심정은 어떠하겠나."

물론 자사고를 설립한 기업은 삼성만이 아니다. 현재 전국 49개 자사고 가운데 14개가 민간기업이나 공기업이 출연한 학교법인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들 중 포항제철고(포스코)·광양제철고(포스코)·현대청운고(현대중공업)·인천하늘고(인천공항공사)·하나고(하나금융그룹) 등 5개 학교는 삼성처럼 모기업 임직원의 자녀를 일정 비율로 뽑고 있다. 2015~2016년 개교를 목표로 자사고 설립을 추진 중인 포스코(송도국제도시)·현대제철(충남 당진시)·한국수력원자력(경북 경주시) 등도 입학 전형에 임직원 자녀 특례를 둘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기업들이 예전엔 사회공헌 활동의 하나로 일반 사립고를 설립·운영했다면, 이젠 임직원에게 '자녀의 명문고 입학'이라는 선물을 주기 위해 자사고를 세우고 있는 것이다.

정원 80%까지 뽑을 수 있도록 고친 '자사고법'

이는 정부가 바라던 결과다. 이명박 정부는 '고교다양화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전국에 자사고 100개를 설립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부 지원 없이 설립·운영되는 자사고에는 일반 사립고보다 많은 재정이 들어가는 탓에 선뜻 나서는 학교법인이 많지 않았다. 정부는 재정이 튼튼한 기업에 눈을 돌렸다. 기업에도 자사고 운영은 임직원의 복지를 확대하고 충성심을 높인다는 점에서 손해 볼 게 없었다. 정부는 기업의 자사고 설립을 유도하려고 법까지 뜯어고쳤다. 자사고의 전신인 자립형 사립고(2002년 시범 운영)에선 임직원 자녀 비율이 20%로 제한됐지만, 2010년 바뀐 현행 자사고에선 학교 교장이 교육감의 승인을 얻어 일정 비율을 정하도록 돼 있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에 대한 의무 비율(20%)을 고려하면, 정원의 80%까지도 임직원 자녀만 뽑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업에 과도한 혜택을 주는 자사고는 일반 자사고에 비해서도 부작용이 크다. 송기춘 교수의 지적은 이렇다. "삼성고는 학생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부모의 사회적 지위나 신분에 따라 학생을 선발한다는 점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을 침해한다. 또 삼성고가 명문 자사고가 되면 임직원 자녀가 대학 입시를 치를 때도 유리해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학벌 위주의 사회에서 자녀가 부모의 사회적 지위나 신분을 세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사회적 특권계급을 창설하는 것이다." 그들만의 세상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서보미 기자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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