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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6만명이 학교를 떠났다

인서비1 2012. 12. 29. 03:05

올해도 6만명이 학교를 떠났다

가출소년 김군 “아빠 보면 짜증, 선생님은 때려서 싫어요”


고교자퇴 염양 “친구와 무한경쟁 강요, 견딜 수가 없었죠”
경향신문|박주연 기자|입력2012.12.28 21:54|수정2012.12.29 00:34

한눈에도 앳돼 보였다. 말은 짧고 거칠었다. 지난 18일 대전에서 만난 김영훈군(14·가명)은 아빠를 만나면 짜증나고, 선생님은 때려서 싫다고 했다. 담배와 폭력에도 절어 있었다. 외롭고 불만으로 가득찬 곳, 그가 말하는 세상이었다.

"쌓이는 것은 어떻게 풀어요?"

"짜증나거나 사는 게 싫어지면 담배를 피우고 깝죽대는 애들을 때렸어요. 몇 달 전엔 정말 죽고 싶은 날도 있었어요. 그날 용기가 나지 않아서 길에서 마주친 중3 학생을 때려줬어요."

집 밖으로 돌기 시작한 것은 3년 전이다. 어렸을 때 아빠가 재혼하고 조부모와 살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빠 집에 들어갔지만, 정이 붙지 않았다고 했다. 새 엄마가 낳은 동생들만 사랑 받는 것 같아 반항심이 생겼다.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 힘든 학교는 흥미를 잃었고, 빠지는 날이 많았다. 아는 형들과 담배 피우고 게임하는 게 즐거웠다. 지각·결석·폭력·흡연이 잦은 김군을 학교는 매로 다스렸다. "싸대기는 기본이죠. 주먹으로, 몽둥이로 온몸을 맞았어요. 휴대폰요? 때릴 때는 선생님이 아이들 휴대폰을 압수했어요. 걸리면 X될 테니까요."

고교 2학년 때 자퇴하고 대안학교 '로드스꼴라'에 다니는 염현진양(18)이 지난 4월 남미 볼리비아의 소금사막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공식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로드스꼴라는 여행으로 인문학을 가르치는 비인가 대안학교이다. | 로드스꼴라 제공

중학교에 진학한 후 얼마 안돼 그는 가출했다. 아는 형 집에 얹혀살며 택배 알바를 했다고 한다. 말끝마다 식식거렸지만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는 14세의 여림은 보였다. 밤마다 불안하고, 언젠가는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새해에 친구들은 중3에 오르지만 그는 중1에 멈춰 있다. 2012년은 그에게 1년 유급 처분을 받은 '바닥'이고 '방황'이었다.

지난 17일 서울에서 만난 염현진양(18)은 고교 2학년에 올라가는 날 자퇴했다고 한다. 입시가 전부인 학교, 성적표만 나오면 경계하고 서먹해지는 친구들도 싫었다는 것이다.

"공부 못하는 내가 왜 학교에 나와야 하나? 왜 살아야 하나? 자괴감이 컸어요. 선생님은 툭하면 '네 옆사람을 봐라. 친구 같지? 수능날은 네 라이벌'이라고 했어요. 무한경쟁의 스트레스! 눌린 듯 얹힌 듯 답답했어요."

염양은 학교에서 학기 초에 미래에 뭘 하고 싶으냐고 설문지를 돌릴 땐 코웃음이 나왔다고 했다. "모순이죠. 그런 걸 생각해볼 잠시의 여유도 안 줬잖아요." 학교를 떠났다. 방황하다 얘기를 듣고 찾아간 곳이 비인가 대안학교 '로드스꼴라'였다. 여행 다니며 인문학을 배우고, 탈학교 아이들끼리 상처도 보듬고, 뭘 할지 꿈도 생각하기 시작한 곳이다. 반전을 이룬 2012년, 그는 시외버스를 타거나 공연장에 들어갈 때 여전히 할인을 받지 못하는 '비인가 학생의 신분'이 서럽다고 했다.

6만명의 10대가 해마다 학교를 떠나고 있다.

2012년 교육과학기술부 조사에서 지난해 3월부터 올 2월까지 초·중·고에서 학업을 중단한 학생은 5만9165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학생의 0.85%다. 입시 스트레스가 큰 고교생은 1.7%인 3만3057명이 학업을 멈췄다. 2010~2011년 조사에서도 학교를 떠난 아이들이 연간 6만명을 웃돌았다. 전문가들은 내년 조사에 잡힐 올해 탈학교 행렬도 줄지 않았다고 말한다. 정부 차원의 추적·실태조사 한번 없이, 마땅히 갈 곳도 없이 연례행사처럼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관련기사 11·12면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윤철경 선임연구위원은 "가족은 해체되고 학교는 경쟁·서열만 부추기고 있다"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아이들이 은둔·자살 같은 자기공격이나 폭력·왕따 같이 남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아무 대책 없이 학교 밖으로 축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