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음악

노르마 정결한 여신

인서비1 2012. 9. 22. 08:40

일단, 노르마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기원전 50년 무렵의 갈리아 지방이다. 로마의 지배아래 있는갈리아인들은 그 대사제인 오로베소의 통솔하에 남몰래 반역을 획책하고 있다.그러나 수령의딸이며 그들이 믿은 드뤼드교의 성스러운 여사제인 노르마는 엄격한 계율을 어기고 로마 총독인 폴리오네와의 사이에 두 아이가 있는 처지이다. 한편으로는 폴리오네는 지금 노르마에게서 마음이 떠나 젊은 수녀 아달지자에게 이끌려 그녀와 이 곳을 나가 로마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꿈 꿈고 있다.그런 두사람 사이를 알고 몹시 분노하는 노르마는 지금까지는 사랑하는 폴리오네 때문에 갈리아인들의 반역심을 눌러 왔으나 드디어 그 신도들에게 로마에 대해 싸울때가 왔다고 징을 두들긴다.

로마를 무찌르자고 의기양양하게 외치는 갈리아 사람들. 그때 아달지지를 데리고 도망치려고 숲속으로 들어갔다가 붙잡힌 폴리오네가 잡혀온다. 그에 대한사랑을 버릴 수 없는 노르마는 이 싸움의 희생물로서 그를 죽이려고 덤벼드는 신도들을 제지하고 만약 아달지자를 잊고 자기에게 돌아오면 하고 설득하지만 그의 대답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질투에 사로잡힌 그녀는 자기들 속에 그를 인도한 배반자를처형할 준비를 하라고 명령한다.그러나 그입에서 나온 배반자의 이름은 뜻밖에도 그녀 자신의 이름이었다. 노르마는 폴리오네의 아달지자에 대한 사랑이 순수함을 깨달았던것이다.일동에게 진짜 죄가 많은 여자는자기라고 고백하고 스스로 죽을 결심을 한 노르마는 두자식을 아버지에게 맡기고 화형대로 올라간다. 그떼야서 그녀의 깊은 사랑을 깨달은 폴리오네도 신도들이 분노해서 소리치는 가운데 불로 뛰어든다.


마리아 칼라스가 유명하고 그외에는  '벨 칸토의 여왕' 존 서덜랜드와 '섬세한 메싸 디 보체'라고 불리는 몽셰라 카바예 라고 할 것 입니다.

 

아름다운 가창과 인간미가 넘친 노르마를 들려준 조안 서덜랜드

 

여제사장의 위엄과 기품이 느껴지는 몽셰라 카바예

 

 

♬10. Casta Diva


마리아 칼라스..


 
♬정결한 여신이여

Norma 노르마
Casta diva, che inargenti 정결한 여신이여, 이 고귀하고
queste sacre antiche piante, 신성한 나무들에 비추는 은빛처럼
a noi volgi, il bel sembiante, 감추어지지 않은 사랑스러운 얼굴을
senza nube e senza vel. 우리를 향하소서.

Oroveso, Coro 오로베조, 합창
Casta diva, che inargenti, ecc. 고귀하고 신성한...
Norma 노르마
Ah! Sì! 아!
Ah!

Norma 노르마
Tempra, o Diva, 진정하소서, 아 여신이여,
tempra tu de'cori ardenti, 진정하소서 그대의 불타는 마음을,
tempra, ancora lo zelo audace. 열정적인 당신의 사람들을.
spargi, in terra, ah, quella pace 부드럽게 감싸 주소서
che regnar tu fai nel ciel, ecc. 그대를 통해 하늘이 지배하는 이 땅을...
Oroveso, Coro 오로베조, 합창
Diva, spargi, in terra, ecc. 여신이여, 빛을 비추소서...





로마와 싸우고 싶지않은 노르마의 마음과 다른
오로베조와 백성들의 바램을 읽은 여사제 노르마는
그녀의 힘만으로는 로마의 속국에서 벗어나려는
그들의 소망을 누를 수 없다고 느끼자
자신이  모시는 여신의 모습을 위엄있게 표현하는 노래를 하여
여신의 신탁을 구체화해서 그들에게 보여주며
이런 분의 신탁이니 따를 것을 강권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고상함을 손상하지 않으며
모시는 신의 위엄을 드러내야 하는
지극히 어려운 노래여야 하는데
너무도 자연스럽도록 그러한 양면을 잘 살려내는 노래가  바로 이 곡이다.
서러운 마음조차 믿음의 힘안에 감추는
여사제 노르마의 모습과
그녀가 표현하고싶은 여신의 모습이
절제되어 온전한 종교적 힘으로 표현된 아름다운 곡.

신앙은 무엇이던가?
내가 즐거운 마음에서 그를 믿고 따르며
나의 온전하지못함의 위로를 받는 행위 아니던가?
하지만 그래서 그 신앙을 지키기는 쉽던가?
언제나 다 따르지 못하는 나의 나약함과
나의 박약한 의지의 고통은 없던가?

자신의 신앙을 못지키는
고상한 한여인의 고백의 노래가 어찌도 이리 아름답던지....
우리는 고통에 비명치고 발버둥치며 더욱 추해지거늘
자신의 인간성
자신의 도덕성을 부셔버리지 않으며
슬퍼하는 이 고상함은
어느종교의 탄탄한 신앙보다도
더욱 아름다운 인간의 가치 아니겠는가?

심형이 그러시더군요.
마치 마리아 칼라스를 위해 이곡이 쓰여진듯
잘 맞는 고운 옷처럼 편안한 위로가 느껴진다고
그양반의 느낌 그것에 나도 동감한다.

이러한 이 장면, 이곡에 대한 이해가
어디 지식이나 지혜로 이야기 할 수 있을까보냐?
그녀의 고통스러웠을 인생에 대한 사랑 아니겠는가?
그것이  바로 청강하는 학생을 위해 그들이 쉬 이해하고 들을 수 있게
강의를 해주는 선생님들의 마음처럼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가 쉬이 어려운 장면을 이해하게 해주어
감사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는 뜻이다.

내가 그런 종교적갈등조차 겪어서 알겠는가 마는
내가 이같은 나의 사랑과 종교가 갈등하는 고통을
겪기나 해봤을까마는
마리아 칼라스의 이곡을 들으면
그런 장면의 이해와
그러한 노르마를 아름답게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된다는 거다.

아시지요?
나라를 배신하고,
백성을 저버리고,
애비뜻을 무시하고,
자신의 아이들을 죽이려하고
자신의 사랑까지 처단하고싶었던
인간의 모든 배덕의 모습으로 힘들던 여인 노르마.
무엇으로 용서받을까 싶은 그 여인
노르마의 죽음을 슬퍼하게 하고 안타깝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신앙
이러한 그녀의 품위
이러한 인간성이 가져오는
인간 모두의 가냘픈 한계처럼  받아져 찬란히 슬퍼지는 것 아니던지....

 


 

 

 

 



 

 

 

 

 

 

 

 

 

 

 

 

에디타 그루베로바... 

 

 

 

 

여제사장의 위엄과 기품이 느껴지는 몽셰라 카바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