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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독방 같은 동물원에 갇혀 ‘이상 행동’

인서비1 2011. 4. 11. 22:21

 

북극곰, 독방 같은 동물원에 갇혀 ‘이상 행동’

경향신문 | 최명애 기자 | 입력 2011.04.11 20:12

 
지난달 19일 독일 베를린 동물원의 '스타', 북극곰 크누트가 숨졌다. 600여명의 관람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뒷걸음질로 수영장에 빠진 크누트는 몇 분 뒤 결국 시체로 떠올랐다. 동물원 북극곰 평균 수명 30년에 한참을 못 미치는 4살이었다. 사인은 뇌염으로 밝혀졌으나 '동물원 스트레스'가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북극곰과 같은 대형 포유류를 동물원에 전시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 동물원에는 서울대공원이 위탁 전시 중인 1마리를 포함, 모두 6마리의 북극곰이 있다.

◇ 절반 이상이 '이상 행동' = 영국 동물단체 '본 프리'에 따르면 북극곰은 "동물원에서 전시하기 가장 부적합한 동물 중 하나"다. 활동 범위, 기후 등 야생에서의 환경이 동물원 환경과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이상 행동'이 타 동물에 비해 많다.

국제 환경단체인 동물관심연구·교육협회(ACRES)가 일본 동물원 24곳의 북극곰 46마리에 대해 조사한 결과 33마리가 일정한 지점을 반복적으로 오가거나 끊임없이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등의 이상 행동을 보였다. 1990년대 초반 영국에서 실시한 조사에서는 5개 동물원의 북극곰 모두가 이상 행동을 보였고, 2003년 조사에서는 유럽 동물원의 51%가 이상 행동을 보이는 북극곰을 1마리 이상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극곰이 이상 행동을 보이는 것은 활동 영역이 지나치게 좁아진 데 대한 스트레스 때문으로 분석된다. 야생 북극곰의 활동 영역은 8만290㎢이지만 동물원 북극곰은 500㎡ 이하의 좁은 공간에서 평생을 보내야 한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동물의 이상행동은 실제 활동 영역과 현재 영역의 크기 차이가 큰 영향을 미친다"며 "북극곰은 활동 영역이 100만분의 1로 줄어들어 이상행동 발생도 높다"고 밝혔다.

기후 차이도 북극곰의 동물원 생활을 힘들게 하고 있다. 싱가포르 동물원 조사에서는 북극곰이 전체 시간의 35%가량을 체온을 식히기 위해 혀를 빼문 채 지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동물원에서 태어나는 북극곰의 생존율은 야생의 절반에 불과하다. '본 프리'에 따르면 새끼의 53%가 한 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야생에서 생존 훈련을 받지 못한 동물원 어미곰이 새끼를 방치해 죽게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 해외는 북극곰 전시 재고 = 국내에는 능동어린이대공원 2마리, 에버랜드 동물원 2마리, 대전 오월드 1마리 등 모두 5마리의 북극곰이 동물원에서 살고 있다. 서울대공원은 우리나라 1호 북극곰 '민국'이 2008년 30세(추정나이)의 노령으로 사망한 뒤 지난해 말부터 러시아에서 2살난 아기곰 '삼손'을 위탁받아 전시하고 있다.

철제 우리에서 최근엔 수영장이 딸린 사육장으로 환경이 개선되고는 있지만 환경·동물단체는 아직도 개선의 여지가 많다고 지적한다. 조혜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원래 자연과 전혀 다른 콘크리트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곰들이 여전히 이상 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운동연합이 2004년 동물원 보고서에서 지적한 '녹조 낀 북극곰' 문제도 여전하다. 녹조는 야생 북극곰에는 없는 현상으로 사육장 기온이 높아 북극곰의 털 속에 녹조류가 번식해 나타난다. 현재 기온이 북극곰에겐 높다는 의미다.

1990년대 이후 유럽에서는 북극곰 전시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지고 있다. 영국은 동물원 6곳이 북극곰 전시를 중단해 현재는 에든버러 동물원 1곳에만 북극곰이 남아 있다. '자연에 가까운 환경을 제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북극곰을 사육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판단에서 북극곰 번식을 중지하고, 북극곰이 사망하면 추가 도입하지 않는 것이다. 스위스의 바젤 동물원취리히 동물원도 북극곰 전시를 중단했다.

우리나라는 북극곰을 추가 도입할 계획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2월 러시아로부터 북극곰 한 쌍을 기증받기로 함에 따라 서울대공원에 새 북극곰이 들어오게 된다.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동물원 북극곰은 기후변화의 심각함을 알리고 멸종위기종 보존을 위해 꼭 필요하다"며 "쿨링 시스템 도입 등 전시 환경 개선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북극곰 크누트

독일의 '국민 애완동물'. 2006년 12월 독일 베를린 동물원에서 태어났다. 서커스 곰 출신의 어미곰이 외면하는 바람에 버려진 크누트는 인큐베이터에서 44일을 보내고 사육사가 우유를 먹여 키운 덕에 간신히 살아났다. 첫 야외 전시장에 등장한 날엔 400여명의 취재진이 운집했다. 연예잡지 '베니티 페어'의 표지 모델로 실렸고, 독일 우표에도 등장할 만큼 유명세를 탔다.

< 최명애 기자 glaukus@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