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society

[벼랑 끝의 대학생들] "학원 가는 친구가 부럽다… 2류 인생 될까봐 두렵다

인서비1 2011. 3. 1. 10:20

 

[中] 대학사회의 양극화
교내 고급식당 속속 입점 "구내식당 가면 빈곤층"
알바에 쫓기다 우울증… 생활고에 범죄 빠지기도

조선일보 | 김성민 기자 | 입력 2011.03.01 03:22 | 수정 2011.03.01 09:45

 

"풍족한 환경의 친구들을 보면 견디기 어려울 만큼 화가 날 때가 있거든요. 다 때려치우고 싶고…."

아르바이트로 생활한다는 서울의 한 사립대 졸업반인 정모(24)씨는 지난달 28일 기자와 만나 "솔직히 생활비, 등록금 걱정하는 대학생들 다 나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차를 몰고 학교에 오는 학생들을 보면 적개심이 생길 때도 있다"고 했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대학생들의 생활이 극과 극으로 갈리면서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생계를 직접 꾸리면서 학교생활을 하는 대학생들이 느끼는 상대적인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

↑ [조선일보]28일 오후 한 서울대 학생이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자취방에서 공인회계사 문제지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그는“생활비도 빠듯한데 학원비까지 마련할 길이 없어 혼자 공부하는 데 어려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특히 대학 교내에 몇만원대의 고급 식당들이 들어서면서 구내식당에서 몇 천원짜리 밥을 먹는 학생들의 반발을 사고 있을 정도다.

이화여대 의 경우 교내에 '케세이호'라는 고급 중식당이 들어와 있다. 런치 메뉴가 2만4000원에서 4만원까지 한다. '닥터로빈'이란 스파게티 식당은 샐러드가 8000원대다. 이대 교내의 학생 식당 가격은 2000~2800원이라 10배 이상 비싼 메뉴를 팔고 있는 셈이다. 이 학교 4학년 김모(23)씨는 "케세이호에서 점심을 먹는 학생들과 구내식당에서 줄을 서는 학생들이 위화감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도 비슷한 상황이다. 경영대 앞 식당 1층의 '더 키친'은 1만원대 정도의 피자와 7000원 선의 파스타를 판다. 2층의 학생 식당 메뉴는 2500원이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빈곤층'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서울대 4학년 김모(27)씨는 "식비 1000원이 아쉬운 형편인데, 몇만원짜리 점심을 사먹는 학생들을 보면 '저들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7㎡(2평 정도)가 안 되는 월세 50만원짜리 고시텔에 사는 김모(25· 동국대 3년)씨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가 95만원이나 하는 오피스텔에 사는 친구들을 보면 거리감이 느껴진다"며 "졸업하고 취업을 해도 이런 차이를 좁히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명지대 졸업반 김모(24)씨는 "학원 수강료가 없어 무료 특강을 찾아다닌다"면서 "강좌 하나에 수십만원짜리 영어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럽고, 평생 그런 친구들에게 뒤처지는 2류 인생을 살게 될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서너 개의 아르바이트에 쫓기며 대학 생활을 하는 대학생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넘어 우울증, 좌절감 등 심리적으로도 불안하고 힘겨운 상황에 처해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를 휴학 중인 김모(29)씨는 2002년 입학 이후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내몰리다 2005년부터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 김씨는 "약을 먹지 않으면 갖은 걱정들이 다 생각나 도저히 잠을 이룰 수도 없고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고 있다.

어려운 생활에 지쳐 자포자기하거나 절도 등 범죄나 인터넷 게임 몰두 등 현실 도피를 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달 전주 에서는 동네 마트 등에서 80만원 정도를 훔친 혐의 등으로 A군(19)이 불구속 입건됐다. 전주의 한 대학 1학년인 A군은 오후 2시부터 새벽 1시까지 집 근처 소규모 공장에서 일하면서 생활비를 벌어 공부를 했지만 등록금이 모자라 절도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이긴 하지만 여대생들이 유흥업소로 빠져드는 경우도 있다. 대학 졸업반 김모(27)씨는 "부족한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려고 유흥업소에서 일하다 돈맛을 알게 돼 취업을 내팽개친 여대생도 꽤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대학생들은 학창 시절의 가난이 졸업 이후 사회생활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런 상황은 이들이 자포자기하거나 사회에 대한 불만을 갖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대학생들도 드물지 않다. 지난 8일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원룸에서는 대학 졸업반 유모(23)씨가 생활고로 인해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했고, 작년 11월 대구 서구 비산동 주택에서는 대학을 휴학 중인 강모(21)씨가 목을 매 숨졌다.

채규만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신의 환경을 체념하게 될 경우 우울증에 걸리기 쉽고 심각할 경우에 자살을 시도할 가능성이 커 생활고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은 말 그대로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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