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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숙 “어린이도 자기를 알고 싶어해요”

인서비1 2010. 2. 25. 12:14

[책과 사람] 최기숙 “어린이도 자기를 알고 싶어해요”

“어린이시면 물론 어린이답게 지내시오. 공연히 헛꾀가 들어 늙은이인체 하지도 말고,분수에 당치 않은 얌전을 피며 어른인체 하지도 말고,또 너무 갓난이인체 하여 함부로 발버둥을 치며 심술만 부리지 말고,봄철 달콤한 비를 갓 맞고 고운 바람에 새로 나부끼는 어린 아기풀같이 아무 악의 없고 아무 거짓 없이 천연스럽게 활발하게 씩씩하게 정말 어린이답게 문실(나무 등이 거침없이 죽죽 뻗어 자라는 모양) 자라십시오.”

1920년대 방정환이 만든 잡지 ‘어린이’에 수록된 박달성의 글이다. 이것은 한 어린이가 어린이다운 삶이 무엇이냐고 묻는 상황을 가정하여 쓴 대답이다. 오늘날 어떤 어린이로부터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최기숙(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연구원·사진)씨가 쓴 ‘어린이,넌 누구니?’(보림)는 대답을 주는 대신 어린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를 위해 어린이의 역사를 보여주는 방법이 동원된다. 고전학자인 최씨는 조선시대의 문헌과 근대기의 어린이 잡지,그리고 어린이를 그린 동서양의 그림들을 보여주며 어린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탄생했고,어린이상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설명한다.

“조선시대에 그려진 그림 속의 어린이는 발랄하지 않고 의젓해요. 어른들이 의젓한 어린이를 원했던 거죠. 장욱진의 그림은 어른과 거의 차이가 없는 어린이들을 보여줍니다. 어른이나 어린이나 똑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또 최남선 방정환같은 근대 지식인들은 어린 세대에 ‘소년’이나 ‘어린이’ 등의 이름을 붙여주며 어려운 시대를 극복할 희망으로 삼고자 했어요.”

조선시대 어린이들이 덜 자란 어른 취급을 받았다면,근대기의 어린이는 어른과 동일한 인격권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요즘은 어린이가 가정의 중심,소비의 중심이 됐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어른들이 어린이다움을 규정한다는 점이다. 결국 어린이다움이란 어른들이 바라는 어린이의 모습이고,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투영된 이미지다. 그것은 실제 어린이들이 원하는 것과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준 어린이다움의 틀 속에서 행복해하지 않아요. 그래서 끊임없이 내가 누구인지,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최씨의 책은 어른들을 향해 어린이들이 말하는 어린이다움을 들어보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어린이들을 향해서는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라고 격려한다.

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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