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앤 조이] 끝없는 은빛 물결… 제주는 지금 억새 천국
서울경제 | 입력 2009.10.14 18:01 | 누가 봤을까? 50대 여성, 제주
'팔색조 억새' 보는 각도 따라 다른 모습
해질녘 새별오름 등 곳곳서 장관 연출
한적한 사려니 숲길, 트레킹 코스로 좋아
가을이 되면
훨훨 그냥 떠나고 싶습니다
누가 기다리지 않더라도
파란 하늘에 저절로 마음이 열리고
울긋 불긋 산 모양이 전혀 낯설지 않는
그런 곳이면 좋습니다 (중략)
억새 꺾어 입에 물고 하늘을 보면
짓궂은 하얀 구름이
그냥 가질 않고
지난 날 그리움들을 그리면서
숨어있던 바람 불러 향기 만들면
코스모스는 그녀의 미소가 될 겁니다
< 오광수 시인의 '가을이 되면' 중에서 >
오곡이 무르익는 가을은 풍요의 계절인 동시에 외로움의 계절이기도 하다. 외로움에 사무쳐 떠난 그 자리에는 그리움이 피어난다. 외로움을 찾아 떠난 제주의 가을 하늘 아래서 만난 억새는 바람에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고, 그러면서도 세상의 온갖 설움을 받아낸 듯한 묘한 감동을 선사한다.
그래서일까. 유난히 제주의 가을엔 억새를 찾아 떠나 온 '억새꾼'들이 많았다. 깊어 가는 가을 제주의 억새는 붉디 붉은 꽃물을 떨쳐버리고 고혹한 은빛을 내며 살랑거린다. 서울이나 밀양 등지에서도 억새 축제가 열릴 정도로 억새를 쉽게 볼 수 있지만 매년 가을이면 등산화 끈을 동여매고 한쪽 어깨에는 큼직한 카메라를 짊어진 억새꾼들이 제주로 몰려드는 것은 무엇보다 제주에선 '팔색조 억새'를 볼 수 있기 때문. 제주의 억새는 7가지 색을 내는 팔색조보다 더욱 다양한 매력을 뽐낸다고 알려져 있다.
제주의 억새가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을 뽐내는 것도 억새꾼을 유혹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산굼부리 등 한라산 동쪽 지역의 오름에서는 맑은 날이면 또렷하게 드러나는 한라산과 어우러진 억새를 감상할 수 있고 산간도로에서는 도로의 끝이 하늘과 맞닿은 가운데 양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억새 길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길 수도 있다. 제주의 명물 돌담과 바다를 배경으로 피어난 억새는 제주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가을 풍경인 셈이다. 제주의 바다로 산으로 제주산 팔색조 억새를 감상하러 떠나보는 건 어떨까.
◇은빛 물결 따라 드라이브=
"어디에 가면 제주 억새를 감상할 수 있냐"는 우문에 제주 사람들은 "섬 천지가 억새로 뒤덮였는데 그런 질문을 하면 곤란하다"는 반응이다. 그 정도로 10월의 제주는 곳곳이 은빛 물결이다. 샛노란 유채가 비운 자리를 억새가 메운 셈이다.
억새 명소를 따로 꼽기 어려울 정도로 어딜 가나 억새 물결이지만 끝없이 펼쳐지는 억새 드라이브를 만끽할 수 있는 명소는 분명 따로 있다. 억새가 풍성하게 자라 하늘과 맞닿은 대표적인 길로는 중산간도로를 꼽을 수 있다. 그 중 아름답기로는 1118번도로와 1119번 도로가 으뜸이다. 이 일대는 본래 삼나무숲과 목장, 오름들이 집중돼 있는 것으로 유명한 지역. 도로를 따라 달리는 내내 억새는 하늘과 맞닿았다가 잠시 후에는 목장과 어우러져 목가적인 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특히 교래리 경주마육성목장 주변과 수망교차로 인근에서는 대단위 억새밭이 조성돼 있어 기념촬영을 하기 좋다. 1119번 도로를 따라 해비치컨트리클럽을 지나 성산읍 방향으로 달려 평야지대로 접어들면 양쪽으로 펼쳐진 억새길을 따라 군데군데 설치된 풍력발전기가 바람을 가르는 풍경을 연출한다.
성산읍 쪽에서 시작하는 해안도로를 따라 서귀포시 방향으로 달려도 바다와 돌담, 억새가 어우러진 풍경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쨍쨍한 햇볕에 온 몸을 드러낸 한치와 미역도 가을의 정취를 더한다.
◇억새가 춤추는 오름=
최근 제주에서는 '올레 걷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만큼 자동차를 버리고 두발로 걸으며 억새를 감상하는 '억새꾼'이 되는 것도 좋겠다. 가벼운 트레킹을 즐기며 억새를 감상하기에는 오름이 제격이다. 억새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교래리에서도 특히 산굼부리는 억새를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물론 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조성된 억새밭도 아름답지만 이곳은 언덕길을 따라 2㎞에 달하는 억새 정원을 꾸며 놓아 다른 지역보다 풍성한 억새군락을 자랑한다.
올해는 신종인플루엔자 확산의 여파로 매년 가을 열리던 제주 억새꽃 축제가 취소됐지만 축제 장소인 제주시 애월읍 새별오름에는 은빛 억새가 풍성하게 피어 아쉬움을 달랜다. 새별오름은 해질녘 서쪽 바다와 어우러진 억새를 감상할 수 있는 곳. 바다 가까이 내려온 태양이 붉은 빛을 뿜어내면 억새가 붉게 타오르는 듯한 풍경은 더 없는 장관을 연출된다. 새별오름은 도내 오름 훼손 방지를 위해 11월부터는 입산을 통제하니 참고하자.
◇가을 머금은 사려니 숲길=
마을과 밭, 오름과 바다를 골고루 거치는 올레길 외에 한라산 중턱에서 걷기체험을 할 수 있는 숲길 코스가 지난 5월 공개됐다. 제주의 중심을 이루는 산간지역을 제대로 탐방할 수 있는 사려니 숲길이 그 신비한 모습을 드러낸 것. 비자림로의 물찻오름 입구(현재 자연휴식년제로 물찻오름에는 오를 수 없다)에서 시작, 사려니 오름까지 갈 수 있는 사려니 숲길은 15㎞에 달하는 구간을 걸으며 산림욕을 할 수 있는 것이 특징.
제주 걷기 여행 마니아들에게는 잘 알려졌지만 올레길에 비해선 아직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주말에도 한적하게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숲길을 따라 걷다 맑은 공기와 함께 가을의 향기가 콧속으로 전해진다. 코스는 어렵지 않으나 구간이 제법 길다. 참꽃나무숲까지는 30분, 붉은오름 입구까지는 3시간, 사려니 오름까지 완주하면 4시간이 소요된다.
제주=글ㆍ사진 서은영기자 supia927@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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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새별오름 등 곳곳서 장관 연출
한적한 사려니 숲길, 트레킹 코스로 좋아
가을이 되면
훨훨 그냥 떠나고 싶습니다
누가 기다리지 않더라도
파란 하늘에 저절로 마음이 열리고
울긋 불긋 산 모양이 전혀 낯설지 않는
그런 곳이면 좋습니다 (중략)
억새 꺾어 입에 물고 하늘을 보면
짓궂은 하얀 구름이
그냥 가질 않고
지난 날 그리움들을 그리면서
숨어있던 바람 불러 향기 만들면
코스모스는 그녀의 미소가 될 겁니다
< 오광수 시인의 '가을이 되면' 중에서 >
그래서일까. 유난히 제주의 가을엔 억새를 찾아 떠나 온 '억새꾼'들이 많았다. 깊어 가는 가을 제주의 억새는 붉디 붉은 꽃물을 떨쳐버리고 고혹한 은빛을 내며 살랑거린다. 서울이나 밀양 등지에서도 억새 축제가 열릴 정도로 억새를 쉽게 볼 수 있지만 매년 가을이면 등산화 끈을 동여매고 한쪽 어깨에는 큼직한 카메라를 짊어진 억새꾼들이 제주로 몰려드는 것은 무엇보다 제주에선 '팔색조 억새'를 볼 수 있기 때문. 제주의 억새는 7가지 색을 내는 팔색조보다 더욱 다양한 매력을 뽐낸다고 알려져 있다.
제주의 억새가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을 뽐내는 것도 억새꾼을 유혹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산굼부리 등 한라산 동쪽 지역의 오름에서는 맑은 날이면 또렷하게 드러나는 한라산과 어우러진 억새를 감상할 수 있고 산간도로에서는 도로의 끝이 하늘과 맞닿은 가운데 양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억새 길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길 수도 있다. 제주의 명물 돌담과 바다를 배경으로 피어난 억새는 제주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가을 풍경인 셈이다. 제주의 바다로 산으로 제주산 팔색조 억새를 감상하러 떠나보는 건 어떨까.
◇은빛 물결 따라 드라이브=
"어디에 가면 제주 억새를 감상할 수 있냐"는 우문에 제주 사람들은 "섬 천지가 억새로 뒤덮였는데 그런 질문을 하면 곤란하다"는 반응이다. 그 정도로 10월의 제주는 곳곳이 은빛 물결이다. 샛노란 유채가 비운 자리를 억새가 메운 셈이다.
억새 명소를 따로 꼽기 어려울 정도로 어딜 가나 억새 물결이지만 끝없이 펼쳐지는 억새 드라이브를 만끽할 수 있는 명소는 분명 따로 있다. 억새가 풍성하게 자라 하늘과 맞닿은 대표적인 길로는 중산간도로를 꼽을 수 있다. 그 중 아름답기로는 1118번도로와 1119번 도로가 으뜸이다. 이 일대는 본래 삼나무숲과 목장, 오름들이 집중돼 있는 것으로 유명한 지역. 도로를 따라 달리는 내내 억새는 하늘과 맞닿았다가 잠시 후에는 목장과 어우러져 목가적인 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특히 교래리 경주마육성목장 주변과 수망교차로 인근에서는 대단위 억새밭이 조성돼 있어 기념촬영을 하기 좋다. 1119번 도로를 따라 해비치컨트리클럽을 지나 성산읍 방향으로 달려 평야지대로 접어들면 양쪽으로 펼쳐진 억새길을 따라 군데군데 설치된 풍력발전기가 바람을 가르는 풍경을 연출한다.
성산읍 쪽에서 시작하는 해안도로를 따라 서귀포시 방향으로 달려도 바다와 돌담, 억새가 어우러진 풍경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쨍쨍한 햇볕에 온 몸을 드러낸 한치와 미역도 가을의 정취를 더한다.
◇억새가 춤추는 오름=
최근 제주에서는 '올레 걷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만큼 자동차를 버리고 두발로 걸으며 억새를 감상하는 '억새꾼'이 되는 것도 좋겠다. 가벼운 트레킹을 즐기며 억새를 감상하기에는 오름이 제격이다. 억새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교래리에서도 특히 산굼부리는 억새를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물론 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조성된 억새밭도 아름답지만 이곳은 언덕길을 따라 2㎞에 달하는 억새 정원을 꾸며 놓아 다른 지역보다 풍성한 억새군락을 자랑한다.
올해는 신종인플루엔자 확산의 여파로 매년 가을 열리던 제주 억새꽃 축제가 취소됐지만 축제 장소인 제주시 애월읍 새별오름에는 은빛 억새가 풍성하게 피어 아쉬움을 달랜다. 새별오름은 해질녘 서쪽 바다와 어우러진 억새를 감상할 수 있는 곳. 바다 가까이 내려온 태양이 붉은 빛을 뿜어내면 억새가 붉게 타오르는 듯한 풍경은 더 없는 장관을 연출된다. 새별오름은 도내 오름 훼손 방지를 위해 11월부터는 입산을 통제하니 참고하자.
◇가을 머금은 사려니 숲길=
마을과 밭, 오름과 바다를 골고루 거치는 올레길 외에 한라산 중턱에서 걷기체험을 할 수 있는 숲길 코스가 지난 5월 공개됐다. 제주의 중심을 이루는 산간지역을 제대로 탐방할 수 있는 사려니 숲길이 그 신비한 모습을 드러낸 것. 비자림로의 물찻오름 입구(현재 자연휴식년제로 물찻오름에는 오를 수 없다)에서 시작, 사려니 오름까지 갈 수 있는 사려니 숲길은 15㎞에 달하는 구간을 걸으며 산림욕을 할 수 있는 것이 특징.
제주 걷기 여행 마니아들에게는 잘 알려졌지만 올레길에 비해선 아직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주말에도 한적하게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숲길을 따라 걷다 맑은 공기와 함께 가을의 향기가 콧속으로 전해진다. 코스는 어렵지 않으나 구간이 제법 길다. 참꽃나무숲까지는 30분, 붉은오름 입구까지는 3시간, 사려니 오름까지 완주하면 4시간이 소요된다.
제주=글ㆍ사진 서은영기자 supia927@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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