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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엄마, 학교 어떻게 가?"

인서비1 2009. 9. 10. 06:49

    “엄마, 학교 어떻게 가?”

 어느 날 출근길에 들려오는 소리다. 어떻게 가긴? 걸어서 가던가 버스타고 가면 되지. 아이는 현관문에 매달려 엄마가 차키를 들고 나오기를 기다린다. 아니다 엄마가 아이를 재촉하고 있다.

 내가 출근하는 고등학교에도 아침저녁이면 진풍경이다. 학교 앞 좁은 도로가 엄마들 아빠들 학생등교용 차량으로 북적거린다. 부모들은 응당 모셔다 드려야 하는 상전에 대한 예의를 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새벽부터 자식 등교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고 혹 아이가 짜증이라도 낼까봐 잠 깨우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그리고 아이들이 파할 시간-고딩은 오밤중이다-이면 또 차량의 러시아워를 맞이한다. 일상을 포기한 아쉬움을 숨긴 채 환한 얼굴로 맞아준다.

 우리 부모들은 무엇을 위하여 종을 울리고 있나? 잠도 못자 피곤한 몸에 일상의 중심도 자기자신이 아닌 아이의 세상을 살고 있는 오! 위대한 대한민국의 학부모여, 모성본능이여! 나는 삐딱하게도 이렇게 키워진 아이들이 지극한 효성을 보여주리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대하다 보면 참 의존적이다. 이 아이들이 스스로 독립성을 찾을 수 있을까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이들은 공부하는 것도 매우 의존적이다. 이렇게 하라면 이렇게, 저렇게 하라면 저렇게, 지켜앉아 있으면 조용, 교사가 자리를 비우면 웅성웅성 와글와글, 아무런 고민도 없이 외우라면 외우고, 수업 중에 나오지 않는 내용에 대해서는 눈감아 버린다. 이들에게 사유함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독서라도 권장할라치면 대뜸 “그 거 시험에 안나오는데...” 입이 삐쭉해진다.  이들은 과연 독립할 수 있을까?

 나는 이들에게 삶에서 독립운동을 할 것을 끊임없이 주문한다. 이들에게는 별로 중요한 덕목이 못되지만 ‘독립되지 못한 식민의 삶’은 곧 노예임을 억지스럽게 주문한다. 이들과 같이 청소하는 시간이면 나는 속이 끓는다. 이미 욕체적으로는 다 큰 여성들이 빗자루질하는 것을 볼라치면 “으이구야”다. 몇 번인지도 모를 정도로 빗자루를 낚아챈다. “이렇게 이렇게!” 걸레질은 “이렇게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우와, 잘 한다. 앞으로 샘이 하세요.”

 나는 우리 반에 주문하는 것이 있다. 첫째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 그리고 소외와 왕따에 대한 저항. 둘째가 청소이다. 그 다음 공부는 알아서 잘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제대로 되지 않는다. 이것이 이들에게는 무척이나 어려운 것임을 나는 안다. 이들이 생각하는 중요한 일이 아닌 탓일 것이다.

 아이들이 대학가면 과목 선택과 수강신청을 엄마가 와서 해준다고들 한다. 참 끔찍한 일이다. 이들은 부모의 신민, 삶의 식민인 상태로 성인의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물론 이 아이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이 사회의 잘못이고 사유함을 잃은 시대의 잘못이 더 크다고 본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 영원한 식민의 인생을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없이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아이들에게 독립된 자유를 누리게 하고, 부모도 자신의 인생을 살 것인가?

선택하라, 위대한 식민의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출처 : 내일나무
글쓴이 : 김성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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