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어린왕자

어린왕자 2

인서비1 2009. 9. 6. 13:32
     

    이전장

     나는 이렇게 해서 진심을 털어 놓고 이야기할 사람도 없이 혼자 살아왔다.

     

     그러다가 육 년 전, 사하라 사막에서 비행기 사고를 만났던 것이다.

    기관의 부속 하나가 부서져 나갔다. 기관사도 승객도 없었던 터라, 나는 그 어려운 수선을 혼자 감당해 볼 작정이었다. 나로서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였다. 가진 것이라고는 겨우 일주일 동안 마실 물밖에 없었다.

     

     첫날 저녁, 나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사막 위에 누워 잠이 들었다. 넓은 바다 한가운데 뗏목을 타고 흘러가는 난파선의 뱃사람보다도 나는 훨씬 더 외로운 처지였다. 그러니 해 뜰 무렵 이상한 작은 목소리가 나를 불러 깨웠을 때 나는 얼마나 놀라웠겠는가.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했다.

    "저..... 양 한 마리만 그려 줘요!"

    "뭐!"

    "양 한 마리만 그려 줘....."

     

     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벌떡 일어섰다.
     나는 열심히 눈을 비비고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아주 신기한 꼬마 사람이 엄숙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그의 초상화가 있다. 이 그림은 내가 훗날 그를 모델로 그린 그림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다. 그러나 내 그림이 그 모델만큼 멋이 있으려면 아직 멀었다.

     

     그렇다고 내 잘못이 아니다.

     내 나이 여섯 살 적에 나는 어른들 때문에 기가 죽어 화가라고 하는 작업에서 멀어졌고, 속이 보이는 보아뱀과 보이지 않는 보아뱀밖에는 한 번도 그림공부를 해 본 적이 없지 않은가.아뭏든 나는 놀란 눈을 휘둥그레 뜨고 홀연히 나타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수천 마일이나 떨어진 곳이 아닌가.

     

     그런데 나의 꼬마 사람은 길을 잃은 것 같지도 않았고, 피곤이나 굶주림이나 목마름에 시달려 녹초가 된 것 같지도 않았으며, 겁에 질려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어린아이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나는 마침내 입을 열어 겨우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넌 거기서 뭘 하고 있느냐?"

    그러나 그 애는 무슨 중대한 일이나 되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저..... 양 한 마리만 그려 줘....."

     수수께끼같은 일을 만나 너무 놀라게 되면 누구나 감히 거역하지 못하는 법이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수천 마일 떨어져 어른거리는 죽음을 눈 앞에 두고, 그것이 말할 수 없이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주머니에서 종이와 만년필을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 내가 특별히 공부한 것이라고 해 보아야 지리와 역사, 산수와 문법 따위임을 생각하고 (기분이 좀 언짢아서), 이 꼬마사람에게 나는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대답했다.

    "괜찮아. 양 한 마리만 그려 줘."

     나는 한 번도 양을 그려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그릴 수 있는 단 두 가지 그림 중에서 하나를 그에게 다시 그려 주었다. 속이 보이지 않는 보아뱀의 그림을.

     

     그런데 놀랍게도 그 꼬마사람은 이렇게 답하는 것이었다.

      "아냐! 아냐! 난 보아뱀의 뱃속에 있는 코끼리는 싫어. 보아뱀은 아주 위험하고, 코끼리는 아주 거추장스러워. 내가 사는 데는 아주 작거든. 나는 양을 갖고 싶어. 양 한마리만 그려 줘."

     

      그래서 나는 이 양을 그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살펴보더니

    "아냐! 이건 벌써 몹시 병들었는 걸. 다른 걸로 하나 그려 줘!"

    나는 다시 그렸다.

                              

     내 친구는 얌전하게 미소 짓더니, 너그럽게 말했다.

    ""아이참..... 이게 아니야. 이건 숫양이야. 뿔이 돋고....."

    그래서 나는 다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것 역시 먼저 그림들처럼 퇴짜를 맞았다.

    "이건 너무 늙었어. 나는 오래 살 수 있는 양이 있어야 해."

     

     그때, 기관을 분해할 일이 우선 급했던 나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아무렇게나 쓱쓱 그린다는 게 이 그림이었다.

           

                                 

     그리고는 던져 주며 말했다.

    "이건 상자야. 네가 갖고 싶어 하는 양은 그 안에 들어 있어."

     

     그러나 놀랍게도 이 꼬마 심판관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이 아닌가.

    "내가 말한 건 바로 이거야! 이 양을 먹이려면 풀이 좀 많이 있어야겠지?"

    "왜?"

    "내가 사는 곳은 너무 작아서....."

    "그거면 충분해. 정말이야. 내가 그려 준 건 조그만 양이거든."

    그는 고개를 숙여 그림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작지도 않은데..... 이것 봐! 잠이 들었어....."

     

    나는 이렇게 해서 어린 왕자를 알게 되었다.

    이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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