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

유명한 트래드 클라이밍 등반지

인서비1 2021. 3. 18. 21:07

Climb,Worldwide

[호주 그램피언스] 등반 #3 Arapiles - 유명한 트래드 클라이밍 등반지

 클라이머 미현  2018. 11. 25.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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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 앞서 제목에 대한 부연 설명부터 해야겠다.

그램피언스 국립공원과는 무관한 등반지인 Arapiles(아라팔리스)는 그램피언스와 지리적으로 30분에서 멀게는 2시간 내외의 거리에 있다.

우리는 그램피언스를 주 무대로 삼고 떠난 여행이었기 때문에 하루 정도 등반하러 다녀오기로 했었다.

그런 이유로 아라팔리스를 그램피언스 제목 하에 두었다.

그램피언스의 북부에 있는 마을 호샴(Horsham)에서 동쪽으로 평야를 달리다 보면 오른 편에 우뚝 솟아있는 바윗덩어리 산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갖고 놀던 찰흙을 아무렇게나 이렇게 저렇게 빚어서 평야 한가운데 던져놓은 듯 보이기도 한다.

몇 억 만년 전에는 이곳이 바다였고 바위는 해안절벽이었다고 한다.

암질은 사암, 역암, 퇴적암이 섞인 형태이며 대체적으로 1피치에서 3피치 루트들이 많고 높이가 50~60미터 정도이다.

어프로치는 대부분 평지를 걸어서 10분 내외에 있고 간간이 가파른 절벽 아래를 걸어 오르는 구간도 있다.

그램피언스와 아라팔리스를 한데 엮어서 등반 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꽤 있는 듯하다.

하지만 트래드 클라이밍을 주로 하는 사람이라면 아라팔리스로 달려가 Pine 야영장에 베이스를 구축한다고 한다.

이 야영장에는 트래드 클라이머들이 득실득실했고 마치 호주 트래드 클라이밍의 성지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클라이머들이 아침햇살을 쬐며 아침을 먹는 풍경이 따사로워 보였다.

우리가 지내던 Jimmy Creek 야영장에서 2시간이나 걸렸기 때문에, 새벽에 동이 트면 바로 출발해 이곳 야영장에서 햇살을 받으며 아침을 먹었다.

Pine 야영장에서 아침을 Photo by 김우경

2018년 9월 26일 수요일, Arapiles, Bard Buttress 섹터

총 22개의 섹터 중에서 어디를 가야 할지 막막했다.

여유 있고 따듯하게 아침식사를 하면서 다들 가이드북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갑자기 이 많은 섹터 중에서 하나를 고르려니 여간 혼란스러운 게 아니었다.

결국 우리는 Pine 야영장에서 가장 가까운 Bard Buttress 섹터를 가기로 했고, 그중에서 별 3개짜리 루트인 Eurydice(70m, 18, 5.10)를 선택했다.

Bard Buttress 섹터 Photo by 전미현

나와 효정씨가 한 팀이 되었고, 나머지가 한 팀이 되었다.

효정씨의 빌레이도 트래드 등반도 처음이긴 했지만, 지금까지 본 효정씨의 꼼꼼함과 그간의 등반 행로들이 믿을만했다.

나와 효정씨가 Eurydice를 등반하는 동안 다른 한 팀은 다른 루트를 오르기로 했고, 등반 종료지점이 같았기 때문에 함께 하강하기로 약속을 했다.

우경&수항 팀 Photo by 전미현

1. Eurydice (70m, 5.10a)

밑에서 올려다 본 루트의 크랙은 얼기설기 붙여놓은 찰흙 덩어리 사이에서도 눈에 뚜렷하게 보였다.

좋은 라인이었고 왜 별이 세개인지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1피치 (33m, 5.10a)

- 온사이트.

바위가 유리알처럼 반들반들했는데, 해외에서 사암에서의 첫 트래드 등반이라서 굉장히 긴장을 했다.

잘 디뎌질 것 같지 않은 발이 한번 밀리면서 순간적으로 어찌나 진땀이 났는지 모른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호주의 등반 아이콘인 Carrot Bolt (캐롯 볼트; 육각 머리로 된 볼트만 박혀 있고 볼트 행거가 없다)를 하나 보게 된다.

행거나 너트를 준비해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모두 캠으로 확보하며 올랐다.

피치의 마지막 부분은 오버행으로 두려움이 극대화되었지만 내 머릿속에 추락은 상상할 수가 없을 정도로 무서웠다.

1피치를 끊는 지점에 한참 오른쪽으로 캐롯 볼트가 있었지만 후등자 빌레이로 로프 유통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캠으로 Equalizing (이퀄라이징)을 했다.

2피치 (37m, 5.10a)

- 온사이트.

첫 번째 피치보다는 조금 수월한 느낌이었다.

시작 부분의 오버행이 살짝 살 떨렸고 나머지는 바위의 각도가 누워지면서 홀드도 점점 좋아졌다.

등반이 종료되는 곳은 넓은 테라스였고, 몇 개의 루트가 만나는 지점이었다.

빌레이 앵커가 없었기 때문에 크랙에 캠을 설치하고 또 이퀄라이밍을 했다.

효정씨가 올라오고 장비를 정리하고 있는데 이내 우경이 팀이 올라왔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얼굴을 봤지만 정상에서 보니 괜히 더 반갑고, 모두가 무사히 등반해 올라왔다는 안도감에 미소가 지어졌다.

테라스에서 보는 풍경은 환상적이었다.

유채꽃 만발한 평야의 봄이었다.

평야의 봄 Photo by 전미현

Pine 야영장 Photo by 전미현

등반을 마치고 Photo by 전미현

등반 종료지점에서 바로 그 자리에서 하강이 아니라 절벽 테라스를 따라 왼쪽으로 이동한 후 하강 앵커를 찾아야 했다.

가이드북 설명을 잘 따라서 왼쪽으로 이동했고 바위를 오르고 내리고 몇 번 반복한 뒤 앵커를 볼 수 있었다.

70미터 로프 한 동으로 충분히 하강할 수 있었고 그다음은 걸어 내려가면 등반 시작 지점이 나타났다.

조심조심 옆으로 옆으로 Photo by 전미현

하강 Photo by 전미현

등반을 마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고 우리는 2피치 정도의 루트를 하나씩 더 해보기로 했다.

우경과 수항이는 한 팀이 되어 유명한 Eurydice를 해보겠다고 나섰고, 나와 나머지는 할만한 루트가 없는지 탐색하러 바위의 오른쪽으로 향했다.

 

김우경, Eurydice 1피치 등반 중 Photo by 신효정

생각 #1

나는 등반을 좋아한다, 그리고 온사이트를 좋아한다.

선등을 해야 등반한 맛이 난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만 혼자 선등을 서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등반을 좋아하고 선등을 서고 싶은 만큼, 함께 하는 다른 누구(들)도 선등을 서고 싶을 테니까.

그 마음을 안다면 당연히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등반이자 인생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효정씨에게 "효정씨도 선등 서야죠! 뭐 하고 싶은 거 있어요? 한번 보세요."

아직 서로를 몰라 선뜻 말을 못 하고 있었던지 내 말에 만면에 화색이 돈다.

가이드북과 바위 생김새를 이리저리 본 후, 효정씨는 Skylark(16, 5.8)을 선택했다.

그리고 루프 앞으로 가는 도중에 친구의 빌레이를 보고 있던 80세 정도의 할아버지 클라이머(Bob Bull)를 만나게 되었다.

그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어디 등반하고 오는 길이니?"

"Eurydice 등반했어요."

"내가 1963년도에 초등한 루트야."

"와~~ 정말요? 이렇게 만나 봬서 영광이네요."

"아니야. 그 멋진 루트를 등반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어서 내가 영광이지!"

신효정 Skylark 등반 전 Photo by 전미현

2. Skylark (56m, 5.8)

- 울렁불렁한 슬랩을 오른다.

트래드 루트라서 볼트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막상 캠을 설치할 만한 적당한 크랙이 없었다.

효정씨는 거의 10미터 이상을 확보 없이 올랐고 나는 후등으로 오르는 내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심지어 내가 등반을 시작하려는 순간, 옆 루트를 등반하고 막 내려온 Bob 할아버지의 친구가 미쳤다는 듯이 Bob에게 하는 얘기를 들었다.

"저 여자애 crazy야. (crazy를 단순히 '미쳤다'로 번역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독자의 해석에 맡긴다)

한 10미터를 캠을 설치 안 했어.

믿을 수 없어!"

어쨌든 효정씨는 무사히 등반을 온사이트로 잘 마무리 했고, 호주 와서 선등을 섰다며 굉장히 기뻐했다.

함께 하는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굉장히 뿌듯하고 행복했다.

Eurydice 등반을 잘 마치고 내려온 우경과 수항을 만나 하루를 마무리했다.

어느덧 하루의 해는 저물어가고 있었고, 재밌게 등반한 우리는 그저 즐거웠고 배는 심하게 고팠다.

이대로 우리 야영장까지 돌아가면 아마도 도착하기도 전에 아사할 것 같아서 호샴에서 추천받은 피자집에서 피자와 맥주로 배불리 먹고 돌아갔다.

Bonnie and Clyde Pizza라는 집인데, 꽤 분위기 있는 집이긴 하지만 피자가 딱히 맛도 없는데 비싸기만 했다.

그리고 그날 마침 우리 주문 피자에 한해서 실수를 한 것이라고 믿고 싶은데, 피자를 많이 태웠다.

2018년 9월 29일 토요일, The Northern Group 섹터

끔찍하게 춥던 밤을 보내고 새벽 동트기가 무섭게 친구들을 서둘러 깨웠다.

너무 추워서 아침 식사를 할 여유도 없었고 빨리 차를 타고 이동을 해야 몸이 좀 녹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해가 채 떠오르기도 전에 어두운 야영장을 빠져나와 2시간을 달리다 보니 햇살이 올라왔다.

바람이 부는 Pine 야영장 한편의 따스한 곳에 모여 앉아 아침을 해먹었다.

세수도 못하고 옷만 갈아입고 나와 잔디밭 한편에 쭈그리고 앉아 밥을 먹는 꼴은 그야말로 '그지 새끼들' 같았을 것이다.

우경와 수항이가 며칠 동안 가이드북을 연구했나 보다.

그 사이에 하고 싶은 루트를 발견했고 그 루트는 그 옛날 Stefan Glowacz(슈테판 글로와츠)가 프리 솔로로 해서 유명해진 루트였다.

가이드북은 "가장 많이 등반해보는 것을 꿈꾸고, 가장 많이 추락하고, 가장 많이 사진이 찍히는" 루트라는 설명으로 시작한다.

이 루트의 등반을 사진 찍기 위해 친절하게 사진 찍는 포인트도 안내되어 있었다.

옆 바위 골짜기로 내려가 쉽지만 추락하면 적어도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20미터 높이의 바위 꼭대기였다.

나와 우경이는 돌아가며 사진을 찍어주기로 하고 등반을 하기로 했다.

워낙에 인기 있는 루트라서 그런지 이미 한 팀이 등반을 준비하고 있었다.

선등 서는 남자가 오버행에서 수도 없이 추락을 반복하고 있었고, 한참을 기다려야 할 분위기였다.

등반 대기 중 Photo by 전미현

우리는 몸풀이 삼아 인근의 루트를 하나 등반했다.

1. Hurts (18m, 18, 5.10a)

- 온사이트.

18미터의 짧은 루트였고 크랙과 포켓 홀드가 많아서 캠을 설치하기에는 용이했다.

특별한 무브나 특징이 있는 루트는 아니었다.

 

클라이머 전미현, Hurts (5.10a) Photo by 김우경

Kachoong 등반 대기 중 Photo by 전미현

2. Kachoong (25m, 21, 5.10d)

- 우경이가 멋지게 선등을 서며 온사이트 성공하고 수항이와 한 팀이 되어 먼저 올랐다가 내려왔다.

오버행 루트의 생김새는 마치 화천 용화산의 '용화의 전설'과 비슷한데, 발아래로는 뻥 뚫린 허공이라서 공포감이 상승되는 루트였다.

루프의 턱을 치고 오르는 것이 당연히 크럭스였다.

김우경 등반 시작 전 Photo by 전미현

김우경, Kachoong (5.10d) Photo by 전미현

내가 두 번째로 선등을 서며 오르는데, 긴장감은 몇 배가 되었다.

사다리같이 어렵지 않은 무브로 좋은 손 홀드를 써서 직벽을 오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캠을 설치하기에 딱히 좋지 않아서 런아웃이 길어지면서 점점 긴장감이 감돈다.

그러다가 오버행 루프가 시작되는데, 피톤에 퀵을 걸고 또 주변 크랙에 이중으로 캠을 설치한다.

그 이후에 루프 아래를 트래버스 하는 동작이 시작되는데, 손 홀드와 오른발 힐훅 자리가 좋지만 펌핑이 난다.

턱을 넘어서는 곳에서 턱 위의 홀드를 쳤는데 홀드가 아닌 이상한 곳을 치면서 턱을 넘어갈 자신이 없었다.

의지로 추락해야겠다 싶어서 "텐션"을 외치려고 저기 설치된 마지막 캠의 거리를 살펴봤다.

끔찍했다.

밑에서 보던 다른 친구들이 나중에 해 준 말인데, "언니 캠 한번 보고 밑에 한번 보고는 눈 한번 질끈 감으면서 텐션 했어요."

그 지점에서 떨어지면 직벽으로 처박히는 시나리오였는데, 그래도 빌레이어가 로프를 타이트하게 잡지 않아서 괜찮았다.

물론 왼발 발뒤꿈치로 벽을 치면서 심한 타박상을 입었고 거의 한 달 동안 발을 절었지만 그 정도로 다행인 추락이었다.

클라이머 전미현, Kachoong (5.10d) Photo by 김우경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두 번째 시도를 했다.

정신력이 무너진 상황이었지만 내가 오르지 않으면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집중하고 과감하게 움직였다.

클라이머 전미현, Kachoong (5.10d) Photo by 김우경

클라이머 전미현, Kachoong (5.10d) Photo by 김우경

어렵지는 않은 루트인데 과감하게 자신감 있게 등반하지 못해서 내내 찜찜했다.

정신력이 왜 이렇게 추락하는지 모르겠는 시기였는데, 아마도 더 의기소침하게 만든 날이었다.

내 등반에 만족하지 못해 이후에 계속 푸념을 늘어놓았더니, 우경이가 위로하듯 말했다.

"누나! 그래도 인생 추락을 남겼잖아요! 이런 추락은 아무도 못 남길 거 같아요!"

그래,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다 의미 있고 좋은 게다.

저 루트 저 지점에서 떨어질 수 있었던 것도 정신력의 일종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빌레이를 잘 봐도 무조건 벽에 대차게 처박힐 게 뻔한데도 어떻게 손을 놓을 수 있었을까.

그 정신력이면 차라리 홀드 하나를 더 치고 버텨서 올라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보니, 나는 공포에 대한 정신력이 떨어졌다기보다는 집중하며 포기하지 않고 이뤄내는 정신력이 저하됐다는 걸 알아차렸다.

왜 그런 거지...?

등반에 대한 열정이 식은건가....?

어떻게 하면 그 정신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고민은 계속되겠지.

생각 #2

아침에 Kachoong cliff 로 향하는 어프로치에서 조금 헤맸다.

바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목에서 길이 희미해지고 바위와 숲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케른(돌무더기)를 어느 순간 놓쳤는지 확신할 수 없는 곳에 이르렀다.

앞서가던 우경과 수항이는 장비를 착용하고는 루트가 없는 바위를 등반해서 오른다고 했다.

그 부분에서 걱정하던 우경이가 수항이의 도전 정신에 잔소리를 했고, 나는 사진과 가이드북 설명을 몇 차례 다시 읽어가며 길을 찾았다.

결국 우리가 케른 하나를 지나쳤음을 확인하고 케른과 희미한 길을 찾아내 제대로 된 어프로치를 올랐다.

우경과 수항이는 다행히도 사고 없이 모험적인 개척등반을 마치고 우리와 만났다.

나는 등반이 로프를 묶고 첫 확보물을 지나 앵커까지 가는 것만이 등반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등반을 계획하고 제반사항들을 준비하고 차로 이동하고 걸어서 바위 앞까지 가서 비로소 등반을 마치고 하강하여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모든 일체의 행위가 등반이라고 여긴다.

어떤 루트를 등반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 만큼 그 열망을 위한 모든 준비도 열정적으로 그리고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정의 내리는 등반이다.

생각 #3

Arapiles(아라팔리스) 등반지가 어떤 이유로든 인기 있는 등반지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 이유를 똑 부러지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오르고 싶다’는 욕구가 솟지 않게 하는 바위였다.

오르고 싶은 열망이 자연적으로 나도 모르게 생겨나는 그 본능적 느낌, 그런 느낌에 끌어당겨지지 않았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