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호이저
Tannhäuser
창작/발표시기작곡가
1845년 |
리하르트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 |
목차접기
- 중세사회 연가의 전통
- 음유시인 탄호이저의 전설
- 기독교의 윤리와 비너스의 망명 전설
- 사랑에 대한 비너스의 경고
- 세상의 경멸과 교황의 저주
- 탄호이저와 파우스트, 상반적 사랑을 통한 구원
- 무신론과 감각적 사랑
- 청년독일파의 여성 해방 의식
- 사랑의 두 속성
중세사회 연가의 전통
사랑은 인간을 고통과 환희 사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한다. 또한 삶의 의미인 동시에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는 사랑을 주된 소재로 다룬 바그너의 〈탄호이저(Tannhäuser)〉1) 를 중심으로 그의 사랑의 논리를 따라가보고자 한다. 이 작품에 나타나는 사랑의 이데올로기는 훗날 작가의 전 작품을 아우르는 이념으로 자리잡게 된다.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에서 처음 등장한 저주와 구원의 논리는 〈탄호이저〉에서도 핵심적인 줄기를 이룬다. 그러므로 바그너의 작품 세계에서 구조적 특성을 이루고 있는 저주와 구원의 논리 속에서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랑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탄호이저〉는 바그너가 드레스덴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발표한 마지막 작품이다. 초연은 이 도시에서 1845년 10월 19일 그가 악장을 맡았던 작센 왕의 궁정극장에서 이루어졌다. 각본은 1842년에 시작하여 1년 뒤에 완성되었다. 작곡은 1845년에 끝났고, 같은 해에 초연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같은 극장에서 발표된 이전의 두 작품 〈리엔치〉와 〈방랑하는 네덜란드인〉과는 사뭇 비교될 정도로 이 작품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찬반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초연에 대한 작가 자신의 평가도 “실패”2) 한 것으로 내려졌다. 그 원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작품의 배경은 중세사회가 한창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던 13세기 초 튀링겐(Thüringen) 지방의 바르트부르크(Wartburg)이다. 따라서 중세시대 사랑의 개념이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중세기에 절정을 맞이하게 되는 연가(戀歌)의 전통은 이 글의 초점인데, 여기서는 특히 사랑이 시대적 이슈로 떠올랐던 중세사회에 대해서도 간략하게나마 살펴볼 것이다.
즉 연가의 주제는 사랑이지만, 그 사랑은 과연 어떤 형태로 드러나며, 또한 그 사랑에 밀려 세상을 등지게 되는 또 다른 사랑이 있다면 그것의 운명은 어떤 모습으로 제시되고 있을까? 연가를 불렀던 중세시대 가수들의 활동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와 함께 그러한 것들이 갖는 문화적 의미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궁정문화와 관련한 가수들의 사회적 입지와 그들의 역할을 밝혀내야 한다.
한편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시기, 즉 고대 신들의 세계와 기독교 세계 사이의 갈등은 어떤 형태로 진행되었을까? 그 갈등의 중심엔 무엇이 자리잡고 있을까? 특히 사랑의 신이었던 비너스 여신의 운명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어떤 변화를 겪게 되었을까? 바그너는 이 인물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대립 양상은 어떤 모습으로 무대 위에 제시되었을까?
특히 주인공 탄호이저를 사랑하는 두 여인, 즉 비너스와 엘리자베스는 사랑 논쟁의 두 진영을 형성하게 된다. 공간적으로는 비너스 산(Venusberg)과 바르트부르크로 대립된다. 이들 두 여인과 두 공간 사이에서 방황하는 탄호이저는 어떤 운명에 처해질까? 탄호이저는 사랑 때문에 저주받고, 또한 사랑 때문에 구원받게 된다. 바그너의 정신세계 속에 자리잡고 있는 사랑의 이데올로기는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이제 위와 같은 여러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자. ‘사랑’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흔하고 현실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얼핏 생각할 때 진부한 주제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바로 그 때문에 놓쳐버릴 수 있는 소중한 가치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바그너의 사랑 이데올로기는 무엇일까? 이 간단한 질문은 놀랍게도 문명의 발전이라는 과정 속에서 상실되어버린 인간의 근원적인 본성에까지 이어지는 문제를 제시하게 될 것이다.
음유시인 탄호이저의 전설
‘연가’로 번역된 독일어 원어는 민네장(Minnesang)이다. 민네(Minne)는 중고독일어(中古獨逸語)로 사랑을 뜻하고, 장(Sang)은 노래를 의미하므로, 위의 복합명사는 ‘사랑의 노래’ 또는 ‘연가’로 번역되고 있다. 이것은 중세 귀족사회의 봉건문화와 궁정문화를 특징짓는 대표적인 개념으로 간주된다.
예술의 한 장르로서 연가는 전통적으로 현악기의 연주에 맞춰 부르는 노래였다. 일반적으로 가수들이 스스로 텍스트를 작성했고, 그것에 멜로디를 부여했으며, 또한 악기를 연주하며 그 반주에 맞춰 직접 노래를 불렀고, 그것은 엄격한 의식에 의해 진행되었다. 즉 연가 가수는 텍스트를 작성해내야 하는 문학적 재능과 멜로디를 만들어내야 하는 작곡 능력, 현악기의 연주 실력과 텍스트 내용을 노래로 전환시키는 가창 능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극적으로 묘사해내야 하는 연출 능력 등 다방면에 걸쳐 골고루 재능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연가는 ‘고귀한 연가(Hohe Minne)’와 ‘저급한 연가(Niedere Minne)’로 나뉜다.
전자는 고대 철학자 플라톤이 주장했던 정신적 사랑을 이상으로 하여 궁전에서 이루어지는 귀족의 사랑을 대표했다. 연가 가수들이 사랑의 노래를 들려주는 대상은 사회적으로 높은 계급에 속한 귀족 부인들이었다. 가수들은 노래를 불러주는 화답으로서 정숙한 부인들의 사랑이 담긴 은총을 받아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일부 기사들은 자신이 가수임을 자청하고 궁전을 돌아다니며 전문적으로 귀족 부인에게 연가를 불러주기까지 했다. 이렇게 해서 귀족 부인들에게 사랑의 노래로 봉사하는 일, 이른바 “부인 봉사(Frauendienst)”3) 라는 역할이 생겨났고, 이것은 제도적으로 자리잡으면서 중세를 대표하는 하나의 직업으로 정착하게 된다.
이에 반해 저급한 연가는 형식적으로는 노래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고귀한 연가와 동일하나, 내용적인 면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특히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던 “서로 다른 두 성의 사랑(Zweigeschlechterliche Liebe)”4) , 즉 남자와 여자의 육체적이고 성적인 사랑을 목적으로 하는 노래를 뜻한다. 이때 사랑놀이에 관여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은 계급, 즉 “서민층의 여성”5) 들이었다. 이 노래 속에서는 어김없이 “포옹(Umarmung)”6) 이라는 모티브가 등장한다. 중세 말기에 가서는 이러한 연가의 저질스런 내용 때문에 사랑 자체를 터부의 대상으로 삼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탄호이저의 생애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그가 작품 활동을 했던 시기는 1228년부터 1265년 사이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7) 고향은 바이에른이었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그의 직업은 연가 가수였고, 여러 궁전을 두루 돌아다녀야 했던 직업적 특성 때문에 여행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와 동시대인으로는 같은 바이에른 출신으로 추측되는 볼프람 폰 에쉔바흐(Wolfram von Eschenbach)와 오스트리아 출신의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Walther von der Vogelweide)가 있다. 이들 둘은 탄호이저에 비해 더 분명하게 그들의 이름을 역사에 남겨놓았다. 이에 반해 탄호이저는 자신의 직업을 도중에 중단하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아마도 1228년 5차 십자군 원정에 참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8) 작곡가 바그너는 바로 이 전설적인 인물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사랑을 노래했던 가수, 귀족 부인들에게 노래를 통해 봉사를 해야 했던 그가 사라진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바그너는 바로 이 점에서 호기심이 발동했던 것이다.
특히 위의 연가 가수들은 독일 중부에 위치한 튀링겐 지방에 있는 바르트부르크에 모여 함께 경연대회를 벌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곳은 독일 연가 문화의 중심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최고의 연가 가수를 뽑는 이러한 대회를 주관했던 당시 영주는 헤르만 1세(Hermann I)다. 그는 예술과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특히 문학과 음악을 겸비하고 있는 연가 가수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었다.
이 영주에게는 예쁜 조카가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이름은 엘리자베스(Elisabeth)였다. 어느 날 그녀는 노래경연대회에서 탄호이저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그의 노래에 심취했고, 또한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녀의 사랑 감정은 온 정신과 감각을 집중시킬 정도로 열렬했음에도, 그 사랑은 정신적 차원에서만 머물렀다. 결국 탄호이저는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그를 처음 만났던 곳, 노래경연대회가 열렸던 그 홀에 두 번 다시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고 한다.9)
〈탄호이저〉 초판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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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는 음악과 문학을 함께 조화롭게 합쳐놓은 예술작품을 지향했다. 일명 “총체예술작품(Gesamtkunstwerk)”10) 이 그의 이상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연가 가수들의 노래와 사랑에 대한 열정은 그에게 이러한 종합 예술이론을 위한 모범으로 작용하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말하자면,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인이라는 얘기다. 문학과 음악을 동시에 섭렵해야 하는 이중적 부담은 높은 차원의 예술을 가능하게 해주는 복합적인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탄호이저가 모습을 감춘 진정한 이유다. 그의 직업은 감정에 호소하는 사랑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 연가의 목적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정말 귀부인의 은혜를 받아내는 것에만 제한되어 있는 것일까? 말하자면 포옹이나 키스 또는 성적인 관계가 배제되어 있는 그런 결말일까? 만약 그것이 진정한 목표라면 탄호이저와 엘리자베스의 관계는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미루어보아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탄호이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경연대회가 열렸던 곳, 사랑을 처음 알게 된 그곳에 두 번 다시 발을 들여놓지 않은 엘리자베스의 진정한 마음은 또한 무엇일까?
모든 것은 그저 전설 속에서 추측해낼 수밖에 없다. 정확한 답은 없다는 얘기다. 바그너는 바로 이러한 소재를 가지고 자신의 예술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엘리자베스 프렌첼은 탄호이저의 전설을 소개하는 짤막한 글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이 시인은 여성들이 느끼는 육체적 자극을 즐겨 표현했고, 또한 자기 자신이 몰락한 데는 여자와 향락적 생활이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고백했다.11)
이 정보는 바그너의 작품 〈탄호이저〉를 분석하는 작업에 실로 많은 것을 해결해주는 열쇠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시인이 몰락한 원인에 대한 추적은 중세적 가치관과 인간적인 솔직한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예술가적 인간상에 대한 이해로 연결된다.
기독교의 윤리와 비너스의 망명 전설
〈탄호이저〉의 무대는 여신 비너스(Venus)의 세계부터 시작한다.12) 바르트부르크에서 모습을 감춘 탄호이저는 지금 비너스의 산에서 비너스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가 그곳으로 간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 이유가 드러나는 대목이 바그너 무대의 첫 장면을 장식하고 있다. 비너스는 한때 지중해의 동쪽에 위치한 “사이프러스(Zypern)”13) 란 섬에서 살고 있었다. 그녀의 그리스 이름은 아프로디테(Aphrodite)였다. 그녀는 고대의 여느 다른 신들과 마찬가지로 이교도적(heidnisch)이었고, 그녀 자신도 이미 고대 여신의 반열에 속해 있었다. 특히 그녀는 “육욕적인 사랑(fleischliche Liebe)”14) 또는 “육체적 사랑(körperliche Liebe)”15) 을 지향했던 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알렉산드르 카나벨, 〈비너스의 탄생〉(1863), 루브르 미술관
비너스 여신은 원래 로마 신화에 나오는 여신이었지만, 특성상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랑과 미와 풍요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동일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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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독교가 서양에 들어오면서부터 유일신 사상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고, 또한 남녀 사이의 성적 관계에 비판적인 입장이 사회적 주류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 결과 고대 그리스 신들의 입지는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육체적 사랑을 지향했던 비너스가 설 자리는 없어지고 만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추종하는 이들과 함께 신들의 세상을 등지고 북쪽으로 피신을 하게 되었다.16) 밝은 세상에서 어두운 지하세계로 보금자리를 옮기게 된 것이다. 비너스 여신이 새롭게 정착하게 된 곳이 바로 회르젤베르크(Hörselberg)라고 불리는 산이다.17) 이 산은 석회로 이루어져 있어서 크고 작은 동굴들이 많았다. 그중에 한 적당한 동굴을 선택하여 비너스는 자신의 이교도적 종교 행사를 계속했다. 이 동굴은 오늘날 ‘비너스의 동굴(Venusgrotte)’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곳에서 그녀는 종교적인 성스러운 행동으로 간주해오던 오르기에(Orgie)18) , 즉 사랑의 축제 또는 섹스 축제를 계속하게 된다. 요정들은 노래를 불렀고, 무녀들은 춤을 췄다. 이들은 원래 고대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축제에서 활동을 했으나, 지금은 이곳에서 비너스와 함께 그녀의 축제에 동원되고 있다. 디오니소스 축제와 마찬가지로 비너스 축제도 술을 마시며 그 취기를 즐기는, 즉 말 그대로 “도취(Rausch)”와 “황홀(Ekstase)”19) 을 목적으로 하는 행사였다. 비너스 축제에서 육체적 사랑은 진정한 도취의 경지에 오르기 위한 과정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술과 섹스는 비너스 축제에서 핵심을 이루는 요소였다. 특히 육체적인 사랑 행위는 ‘오르가즘’을 느끼게 해주었고, 이것을 통해 도취, 즉 “자기 밖 존재(Außer-sich-Sein)”20) 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비너스의 동굴 속에는 ‘열광적인 음악’이 울려 퍼졌고, “매혹적인 향기들”21) 이 가득했다. 이런 가운데 수많은 남녀들이 서로 포옹을 하였고, 섹스를 즐겼다.
이러한 비너스의 축제는 “감각적인 것을 적대시하는 기독교의 도덕”22) 에서는 절대로 허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대 신들의 입장에서 이런 축제는 결코 “망상으로, [또는] 속임수와 실수의 산물로”23) 치부될 수 없었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비너스 여신은 유쾌하고 만족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비너스의 세계에 탄호이저가 있었던 것이다. 바그너 작품의 첫 장면은 따라서 많은 것을 압축해서 보여주게 된다.24) 그에 따라 또한 수많은 것을 추측하게 해주기도 한다.
사랑에 대한 비너스의 경고
비너스의 세계에서 욕정의 세월을 보냈던 탄호이저는 그 기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조차 없을 정도로 길다고 한탄한다.
내가 이곳에서 보낸 시간들을 이제 측정할 수가 없구나. / 낮과 달이 내게는 더 이상 /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태양을 더 이상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 하늘의 예쁜 별들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있다. / 신선하게 영글어가며 새로운 여름을 가져다주는 / 곡식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있다. 봄을 알리는 / 밤꾀꼬리의 울음소리도 더 이상 듣지 못했다. / 그 울음소리를 결코 듣지 못하는 것일까, 그 새들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하는 것일까?
노래 소리는 실망으로 가득 차 있다. 반복되는 ‘더 이상’이란 수식어를 통해 전달되는 좌절감은 탄호이저의 현실 인식을 전하고 있다. 그의 슬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비너스는 “신이 된 것이 그대를 이토록 후회하게 만들고 있는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하프를 잡으시오! / 당신이 그토록 멋지게 부르는 사랑을 노래하세요! / 사랑의 여신을 당신 것으로 만들었던 그 노래를 말입니다!25)
존 콜리에르, 〈비너스 산에 있는 탄호이저〉(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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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충만한 비너스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은 탄호이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삶이지만 변화가 없는 생활 속에서 그는 후회의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고뇌하고 있다.
나는 변화의 신하라오.
변화를 동경하는 탄호이저의 마음은 너무나도 간절하다.
내 마음은 욕망만을 원하는 게 아니라오. / 즐거움으로부터 나는 고통을 동경하고 있다오.
변화도 없고, 고통도 없는 비너스와의 삶은 신들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역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호이저는 그 세계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고 있다.
당신의 세계로부터 나는 벗어나야 합니다. / 오, 여왕이시여, 여신이시여! 나를 보내주시오!
비너스는 탄호이저가 곁에 남아주기를 설득해본다. 하지만 탄호이저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당신 곁에서 나는 그저 노예에 불과할 뿐입니다. / 하지만 나는 자유를 원합니다. / 자유, 자유를 갈망하고 있어요.
결국 비너스는 분노하게 된다.
그대에게 자유를 주겠소. 가시오! 떠나시오! / 당신이 원하는 것은 당신의 운명이 될 것이오!
그러면서 비너스는 협박조로 탄호이저에게 저주를 예언한다.
당신의 행복을 찾아보시오! / 당신의 행복을 말입니다! 하지만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이오! / [···] 악령의 마법에 걸려, 저주를 받을 것이며, 조롱이 당신의 뒤를 따라다닐 것이오.
이 모든 으름장에도 불구하고 탄호이저는 “영원히 이별을 고하오. 안녕! / 여신이여,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오.” 라고 말하면서 그는 황홀의 여신에게서가 아니라, 성스러운 “마리아(Maria)”에게 자신의 행복이 있음을 주장한다. 이 이름을 들은 비너스가 결국 모습을 감춘 다음 탄호이저는 바르트부르크 성 앞에 위치한 숲속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세상의 경멸과 교황의 저주
비너스 세상에서 벗어난 탄호이저는 이제 봄기운이 만연한 튀링겐의 울창한 숲속에서 방랑을 계속한다. 목동은 해맑은 목소리로 5월의 꿈같은 분위기를 노래로 표현해낸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순례자의 노래가 들려온다. 참회와 속죄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가는 행렬에서는 무거우면서도 성스러운 분위기가 전해진다. 바르트부르크 성 앞에서 그는 영주 헤르만과 과거 함께 노래경연대회에 참가했던 동료들을 만난다. 그들 모두는 그를 알아보며 기뻐한다. 그들은 방랑하는 탄호이저를 설득하여 함께 성 안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탄호이저는 엘리자베스를 다시 만난다. 둘은 재회의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그녀는 무릎을 꿇는 탄호이저에게 노래 경연이 이루어지는 이 강당에서는 그가 바로 왕임을 인식시키며 일어날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노래경연대회가 열린다. 영주 헤르만은 노래라는 예술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밝혀보라는 과제를 제시한다. 그리고 가장 멋지게 부르는 자에게 엘리자베스가 상을 내릴 것이라 선언하며, 이 상을 위해 모든 가수들은 싸워보라고 명한다. 탄호이저는 자신의 모험여행에 대해서, 즉 자신이 사라졌던 이유는 비너스 산으로 들어갔었기 때문임을 노래로 고백한다. 하지만 반응은 거부감으로 나타난다.
그는 비너스 산에 있었다!
모두들 그의 곁에 다가서는 것조차 거부한다. 그곳에 발을 들여놓은 것 그 자체가 이미 저주를 받아 마땅한 것임을 일깨운다. “하늘의 저주(Des Himmels Fluch)”는 이미 그에게 떨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탄호이저를 변호한다.
그에게서 물러들 나시오! 그대들은 그의 판결단이 아니오!
엘리자베스의 발언은 절대적이었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노래경연대회의 진정한 심판자는 순결한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당당히 자신의 의지를 신의 의지와 결부시킨다.
나를 통해 신의 의지를 인지하세요.
영주 헤르만도 그에게 기회를 주고자 한다. 즉 탄호이저는 로마로 가서 자신의 죄에 대해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에게 속죄를 하고, 또한 친구들과 세상 사람들로부터 용서받을 기회에 대한 희망과 꿈을 안고 탄호이저는 순례자들과 함께 로마로 향한다.
세월이 흘러 여러 다른 순례자들은 돌아오고 있는데, 탄호이저는 돌아오지 않는다. 엘리자베스는 걱정과 실망의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간절한 기도를 하며 그가 반드시 돌아와줄 것을 호소한다. 하지만 기다리다 지친 엘리자베스의 운명은 서서히 비극적인 분위기로 변해간다. 그녀의 죽음을 암시하는 어두운 분위기가 무대를 지배한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지만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는 지속된다. 볼프람은 친구 탄호이저의 죽음을 예감하는 슬픈 노래를 부른다. 바로 이때 탄호이저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친구에게 로마에 갔었지만 교황으로부터 은총을 받아내지는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자신이 들은 교황의 발언을 그대로 전한다.
사악한 쾌락을 누리고 / 지옥의 불길에 그대 자신을 태우며 / 비너스 산에 머물렀다면 / 그대는 영원히 저주 받을 것이다. / 내 손에 쥐여 있는 이 지팡이에서 / 결코 푸른 새싹이 돋아나지 않는 것처럼 / 그대는 지옥의 뜨거운 불길로부터 / 결코 구원 받지 못하리라!
전설에 의하면 탄호이저에게 이토록 무자비한 저주를 내린 교황은 우르반 4세(Urban IV)였다고 한다. 이 “교황의 저주”26) 를 듣는 순간 탄호이저는 실망이 너무나도 커 기절하고 말았다고 친구 볼프람에게 고백한다. 황량한 들판에서 어두운 밤이 되어서야 그는 깨어났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교회의 성스러운 노래 소리에 그는 역겨움을 느꼈다고 한다. 모든 것은 거짓말 같은 소리들로 들렸고, 그 소리들은 결국 그의 영혼을 얼음처럼 차갑게 만들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탄호이저는 다시 비너스에게 되돌아가기로 작정한다.
당신에게로, 비너스 부인이여, 다시 되돌아가겠소.
옆에 있던 친구 볼프람이 그를 막아보지만 탄호이저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저주하는 소리들을 자네도 들었지 않은가. / 이제, 사랑스런 여신이여, 그대가 나를 인도하소서!
그러자 밝고 매혹적인 장밋빛이 드리워지고 그곳에서 비너스가 등장한다.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탄호이저를 용서하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라고 유혹의 손길을 뻗는다. 볼프람은 엘리자베스의 이름을 외치며 도움을 청한다. 순간 탄호이저는 경직되고 만다. 그러면서 그도 잊고 있었던 “엘리자베스!”의 이름을 외친다. 그러자 비너스와 그 주변의 모든 마법의 현상들은 사라지고, 볼프람은 “하인리히여, 그대는 구원되었도다!”라고 외친다. 하지만 탄호이저는 기력을 상실한 채 쓰러지고 만다. 서서히 계곡에 아침 여명이 밝아올 즈음 바르트부르크로부터 시작된 긴 장례 행렬이 무대 위를 장악한다. 그 행렬은 열려 있는 관을 하나 들고 지나고 있다. 그 속에는 엘리자베스가 누워 있다. 탄호이저는 괴로워하며 “성스러운 엘리자베스여, 나를 부탁하오!”라는 마지막 소원을 내뱉으며 죽는다. 극은 젊은 순례자들의 힘찬 노래와 함께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들은 기적처럼 새싹이 돋아난 교황의 지팡이를 로마로부터 가져왔음을 알린다.
순례자의 손에 들려 있는 이 가녀린 지팡이에 초록의 신선한 새싹이 돋아났도다!
이것은 곧 신이 탄호이저에게 구원을 허락한 징표였던 것이다. 무대는 신을 찬양하는 합창으로 막을 내린다.
온 세상의 저 높은 곳에 신이 있도다. / 그리고 그의 자비로움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탄호이저와 파우스트, 상반적 사랑을 통한 구원
엘리자베스에게는 자주 “성스러운(heilig)”27) 이라는 형용사로 특성이 규정된다. 그녀는 탄호이저의 구원을 실현시켜주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구원이 가능해진 것이다. 엘리자베스의 사랑은 헌신적이었고, 또한 희생적이었다. 그녀의 사랑은 정신적인 차원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비너스는 육체적 사랑의 대명사다. 그녀는 언제든지 탄호이저가 진정으로 원하기만 하면 등장해주는 마법과 같은 그런 사랑이다. 탄호이저는 비너스 산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 모를 정도로 오랫동안 그곳에서 생활하였음을 고백했었다. 그곳으로 가는 것도 그가 스스로 정한 운명이었고, 그곳의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떠난 것도 자신이 정한 길이었다. 그 길고 긴 시간을 행복과 만족을 위해 소비했지만, 그는 결코 자신이 원하는 그런 결과를 얻어내지 못한 것이다. 실망과 좌절만이 그의 마음을 극단으로 몰고 갈 뿐이었다.
엘리자베스에 대한 사랑은 정신적인 영역에만 머물러 있어야 하기에 너무나 괴로웠고, 비너스에 대한 사랑은 육체적 사랑만 추구하기에 정신적 갈증을 해소해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비너스 곁에 머물렀다는 이유로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교황으로부터 저주를 받는다. 하지만 신은 그를 구원해준다. 마지막 순간에 그 성스러운 이름 엘리자베스를 불러주었기 때문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도 이와 비슷한 논리의 구원을 보여주었다.28) 1부에서의 그레트헨과의 사랑, 그리고 2부에서의 헬레나와의 사랑은 탄호이저와 비너스의 사랑에 비교될 수 있다. 낭만적이면서도 또한 감각적이고, 그리고 육체적인 사랑을 대표하는 사랑들이다. 하지만 탄호이저를 구원으로 이르도록 해주는 엘리자베스와의 사랑은 파우스트 박사에게 인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여성성(Ewigweibliche)”29) 으로, 즉 추상적으로 제시된다. 여성성은 남성성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남성성은 영원한 것의 반대적인 속성으로서 어떤 한계가 있어야 할 것이다. 파우스트 박사에게 남성성은 끊임없는 학구열과 호기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식욕 등으로 설명될 수 있다. 끊임없이 위기로 치닫게 하는 실망과 좌절은 파우스트 박사를 한계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하지만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열정과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바로 이러한 굽힐 줄 모르는 강렬한 남성성은 언제나 여성성의 또 다른 극단적인 힘에 의해 구원을 얻게 해주는 모태가 되는 것이다.
파우스트의 구원과 비슷하게 탄호이저에게도 구원은 우선 저주 받아 마땅한 전제가 있다. 그것은 비너스와의 사랑이다. 모두들 그의 삶에 있어서 저주는 영원할 것이라 믿었고, 그 때문에 그를 멀리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바그너는 탄호이저를 구원의 대상으로 설정해놓는다. 비너스에 대한 사랑은 지옥 불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하는 그런 대상이 결코 아님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파우스트’와 ‘탄호이저’는 둘 다 성(姓)이고, 두 사람 모두 하인리히(Heinrich)라는 동일한 이름을 갖고 있다. 괴테나 바그너는 작품 속 주인공 이름을 의도적으로 설정했었다. 게다가 괴테보다 후대 사람인 바그너의 결정에는 파우스트 박사의 이름이 무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좌절과 방황이라는 측면에서 이들 두 인물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구원을 실현시켜주는 ‘영원한 여성성’이나 ‘성스러운 엘리자베스’는 이름만 다를 뿐, 둘 다 기독교적 영역을 인정하고 있는 개념들이다.
무신론과 감각적 사랑
바그너가 오페라 〈탄호이저〉를 통해 제시하고 있는 사랑의 이데올로기는 과연 무엇일까? 바그너는 1841년에 출판되어 전 유럽을 흥분시켰던 루트비히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의 『기독교의 본질(Das Wesen des Christentums)』을 읽고 큰 감동을 받는다. 이후 그는 이 철학자의 이론을 자신의 정신세계로 접목시키는 데 주력한다. 특히 바그너가 주목했던 부분은 절대적인 신의 사랑에 의해 구원된다는 전통 기독교의 구원 논리를 거부하는, 인간애(Menschenliebe)를 바탕으로 한 현세지향적인 종교론이었다.
게다가 바그너는 1843년에 출판된 포이어바흐의 『미래 철학의 기본 강령(Grundsätze der Philosophie der Zukunft)』을 통해서도 큰 영향을 받는다. 포이어바흐는 이 책에서 과거 헤겔의 절대정신을 거부하고, “새로운 철학(Neue Philosophie)”30) 을 위한 전제조건들을 제시했다. 그에게 미래에 대한 고민은 곧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기 위한 고민이었던 것이다. 미래의 철학은 곧 새로운 철학을 의미했고, 이 새로운 철학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사고의 틀과 형식을 제시해야 한다는 사명을 갖게 된다.
포이어바흐는 새로운 철학이 사랑의 진실, 그리고 감성의 진실 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31) 사랑과 감성 안에서 모든 인간들은 새로운 철학을 일궈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감성은 의식화된 차원으로 상승되어야 함을 요구한다. 새로운 철학은 이성을 통해 인정하지만, 동시에 그 이성은 모든 인간이 마음속에서 느끼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철학에서는 이성을 활용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마음은 추상적이거나 형이상학적 또는 신학적인 것을 거부한다. 마음은 실재적이고 감각적인 대상과 본질을 원한다.32)
포이어바흐에게서 얻은 이러한 생각들을 정리하여 바그너는 자신의 예술이론으로 발전시킨다. 그 결과가 바로 1850년 『미래의 예술작품(Kunstwerk der Zukunft)』이란 책으로 출판된 것이다. 바그너는 포이어바흐와의 영향 관계를 밝히기 위해 이 책을 그에게 헌정했다.
존경하는 선생님, 당신 외에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이 글을 바칠 수가 없군요. 왜냐하면 이 글과 함께 저는 당신의 모든 것을 당신에게 돌려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33)
이 책에서 그는 예술가는 반드시 혁명적 사상으로 무장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혁명은 새로움에 대한 인식과 관련되어 있다. 즉 예술은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해야 할 뿐만 아니라, 더 아름다운 인간을 교육해야 하는 임무를 지녀야 한다. 아름다움은 “감각(Sinnlichkeit)”34) 을 근간으로 하고 있어야 한다. 인간에게 고유한 본질적 특성은 사랑이며, 또 그 본질은 감각을 배제해서는 결코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가장 인간적인 사랑을 “감각적인 사랑”35) 으로 간주한다. 여기서 말하는 감각적인 것은 육체적이고 정욕적인 것 등을 모두 포괄하고 있는 개념이다.36) 가장 감각적인 사랑이 가장 인간적인 사랑이라는 논리 속에서는 이성과 금욕을 지향하는 중세 전통 기독교의 종교적 사랑 논리와 종교적 인간이 거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바그너의 무신론적 종교관이 감각적인 사랑론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바그너의 사랑 이데올로기는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에서도 나타났다. 하지만 여기서는 다만 인간에 의한 구원, 즉 인간을 위한 사랑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여주인공 젠타와 네덜란드인의 사랑은 육체적 결합을 전제로 한 사랑이 아니었다. 그들의 사랑은 오로지 정신적인 영역에서만 진행되었다.
하지만 〈탄호이저〉에서는 비너스와의 감각적인 사랑과 엘리자베스와의 정신적인 사랑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중세적 전통 속에서는 전자의 사랑은 ‘죄’로, 그리고 후자의 사랑은 “하늘의 권력”37) 으로 해석되었다. 바그너의 사랑 이데올로기는 바로 이러한 대립구조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왜냐하면 탄호이저의 비극적 요소는 그가 이들 두 형태의 사랑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단력 부족이나 개인적인 성격적 나약함 등의 문제와는 별개의 것이다.
두 여인은 똑같은 강도의 수준으로 탄호이저를 열망한다. 이들은 ‘서로 상반되는 성격’이나 ‘서로 다른 개성’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사랑의 두 가지 형태”38) 를 상징적으로 제시해주고 있다. 비너스는 ‘연애’와 ‘성생활’의 화신으로,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희생정신을 내포하고 있는 기독교적인 “이웃사랑”39) 의 전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바그너의 사랑 이데올로기는 이들 두 가지 사랑 개념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의 속성을 모두 합쳐놓은 것을 지향한다.40) 이것이 바로 인물 탄호이저가 가슴속에 품고 있는 “유토피아적인 희망”41) 인 것이다.
기나긴 중세를 거치면서 유럽 사회는 금욕주의로 일관하는 기독교적인 이웃 사랑만을 고집해왔다. 바그너는 이러한 전통적인 사랑 개념을 결코 거부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이러한 기독교적 사랑의 성스러움이 구원의 열쇠가 되고 있음을 진지하게 인정하고 있다. 그가 작품 속에서 물음표를 던지는 것은 성적인 관계를 죄악시하고, 그러한 행위에 대해 서슴없이 저주를 내리는 중세적 가치관과 그 시각이다.
청년독일파의 여성 해방 의식
바그너가 제시하는 사랑 이데올로기의 시대적 의미는 청년독일파의 여성 해방 의식과 맞물려 있다. 메테르니히의 빈 체제에 의한 왕정복고 정치가 유럽을 지배할 시점인 1815년부터 시작하여 3월 혁명이 일어나자 그가 런던으로 망명하던 1848년까지를 3월전기라고 한다. 특히 이러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정치성향이 짙은 문학가들이 “청년독일파”42) 라는 이름 아래 힘을 합쳐 체제 비판과 개혁을 지향하는 글들을 발표하게 된다. 이들의 전성기는 1830년부터 1850년까지로서 19세기 중반의 독일 저항문학 또는 혁명문학을 대표한다.
청년독일파가 주장했던 혁명 사상들의 핵심 내용은 1) 정치적 자유, 2) 사상의 자유, 3) 출판의 자유, 4) 해방으로 압축될 수 있다. 마지막에 거론된 ‘해방’은 무엇보다도 시민과 유대인, 그리고 여성의 해방에 중점을 두었다.43) 특히 바그너의 〈탄호이저〉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부분은 여성 해방에 대한 의식이다. 청년독일파는 여성도 교육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주장하면서 여성이 사회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자 했다. 당시 여성에 대한 차별 대우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속해 있었다.
남성에게만 허락되는 교육의 영역은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머물게 했고, 가정 또는 집안일을 전통적인 여성의 영역으로 한정함으로써 당시 사회는 여성 배타적인 성향을 강하게 띠었다. 바로 이러한 과거의 악습에 청년독일파는 비판적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다. 특히 결혼과 사랑이라는 영역에서 여성은 거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44) 게다가 사랑을 성 관계 차원으로 폄하하는 부정적 시각, 즉 중세 후반기적 이념들이 사회적 통념으로 자리잡았다. 극중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통념이 무엇보다도 우르반 4세의 저주 속에서 전달되었는데, 그의 생각과 입장은 바로 타협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고 탄호이저를 궁지로 몰고 가는 사회적 일반 이성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고정관념으로까지 굳어지게 되었다.
사랑 자체를 금기의 대상으로 간주했던 중세적 이데올로기에 대해 바그너는 비너스와 엘리자베스라는 인물들을 통한 대결 구도로 반박한 것이다. 청년독일파 시인들에게 ‘사상의 자유’는 곧 ‘느낌의 자유’45) 와 동일시되고 있었다. 그만큼 감각세계에 대한 새로운 평가에 대해서 청년독일파는 긍정적이고도 과감했던 것이다.
우리 인생은 짧다. 하지만 즐거움은 [인생의] 날들을 요구한다. 인간은 향락을 위해 만들어졌다. 오, 인간이여! 이것만이 너의 소명이다. [···] 새 아침을 밝히는 이 간단한 철학은 오로지 우리 오감각과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을 일깨워주는 호소일 뿐이다.46)
시대의 변화를 주도하는 사회의 엘리트라고 자칭했던 청년독일파의 의식은 한마디로 감각 영역에 속해 있는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 곳에서 그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47) 감각세계에 대한 극단적인 표현들은 모두가 과거의 중세적 가치관에 얽매여 있는 전통적 일반 이성에 저항하는 목소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각세계를 대표하는 개념으로서 청년독일파 시인들은 사랑을 꼽는다.
사랑이여! 아직도 그대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대는 내 삶의 닻이도다.48)
그들에게 사랑은 즉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힘으로 해석되고 있다.
청년독일파 작가들이 낭만주의의 산물에 대해 극단적인 대립양상으로 토론을 펼쳐나간 데 반해, 바그너는 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면서도 한 단계 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바그너의 무대에서는 비너스와 엘리자베스라는 두 명의 여성 인물을 세움으로써 저급한 사랑과 고귀한 사랑을 직접 토론하게 만들고 있다. 이들 두 인물은 서로 반대되는 성격을 보여주고 있지만, 어느 하나가 승리하고, 또 다른 하나가 패배하는, 일종의 흑백논리 형식으로 극이 진행되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에서도 좌절한 탄호이저는 비너스에게 가서 위로를 받고자 한다. 그는 춤추는 요정들이 보여주는 “황홀함”과 쾌락적 “욕망”을 갈망한다. 탄호이저 앞에 다시 나타난 비너스는 “어서 오세요, 믿음이 없는 그대여!” 하면서 자기를 버리고 떠났던 그를 원망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기꺼이 맞이한다. 탄호이저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구하지 못했던 연민의 동정을 마침내 비너스의 품 안에서 구하고 있는 것이다.
비너스 부인, 오, 연민의 동정심이 풍부한 그대여! / 그대에게로, 그대에게로 나를 이끄소서!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감각적 욕망”49) , 그것이 바로 인간의 욕망인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비너스에게로 향하는 탄호이저의 발걸음은 완전한 행복을 쟁취해가는 그런 힘찬 모습이 아니다. 그의 운명에 드리워져 있는 어두운 그림자, 그것은 바로 영원히 만족하거나 채워질 수 없는, 즉 무한한 인간의 욕망에 무엇인가가 부족하다는 점을 암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탄호이저는 자신이 지향하고 있는 것이 중세적 가치관 속에서는 “지옥의 욕망”에 해당함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그를 좌절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광기 속에 사로잡혀 있는 그에게 친구 볼프람은 엘리자베스의 이름을 상기시켜주고, 그 이름을 외치자 비너스는 사라지고, 볼프람과 청년 순례자들은 그가 구원되었음을 알린다.
긴 방황과 고뇌에 비하면 구원의 순간은 너무나도 갑작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짧은 구원 장면 속에서 바그너의 의도를 확연하게 설명해내기란 어렵다.50) 탄호이저가 궁극적으로 어느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구원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문제의 핵심이다. 최후의 순간에도 비너스에게서 구하고자 하는 쾌락적 욕망과 연민의 정을 결코 거부하거나 부정한 것이 아니었다. 바그너가 시대적 이슈로 제시하고자 했던 사랑 이데올로기는 비너스적 사랑과 엘리자베스적 사랑의 합일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랑의 두 속성
우리의 관심은 바그너의 〈탄호이저〉에 나타난 사랑 논쟁과 이에 관련된 바그너의 사랑 이데올로기에 있다. 드레스덴 시절에 발표한 마지막 작품인 〈탄호이저〉는 특히 중세기를 거치면서 절정에 달했던 연가와 그것을 노래로 불렀던 가수의 전통을 소재로 삼고 있다. 사랑을 노래했던 가수들, 그들은 귀족 부인들로부터 사랑의 징표로서 어떤 은총을 받아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
탄호이저는 볼프람 폰 에쉔바흐 그리고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와 동시대인이었고, 이들은 모두가 시인인 동시에 자신의 문학적 텍스트를 노래 형식으로 바꾸어 직접 불렀던 가수들이다. 이들 중에서 바그너는 특히 모습을 감추고 사라졌던 탄호이저의 전설에 주목을 한다. 중세적 사랑관은 탄호이저의 방황을 부추기는 요소로 밝혀졌다. 육체적 쾌락과 정욕, 그리고 황홀한 감정이 넘쳐흐르는 비너스 산에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또한 회개하기 위해 찾아갔던 교황으로부터 저주를 받는다. 실망한 그는 다시 방랑길에 오르면서 비너스에게로 되돌아가려 한다.
탄호이저를 사랑하는 또 다른 여인은 엘리자베스다. 그녀는 성스러운 정신적 사랑의 대명사로 나타난다. 그녀의 헌신적인 사랑은 탄호이저의 구원을 가능케 하는 힘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바그너의 사랑과 구원의 논리가 엘리자베스의 종교적 사랑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음에 주목하였다. 그에게 사랑은 비너스적 요소와 엘리자베스적 요소를 모두 지니고 있는 일종의 합일체로 봐야 할 것이다.
구원은 어느 한쪽의 힘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현실적 삶의 근간이 되는 성적 관계 속에서 황홀함과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결코 지옥에 떨어져야 할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탄호이저에 대한 교황의 저주는 부당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물로서의 탄호이저는 괴테의 파우스트와 마찬가지로 방랑하는 인생을 보여주었다.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위로와 행복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세기를 맞이하여 절정에 이르렀던 금욕적 사랑관을 주장하는 현실 속에서 그는 결코 진정한 구원의 가능성을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그의 삶에 대한 저주가 중세적 판단의 결정체였음을 볼 수 있다. 중세사회의 일방적 사랑 관념을 거부하고, 인간세계의 현실적 사랑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종교적 차원의 성스러운 사랑에 의해 구원받는다는 탄호이저의 구원 논리는 너무나도 인간적이다.
바그너가 탄호이저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사랑관은 청년독일파의 여성 해방 의식과도 맞물려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신성을 통해 인간성을 규정하려는 중세적 가치관을 극복하고, 인간성을 근간으로 하여 성스러운 종교적 정신세계의 사랑을 지향해나가는 것이었다. 육체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은 결코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는 반대 개념이 아니라, 사랑의 두 속성일 뿐이라는 것이 바그너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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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건국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독일 바이로이트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쇼펜하우어, 돌이 별이 되는 철학》, 《나르시스, 그리고 나르시시즘》, 《삐뚤빼뚤 생각해도 괜찮아》(공저)가 있으며, 《교실혁명》, 《산만한 아이 다정하게 자극주기》를 우리말로 옮겼다. 논문으로 릴케의 작품 속에 나타난 나르시스와 거울,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나타난 광기와 진실한 사랑이 있다.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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