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rn/독서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과학책 ‘종의 기원’

인서비1 2018. 1. 8. 16:52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과학책 ‘종의 기원’
  • 페이스북
재미없는 가장 큰 이유는 눈으로 읽는 글이 머릿속에서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 유학 시절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아니, 넌 어떻게 생화학을 한다는 놈이 <종의 기원>도 안 읽었니? 당장 읽어 와!’라고 불호령을 치셨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정모라는 분이 있다. 독일에서 생화학을 공부했고 귀국해서는 학교 교수로 있다가 서대문자연사박물관으로, 또 거기서 자리를 옮겨 올해 초 신립개관한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으로 일하는 분이다. 이 사람, 흥미롭다. 과학자인가 싶은데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이야기꾼이란 오래된 이야기든, 생소한 이야기든, 일상의 자잘한 일이든, 역사 속의 명장면이든 그것을 자신만의 사유와 지식으로 재구성하고 이를 독창적인 내러티브로 전개해나가는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나는 ‘스토리텔링’이라든가 ‘스토리텔러’라는 말을 싫어한다. 재주꾼 같은 느낌? 아니면 뭔가 돈이 되고 이문이 남는 ‘문화산업 종사자’처럼 들린다. 

반면 이야기꾼이라는 낡고 닳은 호명은 그 사람이 폭넓은 사유와 독창적인 해석, 그리고 어떤 권위에도 기대지 않는 독자적인 생각을 가졌음을 말해준다. 이정모 관장은 과학계의 정설을 고리타분하지 않게 풀어낼 뿐만 아니라 통설을 가차없이 비판하고 이설을 여지없이 타파한다. 자연사와 과학 분야의 전문 박물관장이니 이야기꾼이 곧 그의 직업이기도 하다.

 생물학자 찰스 로버트 다윈(1809~1882)의 생전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생물학자 찰스 로버트 다윈(1809~1882)의 생전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2장으로 넘어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고, 고교 시절에 교회에서 만난 사람과 살고 있고, 주일을 성스럽게 지키는 신자다. 그냥 신자 정도가 아니라 집사다. 그런 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평일의 삶과 주일의 삶이 모순되지 않느냐고. 평일에는 과학자로서 진화론의 체계에 따라 자연사를 연구·수집·재구성·전시하고 주일에는 신자로서 창조주를 기려야 하는데, 모순되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게 헷갈리고 그게 모순되고, 그래서 그것을 어느 쪽으로든 합치려고 한다면 그야말로 엉터리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참된 신앙인으로서 기독교 정신에 따라 성경을 자주 읽고 깊이 묵상하며 그 가르침에 따라 살고자 한다면 응당 인류사의 오래 축적된 합리적 지식의 토대 위에서 견실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모순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2016년 8월에 쓴 칼럼에서 이렇게 말한다. 

“소위 ‘창조과학’ 또는 ‘지적 설계론’ 진영 사람들은 진화론에 허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그런 허점 때문에 다윈의 자연 선택론은 터무니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허점’이란 다윈이 <종의 기원> 제6장 ‘이 이론의 난점’에서 이미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들이다. 거기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창조론자들이 안쓰러울 뿐이다.” 

스스로 사퇴했지만, 터무니 없는 역사관과 일그러진 과학관으로 사실상 여론과 지식계의 세찬 뭇매를 맞고 물러난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전적으로 이정모 관장의 과학정신과 신앙정신의 ‘높은 차원의 조화’를 신뢰한다.

이제 다윈 이야기를 해보자.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말이다. 그는 20대 초반에 해군 측량선 비글호를 타고 머나먼 갈라파고스로 가서 58개월을 머물면서 수집하고 연구한 후 오랜 논쟁적 연구과정을 거쳐 마침내 1859년 11월 22일, 무려 504쪽에 달하는 <종의 기원>을 출간했다. 책은 단 하루 만에 1250부나 팔렸다. 오늘날과 같은 출판 ‘산업 마케팅’이 발달하지 않은 시기를 고려한다면 가히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차라리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를 읽으라 

<종의 기원>, 이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앞부분은 그런대로 흥미롭게 봤지만 꽤나 고생하며 읽었고, 제대로 알아듣기 어려웠고, 많은 대목이 지루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읽었다고는 전혀 말할 수 없다. 참으로 다행인 것이 그 책이 원래 그런 책이라고 이정모 박물관장도 말한다. 앞서 언급한 칼럼에서 이정모는 “한국어, 영어, 독일어로 도전해보았지만 내 젊은 시기에는 2장으로 넘어가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강조하건대 <종의 기원>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과학책이다. 재미없는 가장 큰 이유는 눈으로 읽는 글이 머릿속에서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 유학 시절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아니, 넌 어떻게 생화학을 한다는 놈이 <종의 기원>도 안 읽었니? 당장 읽어 와!’라고 불호령을 치셨다. 독일어로 읽어도 서문만 재밌었다.”

찰스 다윈의 서간집 표지 이미지.

찰스 다윈의 서간집 표지 이미지.

옳거니, 서문만 재밌었다고 과학전문가이자 천하의 이야기꾼도 말하지 않는가. 그러니 우리도 <종의 기원>, 그 서문이라도 읽어보자.

“과거의 여러 지질시대 동안에 살고있었던 생물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 우리로서는 아직 아는 바가 매우 적다. 이밖에도 수많은 일들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은 채 남아있을 것인 바, 이에 대해 나로서는 박물학자들이 근래까지 품고 있던 견해, 즉 각 종들은 개별적으로 창조되었다고 생각하는 견해가 잘못된 것임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156년 전 학자도 이렇게까지 성실히 연구하여 단호히 밝힌 입장을 2017년에도 ‘지구 나이는 6000년 운운’하는 사람이 한 나라의 과학기술산업을 책임지는 최고의 공직에 서고자 했다는 게 ‘웃픈’ 현실이다.

이정모 관장은 <종의 기원>이 그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읽기 어려우니 “읽히지 않는 책 가지고 아등바등하지 말고” <비글호 항해기> 같은, 다윈의 다른 책이나 평전을 읽으라고 권한다. 어찌되었든 19세기 중엽의 학설이고, 그 이후 생물학은 엄청난 발전을 이뤘으며, 일반적인 교양독서라면 <비글호 항해기>나 다윈 평전을 통해 한 뛰어난 과학자가 어떻게 바늘끝만한 단서를 가지고 인류의 지식과 신앙체계를 뒤흔들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발견의 희열’과 ‘논쟁의 고통’을 겪었는지를 느끼라는 권유이리라. 


나로서는 <찰스 다윈 서간집>을 추천하고 싶다. 다윈은 같은 시기에 엇비슷한 속도로 속속 연구성과를 집대성하던 경쟁자들과 정보와 의견을 주고받았으며 평생 1만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거대한 인식 혁명을 일으켰다. 그 편지들을 집대성한 책이다. 예컨대 <종의 기원> 출간 이후인 1859년 12월 28일자 편지를 보자. 다윈은 그 전날 <타임>지에 게재된, 자신의 책에 대한 서평을 읽었는데 그 서평자는 “신기할 정도로 힘 있고 명쾌한 생각으로 글을 썼어. 글 솜씨가 보통이 아닌 데다가 위트까지 넘치더군”이라고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덧붙이기를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확신컨대 영국에 그 글을 쓸 만한 사람이 단 한 사람 있네. 바로 자네.” 

이렇게 깊은 우의를 나눈 편지 속의 ‘친구’는 당대의 학자로 다윈의 학설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 T H 헉슬리다. 이듬해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열린 영국 고등과학협회 세미나에서 세상을 쥐락펴락하던 윌버포스 주교가 다윈의 진화론을 비난했을 때 거침없이 들이받으며 신학과 과학의 의미 있는 역사적 분리를 주도하였으며, 장차 영국 왕립협회 회장을 지냈고 그 손자가 <멋진 신세계>로 유명한 올더스 헉슬리다. 그밖에도 수많은 사상가, 교수, 친구들과의 뜨거운 논쟁과 기품 있는 유머의 편지가 이 책에 실려 있다. 추천사와 서문도 읽을 만하다. 사후에 수집되고 편집된 편지 모음집에 다윈이 서문을 쓸 수는 없었으므로 최재천 교수와 스티븐 제이 굴드가 앞을 장식했다. 이 두 사람의 글만 읽어도 ‘지구 나이는 6000년’이라는 얘기는 도무지 꺼낼 수조차 없다.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709181827261&code=116#csidxa79b07c1905d34bba9e33b8f34ec4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