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science

[구석구석 과학사](20)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인서비1 2018. 1. 7. 08:02
[구석구석 과학사](20)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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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이라는 근원적인 이분법을 뉴턴이 허물어버린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들 가운데는 독일의 문호 괴테도 있었다. 괴테는 1810년 <색채론>을 펴내 빛과 색에 대한 옛 이론의 복권을 시도하였다. 

가을 옷을 미처 꺼낼 새도 없이 겨울이 왔다. 사방을 물들였던 색색의 잎사귀들이 떨어지고, 흰 눈과 검은 어둠이 연출하는 무채색의 세상이 가까이 왔다. 가을의 색은 다 어디로 갔을까? 색이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 

현대인들은 이 싱거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 흰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무지갯빛 스펙트럼으로 갈라지는 그림을 어릴 때부터 봐왔고, 색깔 있는 빛살 하나하나가 모이면 우리 눈에 흰 빛으로 보인다는 설명을 어릴 때부터 들어왔기 때문이다.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프리즘의 모습뿐 아니라 그것을 들고 있는 뉴턴의 모습을 함께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을 통해 거듭 배워오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설명은 선뜻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었을까? 옛날 사람들은 빛과 색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근대과학이 들춰낸 세상의 속살은 자주 인간이 감각으로 쌓아올린 직관을 배반하곤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색깔이 생겨난다”는 가설로 색채현상을 설명했다. 그의 이론은 다른 수많은 자연현상들을 설명할 때와 마찬가지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직관에 충실한 것이었다. 눈밭과 같은 하얀 배경에서 그림자를 자세히 관찰하면 그림자의 경계 부분에 언뜻 색이 비친다. 오늘날에는 물체의 가장자리에서 빛이 회절하면서 스펙트럼이 분리되기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이것을 보고 ‘색깔이 생겨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리라. 

뉴턴이 「광학」에서 소개한 “결정적 실험(Experimentum crucis)”의 상상화. / 위키백과 공용이미지

뉴턴이 「광학」에서 소개한 “결정적 실험(Experimentum crucis)”의 상상화. / 위키백과 공용이미지


뉴턴의 ‘결정적 실험’ 

무지개가 신이 보여주는 기적이 아니라 물방울이 만들어내는 자연현상이라는 것이 알려진 뒤에도, 프리즘을 통해 흰 빛을 무지갯빛으로 분리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진 뒤에도 이 생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빛이 어둠과 맞닿으면서 색깔이 생겨나듯, 흰 빛이 물방울이나 유리와 같은 매질을 통과하면서 색깔이 생겨난다고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자연을 수많은 작은 입자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기계라고 생각했던 르네 데카르트 역시 빛의 본질은 흰 빛이라는 생각은 버리지 않았다. 그는 프리즘을 통해 스펙트럼을 분리하는 실험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 현상을 설명했다. 빛의 입자들은 회전하면서 공간을 진행하는데, 흰 빛이 유리를 통과하면서 입자의 회전이 바뀌고, 여러 가지 속도와 방향으로 회전하는 빛 입자가 우리 눈에는 각기 다른 색깔의 빛살로 보인다는 것이다. 지극히 데카르트다운 이 같은 이론은 프리즘을 통해 스펙트럼이 분리되는 현상을 나름대로 잘 설명할 수 있었다. 왜 똑같이 프리즘으로 들어간 빛이 빨간 빛과 노란 빛과 파란 빛으로 갈라져 나오는지를 빛 입자의 회전의 차이로 풀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 그럴 듯한 설명에 납득한 것은 아니다. 아이작 뉴턴은 데카르트가 ‘회전하는 빛의 입자’와 같이 확인할 수 없는 가설적 존재를 필요할 때마다 만들어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데카르트와는 달리 ‘가설을 세우지 않는’ 것을 자신의 원칙으로 내세웠고, 현상의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면 일단 설명할 수 없는 대로 남겨두고 다만 그 현상을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기술하는 데 주력하고자 했다. 

그 원칙 아래 뉴턴은 프리즘을 이용하여 자신이 고안한 새로운 실험을 했다. 프리즘으로 흰 빛을 분리하여 만든 스펙트럼에서 붉은 빛살만 골라낸 뒤, 그것을 또 하나의 프리즘으로 굴절시켜 본 것이다. 데카르트의 이론이 맞다면 붉은 빛살을 이루는 입자들이 다시 프리즘을 지나가면 다시 회전 속도와 방향이 달라지므로, 비슷한 양상으로 색이 분리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붉은 빛도, 파란 빛도, 노란 빛도 더 이상 분리되지 않았다. 뉴턴이 1704년 펴낸 <광학>에서 ‘결정적 실험’이라고 부른 이 실험을 통해 직관적으로 믿어 왔던 빛과 색의 존재론적 위계가 뒤집혔다. 색깔 있는 빛이 근원의 빛이었고, 흰 빛은 그들이 합쳐져 만들어낸 일종의 혼합물일 뿐이었다. 

위키백과 공용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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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도구, 다른 생각 

수천 년 묵은 직관을 배반하는 뉴턴의 주장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뉴턴의 비판자들은 “가설을 세우지 않는다”는 뉴턴의 신조조차 오만하고 무책임한 것으로 여겼다. 만유인력이나 빛의 스펙트럼에 대한 뉴턴의 설명에는 ‘어떻게’에 대한 수학적 묘사는 있지만 ‘왜’에 대한 근본적 설명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이라는 근원적인 이분법을 뉴턴이 허물어버린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들 가운데는 독일의 문호 괴테도 있었다. 괴테는 1810년 <색채론>을 펴내 빛과 색에 대한 옛 이론의 복권을 시도하였다. 괴테는 뉴턴이 사용했던 것과 비슷한 프리즘을 구하기 위해 왕실의 후원까지 얻어가며 백방으로 애를 썼고, 결국 양질의 프리즘을 손에 넣어 뉴턴과 비슷한 실험을 했다.


그러나 같은 도구로 비슷한 실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괴테는 뉴턴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실험 결과를 해석했다. 괴테는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색이 생겨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래의 설명을 재해석하여 프리즘 실험을 설명하고자 했다. 프리즘을 통과하는 것이 곧 빛과 어둠의 경계를 통과하는 것이고, 거기에서 원초적 색(빨강, 노랑, 파랑, 보라)이 생겨나고 이들이 섞이면서 초록과 같은 중간색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괴테의 <색채론>은 뉴턴의 <광학>이 출판된 지 한 세기도 더 지난 뒤의 책이므로, 반론 치고는 너무 늦은 것이었고 과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괴테의 이론은 화가들로부터 뜻밖의 지지를 얻었다. 영국 인상주의 화가들을 비롯하여 빛과 색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던 이들은 괴테의 이론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색채관을 정립해 나갔다. 근대과학이 알려주는 세계의 모습과는 별개로, 빛과 어둠이라는 이원론은 인간의 가슴속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상징의 힘은 빛과 색에 대한 과학이론이 바뀐다고 해서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물리학자가 보는 세계와 화가가 보는 세계는 때로는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김태호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711271711011&code=116#csidx8a75ed98fe7f71ab2617dcd91d01a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