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없는 독일식 교육, 틀리는 게 두렵지 않았다"
신향식 입력 2017.09.21. 11:25[오마이뉴스 글:신향식, 편집:홍현진]
"자기 생각을 적는 글쓰기 시험이 많았어요. 한국에서는 '생각'을 적게 하기보다는 '사실' 위주로 쓰게 하는데 독일은 그렇지 않았어요."
"독일 교수님들은 '글쓴이 생각에 정답은 없다'는 마음으로 시험 답안을 채점하셨습니다.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 "독일에선 글쓰기 교육 강조" 독일 함부르크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함께 생활했던 윤지영, 조영인, 윤세영 씨(오른쪽부터)가 독일 글쓰기 교육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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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처럼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필기하는 방식과 달라
- 함부르크대학이 독일 대학을 대표할 수는 없겠지만 어떤 특징이 있던가요?
(윤지영)=대강당에서 진행하는 대형 강의 포어레중(Vorlesung)이 있었습니다. 출석도 거의 부르지 않는 자유로운 수업이었습니다. 학생들 각자 배우고 싶은 내용을 알아서 챙겨야 했습니다. 반면, 세미나는 출석 점검도 꼼꼼히 하고 인원도 적어서 꼭 참여해야 하는 수업이었습니다.
(윤세영)=세미나에서는 토론식 수업을 하므로 모든 구성원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나눕니다.
(조영인)=대형 강의에서는 학생들이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과제를 낼 때 학생들이 원하는 주제를 선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독일 대학은, 한국처럼 교수님 말씀을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필기하여 과제를 작성하고 시험을 보는 방식과는 다릅니다.
- 독일 대학 수업에서 적응하기 어려웠던 점이 있었나요?
(조영인)=세미나 수업은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역시 동양인들은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와 같은 눈초리를 받기 십상이었습니다. 처음엔 이 편견을 깨기 위해서만 노력했지만, 수업을 듣다 보니 '수업시간에 아무 말도 안 하면 얻어가는 것이 없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수업에 더 적극 참여했습니다.
- 과제(보고서) 형식은 어떠했나요?
(윤지영)='전형적인 독일인'이라는 수업에서는 발표와 글쓰기를 했습니다. 다른 독일 학생들이 보고서를 어떻게 작성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수업에 정해진 틀이 없어서 글을 쓸 때 부담 없이 편하게 쓸 수 있었습니다.
(조영인)=보고서는 다양한 형태로 쓰게 했습니다. 함부르크대 한국학과의 '조선영화사' 수업에서는 이북의 영화를 본 다음 자유롭게 비평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형식이 없어 당황스러웠지만, 이북의 영화를 많이 알아야 보고서를 내실 있게 쓸 수 있었습니다. 학생이 주도적으로 공부하게 하려는 교수님의 의도가 담겨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윤세영)=회사나 상급학교에 올바르게 지원하는 방법을 배우는 수업에서 'Motivation Letter'란 글을 쓰는 방법을 인상 깊게 배웠습니다. 정해진 형식은 있지만, 자신의 개성을 담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좋은 경력과 학력이 있느냐는 그 다음의 문제였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다르고, 그곳에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알리는 작업이 중요했습니다.
- 수업에서 어떤 점을 배웠나요?
(윤지영)=독일에서는 다들 자신있게 의견을 많이 발표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정확한 답을 알지 못하면 자신이 없어서 발표를 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정확하든 아니든 일단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내는 점이 좋았습니다.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발표하는 자세를 배웠습니다.
- 글쓰기로 진행하는 시험은 어떻던가요?
(윤세영)=독일에서 자격증 시험을 볼 때 쓰기(Schreiben) 시험에서 '자신의 생각을 쓰라'는 질문이 있었어요. 이렇게 독일에서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요구하는 글쓰기 시험이 많았어요. 한국은 자기 생각보다는 사실 위주로 쓰게 하는데 독일은 그렇지 않았어요.
(윤지영)=편지 형식으로 괴테에게 그의 이론과 관련하여 질문하는 글쓰기 시험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전형적인 독일인'이라는 수업에서는 전반적으로 독일에서 느낀 점을 자유 주제로 글을 썼습니다.
▲ "집중 글쓰기"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학생들이 글쓰기센터에서 주최한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석해 글을 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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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인)='글쓴이의 생각에는 정답이 없다'고 보는 것 같았습니다. 글쓴이가 어떤 생각을 하든 채점자는 문장과 문단, 글의 형식과 어법, 논거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점수를 부여합니다. 개념을 얼마나 상세하고 정돈된 언어로 서술하는지도 중요한 채점 기준이었습니다.
(윤지영)=저는 괴테에게 편지쓰기 과제에서 '이론이 심오해서 제대로 이해한 거 같지는 않지만…' 하면서 답안을 시작했습니다. 제 나름대로 논리를 세웠더니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제 생각을 담았다는 점에 좋은 점수를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였다면 '이상하다'고 여길 수 있는 표현도 오히려 흥미롭고 새롭게 여긴 것 같습니다. 즉, 한 가지가 아닌 다양한 정답을 인정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윤세영)=저도 비슷하게 생각했어요. 사실에 근거하되 글을 얼마나 논리적으로 썼는지, 자기 생각을 얼마나 독창적으로 표현했는지,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노력했는지가 중요한 요소였다고 봅니다.
인용방법 엄격... 위키피디아 출처로 제시하면 망신
- 독일과 한국의 글쓰기 수업은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윤지영)=수업 중에 글쓰기를 요구했던 사례를 보면 대체로 주제를 폭넓게 부여했고, 제한도 별로 없었습니다. 덕분에 좀 더 자유롭게 글을 쓰는 기분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저는 많은 다른 학생들처럼 대학 진학을 위해 논술 수업을 들었는데, 처음에 글을 쓸 때부터 단락을 어떻게 나눠야'만' 하고,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만' 전개해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의 제약이 늘 존재했습니다.
게다가 그러한 논술 수업에서는 자주 나오는 기출 문제와 답안이 있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주제와 글의 종류(편지글, 주장글, 산문 등) 정도만 정해 주고 글쓰기는 개인에게 맡겼습니다. 기출문제 모범답안이라는 틀에 박힌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어 좋았습니다.
(조영인)=독일에서는 대학교 때부터 인용하는 법을 매우 엄격하게 가르칩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위키피디아를 출처로 했다가는 망신을 당합니다. 저작권과 글 쓰는 방법을 중요하게 여기는 독일교육의 특징을 여기서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글쓰기, 특히 학술적인 글쓰기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현실과 상당히 많이 다릅니다.
독일의 글쓰기 채점 방식은 글의 전개 방법이나 논리적 연결성에 중점을 두는 반면, 한국에서는 제시된 글을 읽고 글쓴이 생각을 유추하는 방법에 더 치우쳐 있음을 느꼈습니다. 독일에서는 너무 허무맹랑한 이야기나 반사회적인(혐오발언금지법에 위배되는, 가령 나치 찬양이나 성 소수자 혐오 등) 글이 아니라면 교사들은 학생들의 생각을 전혀 고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저는 고교 시절에 '논술에도 답이 있다'고 배웠습니다.
(윤세영)=독일의 글쓰기 수업은 일단 '암기식' 공부에 길들었던 저의 한국식 공부 방식을 바꿔 주었습니다. 물론 한국의 대학교 시험도 서술형으로 문제를 내는 사례가 대부분이지만 점수를 잘 받는 것은 결국 암기한 것을 얼마나 정확하게 써내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어떻게 제 생각을 창의적으로 써내느냐는 별로 중요치 않았습니다.
▲ "독일 맥주 한 잔" 독일 글쓰기 교육을 주제로 좌담회를 하던 윤지영. 조영인. 윤세영 씨가 독일 맥주를 마시기 전에 건배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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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인)=글쓰기 실력만을 측정한 국제적 표준점수가 없으므로, 교육 전문가가 아닌 제가 독일 학생들이 경쟁력이 있다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독일 학생들은 창의적으로 글 쓰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윤세영)=일단 독일 학생들은 항상 새로운 소식에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기사와 저널을 읽습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는 책을 읽곤 합니다. 저에게는 정말 새로운 풍경이었습니다.
창의적 글쓰기 강조하면 사회 전체에 도움된다
- 그러한 창의적 글쓰기는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나요?
(윤지영)=창의적인 사고를 설득력 있고 정리된 글로 풀어내는 작업이 창의적 글쓰기라고 생각합니다. 창의적 글쓰기 능력을 배양하면 사회에 창의적인 사고가 퍼질 수 있다고 봅니다. 창의적인 생각은 제약을 두지 않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나올 수 있으므로, 창의적 글쓰기 능력은 사회가 타인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고 봅니다.
(조영인)=창의적 글쓰기를 강조하는 교육은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 구성원의 상당수가 4년제 혹은 2년제 대학을 나오지만,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졸자만의 사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대학교 졸업장을 가진 것을 마치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4년제 대학을 가기 위해 정답을 쫓는 글쓰기만 하는 사람들만의 사회는, '난 맞고 넌 틀렸어' 하는 '정답을 요구하는 사회', 그리고 앞에서 말씀드렸던, '삶에 표준적인 속도가 있는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민주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교육의 측면에서 독일이 우수하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어떤 점인가요?
(윤지영)=독일 교육 제도의 우수한 점은 학비가 거의 무료라는 점입니다. 함부르크 대학교에서는 한 학기에 50만 원 가량의 돈을 내면 학생증이 나옵니다. 이 학생증으로 함부르크 전역의 교통 서비스가 무료로 제공됩니다. 또, 시민학교나 주민센터의 일종인 폴크스호흐슐레(VHS: Volkshochschule)에서 수업을 들을 때 50% 정도의 할인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조영인)=학생들의 창의적인 사고를 유도하는 글쓰기 교육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스스로 행복을 찾고 자신만의 속도에 맞추어 사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이었습니다. 이는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행복지수와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분명 일조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윤세영)=저는 독일에 살면서, 나중에 아이를 낳는다면 독일에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일단 우리나라에서는 아이가 자라면서, '믿음', '신뢰', '정직'과 같은 가치들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경쟁'할 것인지를 먼저 배우게 되잖아요.
독일에 오기 전에는, 아이를 낳으면 조기교육을 잘 해서 '이기는 사람'으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독일에 오고 나서, 2시쯤 학교를 마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고등학생들이 가족의 가치를 더 잘 알게 되는 모습, 그리고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스스로 정하면서 자립심을 기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것을 잘하는지'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춘 교육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윤지영)=한국에서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하지 못 한 채, 좋은 학교와 취업이 잘 되는 과를 선택하는 사례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독일 학생들이 반드시 자신의 진로에 확신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만약 자신의 전공이 생각했던 것과 다를 때 언제든지 과감하게 바꿀 수 있는 환경, 그리고 나이가 적든 많든 공부하고 싶을 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은 충분히 갖추어져 있습니다.
(조영인)=우리나라는 기술(공업, 미용 등)이나 예체능(춤, 노래 등)을 천대하는 풍토가 만연한 것 같습니다. 이런 인식이 결국 창의성을 말살하는 교육정책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대학 입시를 위하여 제도권 교육을 철저히 받은 학생들보다, 입시 제도의 제약에서 벗어나 다양한 체험을 하는 학생들이 창의적 글쓰기 경쟁력에서 더 월등할 것이라 믿습니다.
(윤세영)=한국의 교육에는 늘 정답이 있습니다. 항상 채점하기 쉬운 객관식, 단답형 주관식 문제를 만들어서 시험을 칩니다. 반면 독일의 수능시험인 아비투어(Abitur)에서는 정해진 정답은 없지만, 공정성을 갖추기 위해서 채점 기준을 명확히 하는 논술형 시험을 낸다고 합니다.
창의력 무시하고 다양한 시각 차단하면 '폭력'
- 우리나라의 교육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까요?
(윤지영)=우리나라 교육이 대학 진학을 위한 정답만을 추구하지 않고 다양성을 가르쳤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고 이러한 사람들 사이에 높고 낮음이 없으며 서로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는 점을 교육하면 좋겠습니다. 물론 학생을 평가하기에는, 한 가지 정답을 두고 채점해서 줄 세우는 것이 용이할 겁니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과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함부르크대 교정 독일 제 2의 도시인 함부르크에 있는 함부르크대 교정. 함부르크대에는 한국학과가 설치되어 있고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들도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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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 글쓰기센터의 다그마 크노어(Dagmar Knorr)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글쓰기센터에서는 학생들이 글쓰기를 시작하는 데 도움을 주고 영감을 줄 뿐, 그 이상 특별한 교육을 하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의 국어교육이 지향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조영인씨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독일어와 독일어교육학, 중국지역학을 공부했고 현재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복지학대학원 석사과정 1학기에 재학 중이다. 윤지영 씨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독일어와 국제학을 공부하고 있다. 윤세영씨는 부산대학교에서 독어교육학과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독서신문에도 기사를 보냈습니다. 해외로 교환학생을 가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정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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