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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테레사 수녀, '또다른 얼굴' 주장 왜 자꾸 나오나

인서비1 2016. 9. 7. 15:12

성인 테레사 수녀, '또다른 얼굴' 주장 왜 자꾸 나오나

평생 빈자를 돌본 '어머니'.."고통받는 환자들, 치료 소홀했다" 주변 증언도아시아경제 | 김희윤 | 입력 2016.09.07. 10:58



[아시아경제 김희윤 작가]

“가난한 사람들이 이기도록 도와주는 사람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는 사람
밤새도록 달을 바라보는 사람, 그러면
세상이 너의 비석이 될 거야-”

- 아틸라 요제프의 시 ‘일곱 번째 사람’ 중에서

‘빈자의 성녀’라 불리며 일생 극빈자를 돌본 공로로 ‘복자’에 오른 테레사 수녀가 현지시각 어제(4일) 바티칸에서 ‘성인’에 추대됐다. 가톨릭 성인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까다로운 절차와 증명은 인구에 회자되어 온 테레사 수녀의 대중적 지지와 교황의 배려, 그리고 기적으로 인정받은 사건 등을 통해 신속히 진행, 이례적으로 선종 19년 만에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대립과 반목이 계속되는 국제사회의 갈등관계 속에 세상을 껴안았던 어머니의 이름을 세계 각국에서 반기고 있는 것이다.

일생을 빈자를 돌보는데 투신한 테레사 수녀는 2003년 복자 추대에 이어 지난 4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시성식을 통해 성자로 추대됐다.
일생을 빈자를 돌보는데 투신한 테레사 수녀는 2003년 복자 추대에 이어 지난 4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시성식을 통해 성자로 추대됐다.
테레사 수녀가 되기 전, 학창시절의 아녜즈 곤제 보야지우(Anjeze Gonxhe Bojaxhiu)는 성가대 활동과 봉사에 열심인 평범한 학생이었다.
테레사 수녀가 되기 전, 학창시절의 아녜즈 곤제 보야지우(Anjeze Gonxhe Bojaxhiu)는 성가대 활동과 봉사에 열심인 평범한 학생이었다.


정치인의 딸에서 신의 종으로

구유고슬라비아 정치인 가문의 막내딸로 태어난 테레사 수녀의 본명은 ‘아녜즈 곤제 보야지우’로 1928년 19세의 나이로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수녀회에 입회, 1937년 수녀로서 종신서원을 하면서 구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약자를 보살피라는 소명을 받고 인도에 정착한 것은 1952년. 한 신도가 제공한 집을 ‘임종자의 집’이라 이름 붙이고 그에 앞서 그녀가 수녀회에서 가르치던 제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사랑의 선교회’를 통해 죽음을 앞둔 빈자들과 고아가 된 그들의 자식을 돌보기 시작하며 본격적인 활동범위를 넓혀갔다.

그녀는 일생을 신께 서원하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혼자 내버려두지 않는 것’을 자신의 봉사 방향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으로 고아가 된 자녀들 또한 돌보기 시작하면서 빈자의 어머니로서 낮은 곳에서 절망에 신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자선을 베풀었다.

1979년 12월 10일, 노벨평화상 수상 후 소감을 밝히는 테레사 수녀 / 사진 = NovelPrize.org 영상 캡쳐
1979년 12월 10일, 노벨평화상 수상 후 소감을 밝히는 테레사 수녀 / 사진 = NovelPrize.org 영상 캡쳐


사회가 외면하는 사람들 품다

197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그 선행이 알려진 테레사 수녀는 수상 소감에서 “배고프고 벌거벗고 집이 없고 신체에 장애가 있으며 눈이 멀고 질병에 걸려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거부당하며 사랑도 받지 못하고 사회에 짐이 되고 모든 이가 외면하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이 상을 기쁘게 받겠다”고 밝히며 자신이 돌봐온 빈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수상을 계기로 세계 각국에서 구호와 성금이 밀려오자 테레사 수녀의 사랑의 선교회 또한 활동영역이 확대되었다. 한센병과 결핵, 에이즈 환자를 위한 요양원을 설립하고 극빈자와 고아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와 상담소, 그리고 학교를 세워 깊은 사랑을 실천한 테레사 수녀의 활동아래 손쉽게 죽음에 이르렀을 많은 환자들이 모여들어 안식과 위안을 얻고 새로운 삶을 찾아갔다.

캘커타 마더 테레사 하우스 (임종자의 집) 내부 풍경. 사진 = motherteresa.org 제공
캘커타 마더 테레사 하우스 (임종자의 집) 내부 풍경. 사진 = motherteresa.org 제공


선행의 빛과 그림자

역사적 기록이 아닌 동시대를 함께 숨 쉬고, 생활했던 성인의 등장은 그 이전 단계인 복자 추대 때부터 다양한 논란을 불러왔다. 아름답고 헌신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인간이기에 간과하고 행한 실수와 과오를 모두 지켜본 사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테레사 수녀의 모습 이면의 진실에 대해 끈질기게 밝혀오고 있다. 바티칸 내부 또한 성인 추대 과정에서 후보자의 과오를 조목조목 조사하고 밝히는 악마의 대변자(Advocatus Diaboli)가 그녀의 행적과 품성에 있어 회의적 의견을 다각도로 제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가 운영했던 ‘임종자의 집(칼리가트)’은 수많은 환자와 걸인들이 치료와 안식을 얻은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이 시설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던 이들의 증언은 그와 다른 풍경을 증언한다. 먼저 테레사 수녀가 이곳 시설을 개선하는 데에 의지가 전혀 없었고, 열악한 운영을 고집했다는 것. 한 자원봉사자의 증언에 따르면 주삿바늘을 찬물에 씻어 재활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며, 중환자와 가벼운 증상의 환자 구분은 물론 남녀 구분이 따로 없이 일괄 수용하면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으면 나을 수 있는 사람들이 그저 몇 달, 몇 년간 누워만 있다가 죽어갔다고 고백했다.

이는 테레사 수녀의 확고한 신념에서 기인한 일들인데, 그녀는 “가난과 고통은 하나님의 축복”이라 믿었으며 이 때문에 세계 각지에서 이어지는 후원과 구호물품을 통해 시설을 개축하고 현대화된 의료장비를 갖추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테레사 수녀의 구호활동 이면의 의혹을 가감없이 밝혀낸 대표적 무신론자이다. 그는 테레사 수녀의 성인 추대에 앞서 교황청에서 해당 인물을 검증하기 위해 선정하는 '악마의 대변인' 측으로부터 초빙, 그녀의 과오에 대해 낱낱이 지적한 바 있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테레사 수녀의 구호활동 이면의 의혹을 가감없이 밝혀낸 대표적 무신론자이다. 그는 테레사 수녀의 성인 추대에 앞서 교황청에서 해당 인물을 검증하기 위해 선정하는 '악마의 대변인' 측으로부터 초빙, 그녀의 과오에 대해 낱낱이 지적한 바 있다.


자비와 논란

사실 테레사 수녀는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고, 의학 공부는 수녀회를 떠나던 해 기초 간호학을 속성으로 수료한 1년이 전부였다. 전문 의료인이 나서 시설을 운영해도 의료적 혜택을 환자에게 고루 줄 수가 없는 상황에서 그녀는 의학상식에 앞서 종교적 믿음과 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동정심을 앞세워 구호활동에 매진했고 이 같은 활동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가는 그녀의 명성에 반해 방치되다시피 한 환경에서 죽어가는 환자들로 극단적 대비를 이뤘다. 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책 ‘자비를 팔다’를 통해 널리 알려진 바 있다.

평화를 부르짖는 그녀의 호소에 긴장 일로의 미국과 이라크 간 갈등이 두 정상의 화해 제스처로 종전에 이른 것은 당시 그녀가 가졌던 영향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녀는 엄격한 가톨릭 교리를 이유로 강간피해 여성의 출산을 권장한 일과 독재정권하에 고통 받는 아프리카 대륙의 사람들에게 무조건적 인내를 권한 일 등을 통해 당대 흑인 인권운동가 맬컴 엑스를 통해 “종교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착취와 차별로 얼룩진 아프리카 원주민을 순한 양처럼 반항하지 못하게 만든 점”이라고 우회적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일 열린 시성식 준비행사에서 참가자들이 테레사 수녀의 성화를 운반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일 열린 시성식 준비행사에서 참가자들이 테레사 수녀의 성화를 운반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인간에서 성자로

실수가 없는 인간의 삶은 바꿔 말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삶’일 것이다. 병자를 돌보느라 허리를 굽혀 생활한 탓에 말년에는 허리가 완전히 굽어 버렸고, 2차 심장발작 이후에도 병자를 돌보려다 말라리아에 감염돼 고통의 순간을 보냈던 그녀의 삶 전체가 무지와 독선에서 비롯된 과오로 인해 아예 없던 것이 될 순 없을 것이다.

그녀에 대해 비난의 날을 세웠던 칼럼니스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교황청으로부터 성자 추대에 앞서 테레사의 과오를 살피는 악마의 대변인 역할로 초빙받아 바티칸에서 그녀의 실수와 잘못을 낱낱이 지적한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자비와 긍휼을 모두 외면하는 시대, 한 시대를 품은 ‘어머니’의 모습은 우리에게 여전히 빛과 그림자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