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society

'헬조선' 된 교육강국 코리아..희망의 스위치를 켜라

인서비1 2015. 9. 19. 06:09

'헬조선' 된 교육강국 코리아..희망의 스위치를 켜라

[뉴스인사이드] 세계 속 한국의 현실은세계일보 | 송민섭 기자 | 입력 2015.09.18. 21:22 | 수정 2015.09.18. 22:56    

“한국인은 역시 ‘책읽기를 좋아하는(bookish) 국민’답게 교육비 비중이 높았다.”

지난 14일 영국의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가 유럽연합(EU)의 최신 보고서를 분석하여 내린 결론이다. ‘세계 속의 EU’라는 제목으로 EU의 각종 경제·사회 지표를 G20(주요 20개국)과 비교한 보고서다. 이코노미스트는 G20의 가계소비지출 현황에 주목했다. 한국의 교육비는 전체 가계비 지출의 6.7%를 차지했는데, 이는 1.1∼4.4%대의 다른 나라 수준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이코노미스트는 아낌없는 교육투자와 높은 취원율, 진학률 등으로 국제사회에 ‘교육강국’으로 통하는 한국의 진면목이 또 한 번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교육 이외의 부문을 보면 요즘 젊은 층에서 유행하는 신조어인 ‘헬조선, 조선불반도’(입시지옥·취업난·고물가·차별과 부조리가 만연한 지옥 같은 한국 사회)와 같은 단어가 횡행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글로벌하게 비교 확인할 수 있다.

◆가계소비지출을 보면 그 나라를 알 수있다

G20의 가계소비지출 현황표를 살펴보면 그 나라의 내부 사정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특정 국가(국민)에 대한 고정관념은 괜한 편견이나 오해에서 비롯하지만은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놀기 좋아하는 호주인은 여가생활에 가계비의 약 10분의 1을 쏟아붓고 보드카를 즐기는 러시아인은 술·담배 값에 8.3%를 쓴다. 공공건강보험 혜택이 거의 없는 미국은 보건·의료비 비율이 20.9%였고 집값 비싸기로 소문난 일본의 주거비는 25.3%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계량적 수치 뒤에 숨어 있는 함정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코노미스트도 ‘세계 각국은 어떻게 그들의 돈을 쓰는가’ 제하의 짧은 기사 말미에 “가계비 지출에 있어 정치의 역할도 상당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러시아의 경우 주거비(10.3%)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정부의 지원정책 때문이다. 러시아인은 정부 정책에 따라 주거비에서 절약된 돈을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쓸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덧붙였다.

◆우리는 왜 의료비를 많이 지출하나

우리나라의 가계 지출 현황을 보면 교육비 외에 보건·의료비(6.6%)와 숙박비(8.2%), 통신비(4.3%) 비중이 다소 높은 편이다. 숙박비는 집밥보다는 외식을 선호하는 1∼2인가구가 점차 늘고 있다는 점에서, 통신비는 휴대전화 보급률과 세계적으로 비싼 통신요금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의료비 지출 비중이 미국 다음으로 높다는 점은 의외의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국가가 사실상 무상에 가까운 의료·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러시아(3.7%)만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우리처럼 공공·민간 의보가 섞여 있는 EU(38%), 캐나다(4.4%) 정도는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현실은 달랐다. 

이는 병치레가 잦은 고령층 인구가 많아서는 결코 아니다. 우리보다 고령화 수준이 높은 일본의 의료비 지출 비중도 4.6%에 불과했다. 문제의 실마리는 같은 보고서에 실린 ‘세계 주요국 사회복지 공공 지출 현황’에서 찾을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지난해 세계 주요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예산 조사 결과를 보면 프랑스와 핀란드는 각각 31.9%와 31.0%였다. 일본과 영국은 23.1%, 21.7%였다. 자유주의 분위기가 팽배한 미국(19.2%)과 호주(19.0%), 캐나다(17.0%)의 복지예산도 15%를 넘었지만 한국의 복지비는 10%에 겨우 턱걸이했다. G20 가운데 멕시코(7.9%)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다. 다른 국가들이 복지비를 통해 의료 혜택을 상당부분 간접 지원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그런 지원이 턱 없이 부족한 결과로 해석된다.

◆국제통계에 팍팍한 한국인의 삶이 보인다

최근 우리 사회의 젊은 세대와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인 일자리에 관한 데이터도 흥미롭다. 단순 통계상 한국의 실업률은 그리 심각하지 않다. 2013년을 기준으로 우리의 전체 실업률은 3.1%, 청년실업률은 9.3%다. EU(10.8%, 23.5%)나 미국(7.4%, 15.5%), 심지어 “일자리가 넘친다”는 사우디아라비아(5.7%, 29.5%)보다 낮다. 하지만 좀 더 내용을 파고들면 젊은이들의 입에서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튀어 나올 수밖에 상황이다. 근속 1년 미만 단기근속자 비율은 35.5%로 세계 주요국 가운데 가장 많았고, 10년 이상 장기근속자는 18.1%로 가장 적었다. 임시직 비율도 23.8%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임금과 소득 불평등도 심각한 수준이다. 취업자의 임금소득을 9분위로 나눴을 때 맨 꼭대기 분위는 가장 낮은 분위보다 5.8배를 더 받고 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똑같이 일하고도 임금은 60%밖에 받지 못한다. 사회 전반의 소득 불평등도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2012년 기준 소득 상위 10%의 소득집중도는 44.78%로 G20 가운데 미국에 이어 두 번째였다.

이처럼 EU의 국제 통계자료에서 한국인의 삶이 팍팍하다는 사실이 잘 드러난다. 특히 젊은 세대의 좌절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사회학 연구자 류연미씨는 최근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많은 사람들이 ‘헬조선’을 말하게 된 것은 이제 각자도생마저도 불가능하며 그것이 나의 노력 부족이 아니라 이 국가의 구조적 문제라는 인식까지 도달했음을 뜻한다”고 분석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고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정치권의 구체적 실천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