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society

'이민계' 드는 SKY 출신 20代들

인서비1 2015. 4. 8. 19:16

'이민계' 드는 SKY 출신 20代들

"한국 너무 팍팍 북유럽행 준비중"


케임브리지 박사가 용접기술 구슬땀
매일경제 | 입력 2015.04.08 17:37

서울 소재 명문여대를 졸업한 뒤 여의도 A증권회사에 재직 중인 김효원 씨(26·가명)는 지난해부터 친구 4명과 함께 '이민계(契)'를 만들었다. 한국을 떠나 북유럽 국가인 핀란드에 정착하기 위한 목돈을 같이 모으기 위해서다. 이들은 한 달에 50만원씩 무조건 불입한다는 원칙까지 세웠다. 이렇게 모은 금액은 현재 1000만원가량된다. 이들은 모두 S대와 Y대 등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증권·전자·해운사 등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 김씨는 "핀란드 소재 대학 석사과정에 입학한 뒤 현지에 정착할 것"이라며 "한국에서와는 달리 그곳에서는 퇴근 후 여유 있게 자기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민 열풍'이 사회에 갓 진입한 20대 청춘들 사이에서도 불고 있다. 사회 초년생 때부터 목돈을 만들기 위한 계를 조성하는가 하면, 필요할 경우 '이민 스터디'를 통해 언어 등 필요한 지식도 공유한다.

해당 나라에서 원하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 새로 기술을 배우는 사람들도 있다.

S대 인문대를 졸업해 대기업 인사팀에서 3년째 일하고 있는 이상호 씨(29·가명)는 주말마다 자동차정비학원으로 출근한다. 북유럽 국가로 기술이민을 가기 위해 자동차정비 기능사·기사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것이다. 기술이민은 일반이민에 비해 영주권을 쉽게 얻을 수 있다.

캐나다 용접공 이민 자격증 관련 학원 관계자는 "영국의 소위 '옥스브리지(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박사에서부터 서울대 졸업자들까지 깜짝 놀랄 만한 고학력자들이 용접공 이민에 도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민을 꿈꾸는 사회초년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라는 '복지국가'로 알려진 덴마크·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이다. 외교부의 '재외동포 현황'에 따르면 덴마크에 사는 재외동포는 2011년 293명에서 2013년 538명으로 83.6%나 증가했다.

이들이 선진국으로 이민 가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교육비 상승, 연금 혜택 축소, 높은 주택 가격 등 한국에서의 삶이 갈수록 젊은 세대에게 불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잦은 야근과 불황, 심해지는 스트레스 등 경쟁 일변도의 사회풍조도 일조하고 있다. 점차 세계가 글로벌화되고 나라 간 장벽이 사라지면서 언어 문제 등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도 예전 세대만큼 크지 않다.

서울대를 졸업한 이창민 씨(29·가명)는 지난해 이민을 위해 2년간 다니던 직장을 주저없이 그만뒀다. 초봉 4000만원에 육박하는 A기업 전략기획팀에서 일하며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지만 앞으로의 양육비와 교육비 문제 등을 고민한 끝에 부부가 동시에 새 터전에서 자리를 잡기로 결심했다.

전문가들은 청춘들이 글로벌시대에 해외로 진출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나 무작정 해외로 떠나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정은 IOM이민정책연구원 연구교육실장은 "기술직으로 이민 가서 편하게 먹고살 수 있다는 식의 얘기는 아직 특수 사례다. 선진국에서 굳이 한국인을 써야 할 이유가 없는 만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20대의 이민 열풍은 한국 현실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이라는 말도 나온다. 정동일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나라를 떠나려는 젊은 세대의 심정은 대한민국에서 가능성을 찾지 못한 결과"라며 "정부는 20년 후를 바라보는 대책을 세우고, 기업들은 외국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언어구사력도 뛰어난 젊은 세대가 활약할 기회를 마련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요환 기자 / 문재용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