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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삼성고등학교’ 에 다녀왔다는 기사를 보셨나요?

인서비1 2013. 8. 8. 12:29

일명 ‘삼성고등학교’ 에 다녀왔다는 기사를 보셨나요?

예소영 기자

삼성그룹 4개 계열사가 세우는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인 ‘은성고등학교’ 공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취재 과정 중 처음으로 인성적이었던 것은 학교가 들어서는 충남 아산시 탕정면 일대의 지역 풍경입니다.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푸른 논, 쓰러진 폐가들, 포도밭을 보며 시골 정경에 푹 빠진 지 20여 분 만에 풍경과 잘 조화가 되지 않고 우뚝 솟은 건물이 뜬금없이 등장했습니다. 택시 아저씨는 “입주민 70%가 삼성 임직원인 ‘삼성트라팰리스’ 주상 복합아파트인데, 삼성그룹이 자기네 직원들에게 싸게 분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두 번째 인상적인 것은 학교 시설과 함께 건설 중이었던 ‘리기교’의 존재입니다. 은성고와 삼성트라팰리스는 우회도로로 700m 떨어져 있지만 리기교를 건축함으로써 도보 3분 거리로 가까워집니다. 입학정원 중 70%를 삼성 임직원 자녀로 채우겠다더니, 삼성 임직원 자녀의 효율적인 등하굣길까지 배려한 설계였습니다. 리기교는 삼성식 주거와 교육을 강력하게 이어 그 자녀들의 앞날에 행복을 열어주는 무지개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낼 테지요.

세 번째 인상적인 것은 언론을 대하는 삼성그룹의 태도입니다. 지난주 사전취재 때부터 “아무것도 아는 것도 없다”는 삼성그룹 4개 계열사 측 담당자, “취재에 응해도 될지 회의하고 올테니 기다려 달라”고 30분간 저를 세워둔 삼성 에버랜드(시행사) 현장 관계자, 아예 전화조차 받지 않는 교장, 대뜸 “귀족학교 아닌데, 왜 그러느냐”던 충남삼성학원측 관계자... 어쨌든 모든 관계자들이 “취재에 응할 수 없다”라 일관하길래 삼성이라는 그룹은 언론에 무감각한 줄 알았는데 어제 오후부터 오늘 아침까지 기사를 내지 말아 달라고 계속 전화가 오네요. 이분들 왜 그러실까요?

네 번째 인상적, 아니 황당했던 것은 충남도교육청의 태도입니다. 교육청 자사고 설립 관계자에 따르면 그간 인근의 삼성 계열사들은 교육청에 지속해서 아산시 탕정면과 배방면에 각각 1개씩 공립학교 설립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교육청은 1개 공립학교를 세우는데 약 400억이 드는 예산 문제로 배방면에 1개 학교만 설립하기로 했답니다. 교육청은 나머지 탕정면의 학교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삼성그룹 측에 직접 사립학교를 설립해 문제를 해결하라고 제안해 사업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설명하더라고요. 이에 “입학 자격이 없는 지역 주민들은 삼성의 자사고 설립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까”라고 질문했더니, “그럼 아산 시민들이 세금내서 학교 만들 겁니까? 그런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삼성이 학교 만들면 그냥 다니겠다는 이기적인 사람들”이라고 답하더군요. 충남도교육청의 수준입니다.

더 많지만 마지막으로 전해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식당을 운영하시는 부모님을 둔 유제윤(14) 군의 ‘말’입니다. 물론 제윤이는 지역의 명문고에 갈 만한 성적이 안되기 때문에 은성고에 입학할 확률은 떨어집니다. 하지만 제윤이는 은성고 설립 소식에 “그런 학교가 생긴다니 기분 나쁘다. 만약 나와 성적이 똑같은 애가 있는데 걔는 아빠가 삼성에 다닌다고 그 학교에 입학하고 나는 아빠가 삼성이 아니라 못 간다면 억울할 거 같다. 이런 게 신분차인 듯. XX, 기분 더럽네.”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노력을 안 해서 기회를 놓친 부분에 대해서는 승복해야 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통용되는 이데올로기입니다. 하지만 기회조차 가질 수 없다는 것은 14살짜리도 열패감을 갖게 하는, 사회적 반발을 일으키는 부정의입니다.

아산지역의 송남초등학교 김태곤 교사는 “‘국가 경제를 이끌어가는 대표주자 삼성’이라는 절대적 지위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삼성의 반칙에는 관대한 측면이 있다”며 “삼성은 ‘귀족학교가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은성고 운영은 결과적으로 삼성이라는 계급성을 전수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꼬집더군요. 김 교사 뿐만 아니라 많은 지역 시민들이 은성고가 더 많은 지역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을 해 줄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임기응변일지라도 삼성그룹에 은성고 운영 계획을 시정하라고 요구합니다. (이번 기사는 다른 때보다 송남초 김태곤 교사, 친구 오효진 등 많은 분들이 취재를 도와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예소영 기자(ysy@vop.co.kr)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