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민주화 시대, 한국사회와 좌파운동 (1)
[참세상 정세좌담회](1) MB시대의 진보란? 거대한 자유주의화
참세상 편집팀 2011.12.30 17:26


* 일시/장소 : 2011.12.21(수) / 참세상 회의실
* 사회 : 홍석만(참세상 편집국장)
* 참석 : 참세상 편집위원
- 김규항(고래가그랬어) 
- 김혜진(불안정노동철폐연대) 
- 배성인(한신대) 
- 서영표(사회학자) 
- 선지현(사노위) 
- 한형식(세미나네트워크‘새움’)
* 정리 : 이상원(참세상 기자)

김정일 사후, 동북아 정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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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먼저, 최근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김정일 사후 문제부터 얘기를 해보자. 한국, 미국, 중국 쪽 대응을 중심으로 한반도 관계와 미중관계에 대한 접근을 풀어가보자. 

배성인 : 이명박 정부가 김정일 사망 건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문제다. 지금은 과거와 다른 방식이지만 여전히 한 가지 남아 있는 것이 있는데, ‘안보이데올로기’라는 가장 큰 정치 무기가 있다. 결국 박근혜가 최대 수혜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박근혜는 (보수의) 상징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조문을 갈 여지도 없고 상식적인 수준에서 조의를 밝힐 것이다. 자기 나름대로의 남북관계에 대한 구상을 밝히게 되면,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하게 될 거라 본다. 이명박 정부가 의도적으로 북한을 무시한 정책을 써왔기 때문에 박근혜가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제스처를 취하면 유리해 질 것이다. 그걸 풀 수 있는 게 또한 박근혜지 않을까 싶다.

사회 : 남남갈등이 생각보다 크지 않는데?

p23.jpg▲  배성인

배성인 : 사실상 남남갈등도 김일성 사망 때와는 비교가 안될 걸로 보인다. 형성된 정치지형 자체가 섣불리 접근할 수 없지 않은가? 정부도 섣불리 접근하면 대북관계가 다 깨질수도 있고, 통일운동진영에서도 옛날 같으면 분향소를 차리고 싶겠지만, 당(통합진보당)이나 선거연합이 깨질 것이 우려스러워 조심한다. 통합진보당 같은 경우에는 유시민이 큰 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가 없다.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사회 :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배성인 : 미국은 행보를 취하기 어려워 졌다. 김정일 사후에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겠지만, 실제 중국의 대응 때문에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특별히 과거처럼 북한을 제재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미국과 중국은 나름대로 협조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과거 같은 방식으로 강경 대응하게 되면 오히려 군부가 불안정 상태에서 위험할 수 있다. 러시아도 북한에 대한 후견인 역할을 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미국이 섣불리 접근하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다만 미국이 사실은 북한 내부에 있는 불만 세력을 어떻게 공작을 해서 추동할지가 남았는데, 그것도 크게 영향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건 중국의 역할, 북한의 혼란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역할이 크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서 볼 때, 안정적으로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p15.jpg▲  선지현
선지현 : 외신이나 뉴스를 보면 한국을 제외한 주변 관계 국가들이 김정은 체제를 사실상 수용하여 불안정성을 최소화 하겠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FTA(자유무역협정)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최근 동아시아 자유무역 시장에서 자신의 헤게모니를 구축하기 위해 뛰어든 일본까지. 중국은 이것에서 일단 제외되어 상하이 기구 같은 독자적인 망을 구축하고 있지 않나. 이런 글로벌 경제 측면에서 동아시아의 헤게모니를 둘러싼 대립의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시장에 대한 지배력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북한 문제가 걸려있다. 김정은 체제가 안정화에 대해서는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는 호들갑 보다는 이후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서 급격한 대립 가능성은 없는 건가?

사회 : 중국이 상하이 기구 쪽에 무게 중심을 두는 거 보다 기존의 체제로 보면 “아세안+3”다. 아세안+3, +3로 하든지, 어쨌든 아세안+3의 중심축이 중국이었고, 이것과 무관하게 알짜만 빼서 판짜는 게 TPP이고 거기서 중국을 빼는 거 아닌가?

배성인 : 아세안+3에 대해 중국은 기본적인 입장에서만 참여하는 거고, 안되기 때문에 중국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라시아 패권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있지만, 러시아가 거기까지 접근하기는 어렵고. 아세안+3이 가지고 있는 빈 공간도가 너무 많고, 느슨하기 때문에 미국이 중국하고 대응하기에는 힘든 측면이 있다. 

경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FTA 축과 G2시대를 맞은 중국이 있는데, 중국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현재까지는 생각 이상으로 강하지 않다. 이 상황에서 북한이 중요한 이유는 북한이 안정적인 체제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중국이 동북아에서 주도권을 잡기 쉽지 않은 상황을 중미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한미FTA를 구축하고 TPP로 가더라도 중국이 맞대응하게 되었을 때는 폭발적인 엄청난 싸움으로 치달을 수도 있을 텐데, 경제적으로 미국과 중국이 맞붙게 되면 미국이 밀릴 거라 본다. 중국이 더 막강한 힘을 확보할 수 있는 역량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이 섣불리 접근하지 못한다. 경제위기가 걸려있기 때문에 미국은 과거처럼 강하게 대응할 수 없다. 

사회 : 역으로 말하면 김정은 체제는 그 체제가 얼마나 공고한가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미중간의 관계 사이에서 이 체제를 유지시킴으로 해서 결정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명박 시대에 진보란? : 진보정당과 자유주의화 물결 그리고 나꼼수

사회 : 이제 정세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진보신당까지 당은 따로 만들더라도 선거연합은 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형성된 선거연합이 무얼 이야기하는 건지 그거에 대한 판단을 이야기해보자, 이후 정치지형에 어떤 변화를 갖게 될지? 그것이 좋으냐 나쁘냐, 진보냐 후퇴냐의 차원보다는, 무엇을 의미하는 거냐,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하는 걸 들어봤으면 좋겠다.

p14.jpg▲  서영표

서영표 : 큰 이야기부터 던지면 소위 ‘진보 내지는 진보 정당이 없는 진보정치’가 될 것 같다. 녹색정치, 좌파 또는 진보 세력의 자기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당하는 상태가 되지 않을까 제일 우려되는 측면이다. 개인적인 판단으로 통합진보정당은 진보정당이라 할 수 없다.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성격을 유지하겠지만 선거 국면에 들어가고 총선 맛을 보면 급격하게 오른쪽으로 빨려들어 갈 걸로 보인다. 문제는 진보신당 등 바깥의 정당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자기 위치를 잡아주고 있느냐 할 때, 그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잘 봐야 할 부분은 박원순 서울 시장으로 인해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떤 결과를 맞을 거라는 거다. 박원순은 진보가 아니다. 그저 인간의 얼굴을 한 착한 자본주의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보고 찍은 효과가 있다. 사람들에게 이제 진보정당도 정답이 아닌거다. 2004년에 민주노동당 찍어줬더니 얘네들도 똑같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투표장에 안 나오다가, 안철수, 박원순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막 몰린 경향이 있는 거지 않나. 박원순에 대한 실망은 이미 감지되고 있다. 문제는 그 실망을 누가 뒤집어 쓸거냐 하는 점이다. 

그들이 뒤집어쓸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은 좌파, 진보들이 뒤집어 쓰게 될거라 본다. 그 사람들은 개인적인 명망을 이용해서 정당 들어가면 되고 정치적으로 성공하면 된다. 때문에 소위 박원순 시장의 서울이라는 걸 우리가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김규항 : 2040 이런 이야기 하지 않나. 40대, 적어도 30대 이하 세대는 기존의 보수세력에 대한 이반현상이 상당히 일반화된 것 같다. 그 세대에서 한나라, 조중동에 호감을 표하는 사람은 특이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정치적 자유주의까지 무시하는 MB의 행태가 그 촉매역할을 했다.

시민이 변화하면서 이 변화가 정치에 반영되는 현상이 대규모로 일어나고 있다. 한나라당은 기존 패권을 잡던 극우 부분은 빠르게 도태되고 있다. 윤여준 같은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 큰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여튼 한나라당은 빠른 속도로 자유주의화하고 있다. 민주당이나 기존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사실은 대단히 무능한 세력인데, MB 욕하는 걸로 버티다가, 박원순, 안철수로 대변되는 시민사회세력, 혹은 ‘착한 부자 세력’과 헤게모니를 다투면서 재편되는 상황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는 아주 극명하게 드러났다. 또, 진보정치세력 중 일부가 우경화해서 유시민과 통합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거대한 자유주의화’라 말할 수 있는 정치적 재편이 일어나고 있고, 이는 앞서 말한 대로 MB 이후 급격한 시민의식의 발전과 그 반영이라 할 수 있다. 

한형식 : 거대한 자유주의화 물결이란 말에 동감을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우리의 차별성을 어떻게 드러낼 거냐는 거다. 좌파라고 할 때 좌파임을 드러낼 수 있는 변별점은 경제적 자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경제적 비판과 경제정책에 있어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라고 보는데. 그게 잘 안되는 이유는 역량이 없어서다.

두 가지 문제가 계속 논의가 된다. 대안이 없고, 비판할 능력이 없고 대중과 소통하지 못한다. 좀 분리해서 생각해보면 첫 번째 문제에 대해서 특히 경제 문제에 대해서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가 상실했다. 신자유주의 비판에 내용이 없고 뼈대만 남아 있다. 그런 식의 비판은 ‘반신자유주의공동전선’ 등이 명목상 계속 활동하고 있지만, 실제 신자유주의에 대한 경제학적 비판이나 그걸 넘어선 경제 정책적 대안은 거의 제시되지 않는다. 부작용 몇 가지 나열하고 신자유주의는 그냥 나쁜거고, 나쁜건 다 신자유주의 탓이라고 하지만, 신자유주의를 분석하지는 못하는 거다. 

2008년 이후 금융위기 이야기 하는 진보진영의 많은 담론도 분석이 아니라 객관적 기술만 가능할 뿐, 구조적 분석은 없다. 좌파 진영 내에 구조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선수(사람)가 없다. 연구 인력이 재생산 되지 않은지 오래 됐다. 맑스주의 경제학, 폭 넓게 봐도 좌파 경제학을 전공하는 대학내 인력이 쉰이 넘은 나이든 교수까지 포함해도 인력이 10명이 안된다. 이 인력이 그걸 하는건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원론적 비판조차 제대로 못하는 상태에서 정책적 대안을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정책적으로 여기에 대한 대책이 있지 않은 이상 거대한 자유주의화 물결에서 좌파가 대응하기는 힘들 수 있다.

배성인 : 서영표 선생과 같은 맥락인데, 사노위 같은 좌파 단위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홍세화 대표는 ‘진보좌파정당연석회의’를 하려한다. ‘진보단체연석회의’였으면 어떤 식으로든 더 많은 집단(단체)이 규합이 되었을 거다. 

좌파도 자유주의자들처럼 콘서트를 해야 한다. “나는 좌파다” 같은 좌파 콘서트 하자 그랬는데 아무도 반응이 없더라. “나는 꼼수다” 에, 꼼수가 뭐냐 이런 걸 하자고 해도 응답이 없다. 우리도 입 다물지 말자는 거다. 좌파가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 기획하고, 움직여야 하는데 그게 안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운동진영 뿐만 아니라 학문진영까지 죽는다. 

p11.jpg▲  김규항

김규항 : 나꼼수는 문화적 측면에서 자유주의화가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컨텐츠다. 나꼼수는 마치 광야의 지사처럼 나타나서 대중들에게 “쫄지마, XX” 하면서 권력에 대한 저항을 선도하는 듯한 폼을 잡고 있지만 사실은 거대한 자유주의화에 편승한 히트상품이다. 김어준은 10년 전부터 똑같은 이념과 목적을 가진 쇼를 계속 기획해왔다. 이번에 히트한 건 대중들의 의식변화 현상의 폭발을 반영한다. 

정봉주 씨 구속과 관련한 대중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선 30년전 민주화운동 집회의 분위기가 넘쳐난다. 나꼼수는 MB의 자충수적 패악질을 근거로 일종의 “가상 민주화 투쟁”을 선동함으로써 대중들로 하여금 극단적인 시장자유주의라는 오늘 현실의 실체를 직시하지 못하게 한다. 나꼼수의 최대 공헌자는 MB인 셈이다.

어쨌든 나꼼수나 조국, 오연호 같은 자유주의자들은 정치적 보수냐 자유주의냐의 문제로 사람들을 몰아가고 우린 진실은 극단적인 시장자유주의의 문제라는 걸 드러내야 한다. 대중과 소통해 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거다. 그러나 중요한 건 소통과 언어다. 나꼼수는 사실 내용상으로 매우 단순한 구조다. 그러나 대중의 마음을 읽어내고 위로 해주는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한국의 대중들은 지금 너무 힘들고 막막해서 위로받고 싶어 한다. 뭐가 옳으냐의 문제 이전에 위로받고, 조금이라도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어 하는 데 거기에 나꼼수가 딱 맞아 떨어진 거다. 나꼼수의 힘은 이미 넘칠대로 넘치는 MB에 대한 반감인데 우린 MB만 넘어선다고 되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니 몇 배는 더 어렵다. 그런데 우리의 소통과 언어는 그들보다 거칠다. 이 점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 

소통, 그리고 좌파운동

서영표 : 진보가 뭔지 궁금하다. 여러 가지 요건들이 있는데, 보수주의자들은 끊임없이 자유주의자들까지 싸잡아서 좌파라고 낙인찍은 효과가 있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중도 우파들 중에 스스로를 진보로 알고 있는 이들도 있다. 표현할 때 ‘우리도 진보다’라고 한다. 문제는 소위 좌파 내지 진보인 사람들이 그걸 방어하거나 공격할 수 있는 어떤 이론적 무기도 없는 상태에서 무기력하게 그냥 주저앉아 있는 거다. 그러니까 어디까지가 좌파고 어디까지가 진보인지 모호해진다. 사실 진보, 좌파라는 말 자체가 정리하기 어렵다.

사회 : 원래 상대적인 개념이지 않나.

서영표 : 상대적인 거지만, 최소한 누구와 상대적인가를 밝혀야 한다. ‘여기까지가 진보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가 좌파다’라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게 없다. 신자유주의 반대? 그것만으로는 너무 추상적이고 앙상하다.

배성인 : 학술적으로 하나만 말씀드리면 진보정당에 대한 개념규정을 다시 해야 한다. 진보정당은 계급정당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유럽 사민당 식으로 가고 있는 경향인데 확실히 개념 정리를 해야 한다. 대중적 진보정당이냐, 좌파정당이냐 확실하게 개념정리를 해야 하는 거다. 구분 없이 전부다 진보정당으로 몰아가는데 이건 학문적, 운동적으로 맞지 않다.

김규항 :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적 보수 세력과 정치적 자유주의 세력이 보수, 진보 역할을 해왔다. 극우 집권 이후 겨우 민주화 되어서 정치적 자유주의세력이 집권했고, 그 이후에도 정치적 보수와 자유주의가 보수, 진보를 대응하는 건 똑같다. 한국에서 일반 대중에게 진보는 자유주의를 의미한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진보인거다. 개인적으로 자유주의 정권 10년 동안 ‘개혁은 진보가 아니다’라는 소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했던 것도 그런 굴절된 보수 진보의 프레임이 진보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젠 다시 보수가 집권해서 이른바 ‘최소한의 상식’이라 불리는 정치적 자유주의까지 무시해버리니 아예 “가상 민주화 투쟁” 상태가 되어버렸다. 사회가 30년 전으로 돌아갔다고들 말한다. 물론 MB는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지만 시민들의 수준이 높아져서 그때처럼은 할 수 없다. 그런데 자유주의 세력은 MB가 그때처럼 한다고 대중들을 선동한다. 초등학생이 대통령을 쥐라고 말해도 문제가 없는 사회가 그런 거짓 선동과 대중들의 MB에 대한 미움 덕에 독재치하로 여겨지는 것이다. 

보수와 자유주의 진영이 자유주의로 재편되는 현상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그동안은 보수와 자유주의가 보수, 진보를 나눠먹었기 때문에 진보가 설자리가 없었다. 노무현, 유시민이 진보고 좌파니까, 우리의 자리가 없는거 였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자유주의로 통합하면서 진정한 의미에서 보수, 진보의 구도가 가능해 졌다. 물론 그런 구도가 마련되었다고 해서 진보가 저절로 힘을 갖는 건 아니다. 소통 이전에 좌파의 실력이나 내용에 대한 냉정한 성찰을 하는 건 좋은데 분명히 기억할 것은 우리의 목표는 소통의 자격이나 준비가 아니라 소통 자체라는 점이다. 이쪽에서 내는 논평들이 질이 좋은데, 시민대중과 만나지 못하고 있다. 물꼬가 필요하다. 대중들에게는 듣거나, 들을 수 있는 익숙한 언어가 아니다. <참세상>의 문제이기도 하고 여기 모인 사람들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실 근래 저쪽에서 대안으로 내세우는 케인즈주의의 복원이나 복지담론 같은 것이 현재의 자본주의 상황에서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그런 근본적인 문제들을 차근차근 소통해나가야 한다. 

p16.jpg▲  한형식

한형식 : 소통하는 방식으로 언어가 세련되지 못했다는 건 오래된 문제다. 언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소통의 물적 토대를 빼앗긴게 크다. 대중 매체에 좌파들이 진출하지 못하고, 좀 더 폭 넓게 진보담론이 유포되는 통로 안에서도 자유주의자들이 대세다. 프레시안, 오마이뉴스가 좌파 담론을 생산하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급진적 자유주의 정도의 담론일 뿐이다. 한겨레는 정치 입장이 확고하고 내부 통제도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담론을 유통 시킬 수 있는 물적토대 자체를 자유주의자들에게 완전히 빼앗겼다. 대학, 매체, 출판 등의 좌파 담론을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빼앗겼기 때문에, 이걸 다시 빼앗아 오지 않고는 상당히 힘들다. 우리가 아무리 대중에게 잘다가갈 수 있는 언어가 있더라도 그걸 소통시킬 구조가 없다. 

SNS가 있다 해도, 그건 아주 미약하다. SNS가 아무리 자생적이라 하더라도 대중매체가 장악하는 기본적인 담론의 장에서 움직이지 그걸 넘어서는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기 쉽지 않다. SNS를 통해서 유통되는 담론의 주류는 이미 주류 담론의 물적토대가 생산한 것을 재생산할 뿐, 그걸 넘어서는 새로운 담론을 거의 유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걸 통해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건 너무 섣부른 낙관주의다. 좌파담론을 대중적으로 유통할 수 있는 물적토대를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다.

김혜진 : 소통 능력의 부재라기보다는 솔직히 말하면, 의제에 대한 분석 능력을 좌파가 상실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사실 정봉주보다 더한 ‘깔대기’ 다. 정봉주는 자기 잘난 척으로 깔때기지만, 사회주의나 좌파단체의 신문이나 이런 걸 보면 “자본주의가 문제고, 자유주의자들은 죽어도 안된다”라는 결론 말고는 실제로 찾아볼 수 있는 분석은 별로 없다. 현실운동에 대한 개입력이 점차로 약해지면서 점차로 정보에 취약해지고 그 과정에서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영역의 활동가들이 이 공간을 떠나면서 결과적으로 다시 개입력이 약해지는 악순환을 겪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면서 점차로 다양한 의제에 대해서 분석할 수 있는 정보력이 취약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자유주의자들이 지금 득세하게 된 건 담론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담론을 선점하면 정보가 모이고, 사람들 관심이 쏠린다. 그렇게 되면 그 때부터 내용이 채워지는 과정을 밟는다. 그런데 좌파들이 의제에 대한 분석 능력이 떨어지고 사회적인 영향력이 작아지고 내용이 풍부해지지 못하면서 좌파단위에서 활동해왔던 연구자들이나 활동가들이 살길을 찾아 다른 길로 가는 경우가 많으니까 또다시 활동가 층이 줄어들면서 점점 왜소해지는 것 같다.

김규항 : 소통 능력, 소통의 물적 토대는 별개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하나라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나가 보자라면 다른 하나도 사라진다. 하나 덧붙이고 싶은 건 좌파가 자유주의자들의 좌파 행세에 오랫동안 밀리다보니 뭔가 위축된 모습들이 있다. 우리의 이야기를 자꾸 돌려 말하는 습관이다. 사회주의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나 자본주의 반대 같은 명제를 지나치게 함부로 사용해도 거부감을 낳겠지만 아예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자유주의 의제에 묻힐 수밖에 없다. 또한 자꾸 부정어를 사용하는 경향이다. 나도 반성하는 부분인데 ‘이거다’ 라는 말을 하기 꺼려지니까 자꾸 ‘그건 아니다’는 식으로 말하게 되고 대중들은 그게 옳든 그르든 우리에게 뭔가 부정적이고 갇힌 이미지를 갖게 된다. 내가 여기선 좌파 축에도 못 끼는 사람이지만 대중들에겐 한국에서 가장 교조적인 좌파로 알려져 있다.(웃음)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의 언어로 이야기 할 때가 되었다. 

p12.jpg▲  김혜진

김혜진 : 복지 문제를 보더라도 다양한 정치세력들에게서 복지담론이 나오면 우리는 ‘이것은 그래서 한계가 있고, 지금 사회에서는 이런 점에서 안된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그런 방식이 아니라 우리의 입장을 명확하게 하면서 다른 복지담론과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수식어붙이기를 해야 한다. 그래서 가끔 한나라당의 복지는 ‘자유주의적 복지’이고, 박근혜식 복지는 ‘국가주의적 복지’이고, 또 어떤 이들은 ‘사민주의적 복지’라고 이야기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유주의적 복지에 가깝다거나, 그래서 우리의 복지는 ‘민중복지’ 혹은 ‘사회주의적 복지’라는 방식으로 자기 입장을 선명하게 드러내면서 비교해줄 필요가 있다. 이렇게 자기 정체성을 보여주는 작업을 해야 한다. 특정한 주장에 대한 안티의 방식을 뛰어넘어 우리가 주장하는 담론이 어떤 내용인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해야 한다. 

서영표 : 저는 개인적으로 반자본주의 내지는 이런 말을 쓰지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반자본주의 이야기하고 신자유주의 반대하려면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신자유주의 때문에 매일매일 고통스럽게 온몸으로 감내하고 있는 사람들이 신자유주의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들이 아는가 할 때 모른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반자본주의에 대한 생각을 그들의 언어로 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 하면 우리를 더 고립시킬 수 있다는 거다. 선명성이 약해서 운동 능력이 약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영역에서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선명성을 계속 강조하게 되는 거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고립된다. 반자본주의라는 말이 이념적인 선만을 긋고 정치성을 확립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반자본주의라는 걸 선명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더 고립될 수 있다.

김규항 : 더 고립될 만큼 반응이라도 일으키면 다행이다. 그러지도 못한 형편이다. 소통과 언어를 잃어버렸다는 건 그런 이야기다. 반감을 염려해서 아예 말하지 않는 것도, 반감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하는 것도 지양되어야 한다. 

서영표 : 잃어버렸다고 생각지 않는다. 원래 없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 시절에 맞게 특별하게 고민하지 않더라도 이미 명확한 선이 그어져 있었고, 그 선에서 지도력을 보일 수 있었던 거다. 그때 당시에도 대중을 이끌 수 있는 담론이 있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소위 운동세력들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만들어진 조건에서 굉장히 유리하게 작동한 어떤 구조적 조건이 있었던 거다. 그런 의미에서 잃어버렸다고 생각지 않고,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상민주화 시대, 한국사회와 좌파운동 (2)
[참세상 정세좌담회](2) 2012년, 한국사회는 어디로?
참세상 편집팀 2011.12.30 17:51

[편집자주] 참세상 편집위원회에서 격월간격으로 정세좌담회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번 좌담은 최근 김정일 위원장 사망과 2012년 정세와 관련해서 좌파운동, 진보운동의 과제와 방향을 정리해 보는 자리를 가졌다. 다소 긴 논의라 두 차례에 걸쳐 나눠서 싣는다. 

2012년, 두 번의 선거와 한국사회

사회 : 선거 얘기를 해봤으면 한다. 2012년 두 차례 선거가 어떤 식으로든 한국 사회에 작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 같은데? 

선지현 : 소위 말하는 통합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통합이라는 화두를 만들어내는 이유가 뭘까 보면 이명박 정권 등장 이후 대립과 갈등이 사회를 관통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적 측면에서 통합이라는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러다보니 2008년 이후 계속되는 투쟁들의 결과가 온건적인 정치로 수렴되어 통합으로 드러나지 않나 생각한다.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은 사실 강령 면에서는 별로 차별성이 없다. 당면한 정치 목표에서도 별로 차별성이 없다. 그러니까 민주통합당이 정권 교체를 이유로 통합진보당에 야권의 대통합을 제안하는 거다.

이 담론은 노동운동 안에서는 엄청난 재편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소위 노동 운동안의 일정한 우파 그룹들은 한국노총, 민주노총의 통합을 계속 이야기해왔다. 과거에는 지금까지의 정치운동이 노동운동이나 대중운동에 기반해서 정치의 변화를 추동했다면 지금은 정치운동의 변화가 대중 운동을 재편하는 상황으로 까지 온다는 것에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있는 것을 어떻게 조직하고, 재조명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p21.jpg▲  김규항

김규항 : 큰 흐름으로 보건대 정권교체는 될 것 같다. 대중들의 의식 변화가 그렇고 물론 최고 공헌자는 안철수도 나꼼수도 아닌 MB다.(웃음) 그러나 세계경제위기와 자본의 운동 방향으로 볼 때, 자유주의 정권 교체로는 경제면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후 실망감과 혼란상황은 상당할 걸로 보인다. 그 반동으로 파시즘을 우려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대학 캠퍼스에 기존의 극우단체와 관련이 없이 극우적 행태를 보이는 학생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최근에 들었는데 사실 현재 청년들의 상황을 보면 스켄헤드나 나치들이 준동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닌가. 그런 여러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해서 우리의 언어와 소통 능력을 재정비해야 한다.

앞으로 1년은 어차피 보수와 자유주의의 선거판이 쓰나미처럼 사회를 덮을 것이고 우리가 주도적으로 어떤 정치 활동과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좌파 독자후보를 내든, 진보정당연석회의 같은 것이 뜨든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야 하지만 앞으로 1년이 쓰나미를 맞는 기간이라는 점에 대해선 분명히 전제하고 가는 게 현명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우리를 정비하고 장기적인 활동을 준비하는 1년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는 여유로운 태도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서영표 : 처음 문제로 다시 돌아가는데, 지난 학기 정치사회학을 강의했었다. 수업시간에 선거 내지는 박원순을 이야기하면서 중요한 건 (투표 같은) 그런 게 아니다 라는 말을 했다. 수업이 끝나고 남학생 한명이 찾아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지금 불만이 굉장히 눌려있다. 뭔가를 하고 싶다. 그런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투표 밖에 없다”라고 하더라. 이게 뭘 말 하는 건가? 억누를 수 없는 분노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투표 밖에 없다는 말이 좌파들에게 시사하는 봐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꺼리를 만들어주지 못하고, 존재감조차 주지 못한다는 것이 아픈 비수로 꽂히더라.

배성인 : 저도 수업 중에 여기 중에 사회주의자거나 사회주의에 관심 있는 사람 손들어보라니까 12명이 손들었다. 그 중에서 박원순을 찍은 사람이 많았다. 역시 당장 할 수 있는 게 그거 밖에 없다는 거다.

김규항 : 그래서 정치라는 것에 대해서, 정치가 무엇이냐는 것에 대해서도 전면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때 트위터에서 김여진과 약간의 마찰이 있었다. ‘고민 끝에 투표를 거부하는 것 또한 적극적인 정치 행동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라고 했더니 김여진씨가 불만을 표시했고 내가 다시 ‘하나의 대오를 강요하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들은 투표와 선거가 소중한 권리라고 세상이 변화하길 바란다면 투표하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초등학생도 아는 원론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현재의 투표와 선거가 대다수 노동자 서민의 삶을 반영하지 않는 정치놀음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할 수 있다. 위축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제도정치가 정치의 전부인 것처럼 전제하는 것 자체가 사기 아닌가. 한국역사를 보면 해방 이후 주요한 정치적 변화 중에 제도 정치 안에서 이뤄진 게 하나도 없다 419, 민주화, 87년 노동자 대투쟁, 촛불까지 제도정치에서 해결이 안되니가 대중들이 길거리로 나가서 해결해왔다. 그런데 이 진보적 에너지가 선거라는 쓰나미로 쓸려가버린다. 최악을 막아야 된다, 비판적 지지, 현실적 진보, 이런 선동으로 대중들의 진보적 에너지가 대중들을 거리로 나가게 만든 제도정치로 헌납되어 버린다. 정치라는 것이 단지 대통령이 누가 되나, 어느 당이 집권하는가의 문제라는 건 적어도 한국에선 완전한 사기다. 이 사기극을 빠져나가는 게 우리의 숙제다. 

한형식 : 한국 진보운동도 마찬가지로 정치우위가 지나친 상황이다. 이해할 수 없는 합종연횡이 횡행하는 건, 정치우위적인 현재의 분위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아무리 좌파정치라 하더라도 선거 정치의 영향력 아래에서 결국은 움직이는 일이 벌어지지 않나. 결국은 제도 내에서의 의회정치가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노동자 정치에까지 4년에 한 번 씩 긍정적이든 파괴적이든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도는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특히, 정치우위에서 그 정치의 형태가 의회정치라는 것으로 획일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솔직히 공천 구조로부터 벗어나기 힘들다고 본다. 그래서 이쪽에서 내세우는 직접민주주의 성격의 강화라든지 이런 여러 가지 제안을 하면 상당히 급진적인 제안으로 내세우는 것들도 최종적인 정책적인 대안에서는 비례대표 강화라는 방향으로 귀결되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다. 좌파운동의 다른 근거지도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상민주화의 시대, 좌파운동의 과제

p22.jpg▲  김혜진

김혜진 : 우리의 언어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의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자유주의 논리가 진보로 포장되는 사회에서 때로는 좌파들이 그것을 비판하면서 국가주의적 논리를 포용하기도 한다. 자유주의에 대당하는 논리로서 ‘국가가 책임져라’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때로는 위험한 논리일 수 있다.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가부장적 국가주의가 우리 내부에도 숨어있을 수 있다. 그리고 한나라당 등과 대응할 때에는 자유주의 논리를 가져다 쓰기도 한다. 경쟁논리가 때로는 우리의 논리 안에 포함되기도 한다. 이렇게 구심 없이 왔다갔다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려면 좌파운동의 중심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철학적인 고민에서부터 철저할 필요가 있다. 

한형식 : 그 문제에 대해서는 좌파진영에서 경제학적 접근을 터부시한 영향 때문이라고 본다. 지난 15년간, 경제학적 접근을 하면 상당히 낡은 것이라거나 스탈린주의 심지어 경제결정론으로 싸잡아서 매도하는 경향이 좌파 내부에도 있었다. 

일반인이나 대학생을 대상으로 진보에 대한 그림이 뭐냐고 물으면, 경제에 대한 이야기는 주류와 우파가 하는 거고, 진보좌파는 항상 문화, 윤리의 이야기를 하는 걸로 인식한다. 이 구도가 굉장히 강력하다. 거대한 자유주의 물결이 가능했던 것도 이런 것과 관련이 있다. 왜 자유주의자들이 진보의 탈을 쓸 수 있었나를 보면, 문화적인 이데올로기 담론을 선점했기 때문에 이게 좌파진보의 전부인 것처럼 선점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경제이야기는 주류들이 하는 이야기, 그리고 거기에 대해 비판하는 거는 아예 탈경제 비경제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인문학을 이야기하고 하는 사람들이 좌파진보 제도 바깥에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대중적으로 일반화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진보진영 스스로가 거기에 종속되고 그래서 경제학적 접근을 폐기하고 문화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접근만이 신자유주의나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틈이라고 선전하는데. 지난 15년 10년 동안의 좌파 진영의 내부에 널리 퍼져있던 풍조다. 이 과정에서 속에서 좌파 담론을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이 사라졌다. 

p13.jpg▲  배성인

배성인 : 사실 그게 꼭 그런 풍조가 경제학만 그런 게 아니라 전체 학문적으로 그런 풍조가 있다. 좌파 경제학자들만 그런 고초를 겪는 게 아니다. 문화적으로 일정하게 재생산 되고 있다. 나머지 학문분야는 다 갑을 관계가 되어있기 때문에, 갑을 관계에서 받는 고초가 커서 열정은 있는데 굳이 생산하지 않으려 한다. 해야 하는데, 할 수 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관계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회피하거나 패배주의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가령, 정규직 교수와 비정규직 교수를 나눈 기준은 하나 밖에 없다. 비정규직 교수는 교수가 아니라 박사라 호칭된다. 교수는 교수 또는 선생이라 부르는데, 비정규직은 대부분 박사라고 부른다. 스스로 갑을관계를 만들어왔고 밑에서 사실 갑을 관계를 인정했고, 거기에 종속되어 왔다. 

선지현 : 경제문제를 이론적 접근만이 아니라 노동자 대중이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대중의 행동들을 만들어내고 조직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2008년 이후에 나타나는 노동운동에서는 노동자들이 투쟁을 시작하는 과정이나 투쟁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가 자신들의 개별 자본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는 인식과 정권이나 시기에 대한 인식은 과거에 비해 빠르게 성장한다. 하지만 정작 투쟁은 과거에 비해 빠르게 무너진다.

이 과정에서 급진적인 요구를 가지고 좌파단위들이 모든 것이 정리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왔었던 자본에 대한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타격하거나 공격할 수 있는 기제들이나 요구들 있다. 그런 문제들로 투쟁을 만들어내야 하고 체계가 완벽하지 않아도 가능하다고 보는데, 그런 급진화된 요구들을 가지고 조직해가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문제, 좌절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핵심적으로) ‘좌파운동의 지도력 문제’라고 생각한다. 조직 운동의 시스템, 사람, 운동이 표방하는 소위 좌파 운동이 지향하는 지향점 이런 것도, 민주대 반민주 수구대 개혁이라는 프레임을 넘어서려 했지만 여전히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 좌파 운동에 대한 정치적 지도력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이런 문제가 어떤 현상으로 드러나는가 하면, 노동자들이 자유주의로 빨려 들어가는 결과로 나타나, 소위 진보적이고 좌파적인 사고나 의식에 동의하는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정치적 비관주의와 무기력으로 귀결된다. 현장에 비타협적 활동가들이 많은데 활동가들 상당수가 국민참여당에 대한 분노를 갖고 있지만 새로운 대안의 정치, 노동자의 정치보다는 무기력과 냉소로 온다. 그런걸 보면 지도력의 위기라는 문제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운동의 습성과 방식의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고 그러다보니까 지금의 상황에서 일정하게 상층 지도부를 중심으로 갔을 때 그것이 바로 위기로 느껴지거나 정치 패배감이나 무기력이 느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있다. 

김규항 : 현장이 우려된다고 말씀하셨는데, 한편으로는 현장에 대한 개념 규정을 다시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기존의 조직된 노동자, 대공장 남성 정규직 위주로 한 이 질서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자본의 정규와 비정규 분리 지배 전략이 이미 상당히 먹힌 상태고 민주노총의 어정쩡한 행태는 그걸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추이로 보나 현실로 보나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가 현장의 중심이어야 하고 그에 걸맞은 우리의 활동방식이 필요하다. 또한 조직된 노동자는 노동자의 극히 일부이고, 그 안에서 모색을 넘어 노동자 계급의 외연을 넓혀야 한다는 숙제가 있다. 희망버스에서 희망적이었던 건 자신을 시민이라고만 생각하던 사람들이 비로소 자신을 노동자로 인식하는 모습을 발견한 거였다. 

시민과 노동자라는 언어의 대결은 대단히 중요하다. 민주화가 되고 노동자라는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박원순 이런 분들이 90년대 이후 대형 시민운동을 주도하면서 노동자들에게 모조리 시민이라는 허울을 씌워버렸다. 스스로 노동자라는 생각을 안 하니 노동자들의 투쟁이 나하고 관계없는 일이라 연대할 이유가 없고, 설사 관심을 갖더라도 불쌍한 사람을 돕는 불우이웃돕기식이 되지 않았나. 그런 점에 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특히 고학력 사무직 노동자들에게서 그런 현상이 도드라지고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많다.

김혜진 : 비정규직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바인데 최근 몇 년간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노동자들의 삶이 팍팍해지고 어려워졌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있다. 민주노총이나 비정규직 단위에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전략조직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 사업을 하는 이들은 중소영세사업장들에게서 뭔가 변화의 조짐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절실하게 변화를 바라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아직 이들이 그런 변화를 직접적인 자기 실천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지만 그런 갈망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갈망이 왜곡되지 않도록 다른 이들에게 활용되지 않도록 하려면, 그리고 그것이 급진적이고 사회적인 투쟁이 되도록 하려면 우리가 그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공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권리의 주체라는 것’이어야 한다. 권리를 가진 주체로서의 자신을 인식하게 하면서 그런 변화가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우리가 중심을 잡고 선다면 그런 변화의 시기를 맞게 될 것이다. 

p25.jpg▲  선지현

선지현 : 조직된 노동자 중심 사업에 대한 생각이 있다. 왜냐하면 기존에는 ‘아니다’라고 생각했는데 저는 그게 지금은 ‘보루’인 것 같다. 2, 3년전 까지만 해도 남성중심적 운동이라는 비판이 있었고 지금도 있는데, 그건 위기의 반영인 것 같다. 

다른 한편에서,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 시민이라고 호명되는 노동자에 대한 전략적 운동의 고민은 굉장히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본다. 또 하나의 측면에서 보면 소위 좌파 운동에서 예컨대 노동, 쉽게 조직돼서 흐름을 만드는 운동에 천착하다 보니까, 사회운동 부분에서 사회주의적 담론을 형성할 수는 없었다. 녹색, 여성 그런 지향에 걸맞는 주체 단위는 없는 상황이다. 지역, 부문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20세기 사회주의 운동이 아니라면 그것을 뛰어넘는 전략과 경로는 뭐냐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20세기 사회주의로 본다. 20세기 사회주의와 그렇지 않은 사회주의로 구분하는 것도 문제라고 보는데, 어떤 전략이 필요한 건지 의논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있었으면 한다. 선생님들도 좀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이런 전략적 중요성과 단기적으로 부딪히고 있는 문제와 괴리가 있다는 점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뭐 때문에 집중하고 있냐면 통합진보당으로 가고 있는 진보운동 흐름에 맞서는, 뭔가 저게 진보정당이 아니라면 무너지고 있는 이 진보정치를 어떻게든 모아가지고, 당으로 모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항하는 연대적 흐름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보정치라고 하는 건 실종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통합진보당은 민주노총의 상층부나 주요 간부들에게 상당한 지지를 받고 움직이는 게 있다. 노선적으로 우파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렇게 되니까 적어도 민주대오나 선거로 빨려 들어가는 된다. 일정한 흐름의 실천적 지향뿐만 아니라, 이론적 측면에서도 이런 다양한 영역에서 흐름을 만들어내는 게 필요한데, 개별적인 목소리가 아니라 집단적 공동의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어떤 반론이 들어오냐 하면 “좌파는 분열로 망한다는데 너희 끼리 통합해서 같이 당 만들어라”는 압박으로 들어온다. 통합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큰 전선 안에서 자본주의 가치에 대항하는 넓은 의미에서 진보의 가치는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지금 현재 민주대오나 반MB로 활용되는 거대한 흐름에 작게라도 유의미한 일정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게 굉장히 중요하고 필요한 상황이지 않나 생각한다. 장기적인 의미에서 앞으로 본격화해야 되고, 13년 이후가 더 두려운 공포인데, 이를 예비할 수 있는 준비를 지금부터 해나가야 한다.

사회 : 2012년은 여러모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상황도 그렇고, 정치적으로도 그렇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활동을 중심적으로 해야 하나?

p27.jpg▲  서영표

서영표 : 진보좌파의 전망 같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항상 하는 이야기 있다. 생존의 문제 라는 거다. 앞으로 1, 2년을 살아남느냐 죽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보수언론에서도 무한경쟁은 비효율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유주의자들이 감지했다고 하는데, 이건 시장주의자들, 보수주의자들도 감지를 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이 대패할거라 생각하지만 대선은 모르겠다, 굉장히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복지, 사회적 자본, 책임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영국에서도 보수당이 내세우는 담론이 뭐냐 하면 ‘큰 사회’, ‘빅 소사이어티’ 다. 무슨 말인가 하면 자신들 당론에 위배되니까 실제로 재정지출을 늘릴 수 없으니까, 지역에, 마을에, 가족에 책임을 지우고 그게 바로 사회적 자본이고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라는 식으로 유포 시키고 있다. 재분배 할 순 없지만 사회적 비용이 너무 커지고 사회적 불안이 커지니까 이걸 어떤 식으로든 봉합해야 하는 이데올로기적인 뭔가가 필요해 진거다. 그게 바로 ‘소설캐피탈(사회적 자본)’로 들어온 거다.

한형식 : 이미 몇 년 전부터 조직적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최근에 복지논쟁은 지금은 시들한 편이고, 선거 국면에 들어서면서 진보를 표방한 자유주의들이 사회적 자본을 집중적으로 유포시키기 시작하지 않았나. 좌파들이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전혀 반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상당히 많은 좌파들이 이런 담론에 수렴되고 있다. 연기금 사회주의 보다 더 심각한 이야기다 사회적 자본 담론은 미국에서 주류 중에서도 주류담론인데, 한국에서는 진보적인 담론으로 포장되어 시리즈로 계속 소개 되고 있다.

서영표 : 저는 소위 녹색을 사회주의와 어떻게 결합 시킬까를 고민하고 있다. 녹색의 담론을 빼앗겼는데, 녹색적 비판을 자본주의 시스템 비판으로 어떻게 가져갈 건가를 고민 중이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로컬한 수준에서 지역 정치를 할꺼냐 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지만 부빌 언덕이 없다. 아주머니들하고 사회학 세미나 하고 맑스 저작도 읽고 있다.

p26.jpg▲  한형식

한형식 : 좌파운동이 어째야 한다는 건 거창하고, 저희가 뭘 할건지를 말씀드리겠다. 저희는 경제문제에 대한 좌파의 담론을 생산하도록 하겠다. 당면한 과제에서 경제위기는 현재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좌파적 분석이나 대안은 어느 하나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대응도 느려서 자유주의자들이 이론을 이끌어 가고 있다. 

좌파의 자유주의로의 전향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지금 다시 경제학적 담론으로 돌아왔다. 이런 상황은 기본적으로 그 사람들이 트랜드를 먼저 보는거라 할 수 있다. 오히려 좌파들이 이런 문제의식에 둔감하고 자유주의자들이 경제 문제가 진짜 중요한 문제라는 걸 인식하고 있다. 여기에 좌파들이 주도권을 선점 당하고 있다. 이 문제를 우리가 빨리 대응하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김혜진 : 지금까지 주류가 아니었던 운동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이번에 학생인권조례 문제를 갖고 서울시청에서 성소수자 분들이 농성을 했다. 그런데 좌파들은 그 농성에 열심히 연대해야 한다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지속되어왔던 많은 운동이 어떻게 사회를 변혁하는 운동과 만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운동들이 전체 운동 속에서 어떻게 서로 주고받는 힘으로 형성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주류 운동에서 이야기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운동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면서 나아가고 있는 여러 운동과 함께해야 할 필요가 있다. 

김규항 : 고래가그랬어에서는 부모서명운동을 기반으로 한 교육운동을 준비하고 있는데 교육 상황을 짚어나가다보면 자연스럽게 급진적인 지향 없이는 교육이 바뀔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아이들이 이미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인데 이렇게 된 게 이명박 문제가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합작의 문제라는 건 명백한 사실이니까. 교육 부분은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어떤 수준인지를 극명하고 정직하게 드러낸다. 좌파나 노동운동하는 사람들도 제 아이 교육에선 시장주의 경쟁을 벗어나지 못할 정도다. 한국에선 교육문제가 중요한 사회문제 중 하나가 아니라 최전선의 문제이자 지배체제의 골간이라 말할 수 있다. 가장 반체제적인 사람들까지도 꼼짝못하게 만드는 문제니까. 현재 한국에서 교육문제는 한 사람의 사회적 상태를 가장 정직하게 드러내고, 반대로 말하면 교육문제에서 변화는 사회적 의식의 급진화와 이어진다. 죽어가는 아이들을 구해내야 한다는 숙제와 함께 향후 1년 우리가 맞을 선거 쓰나미를 내실있게 보내는 방법으로 연결해서 생각하고 있다.

선지현 : 2012년 이후를 어떻게 살아갈지를 가지고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세계공황이 더 심화될 것이고, 유럽의 위기가 어떻게 확산 될 것이냐를 봐야 하지 않을까. 특히 한국은 정부가 제출한 2012년 경제정책을 보면 내수를 활성화 시키겠다는 경제적 흐름을 보여주고, 정치적 측면에서는 선거 국면에 진보좌파가 민주대오로 쓸려 들어가는 상황에서 드러날 결과물은 예측하고 있다. 2012년 이후, 급변하는 정세에 맞춰 좌파 운동이 어떻게 갈지를 가지고 2012년의 과제를 정립해야 한다고 본다. 

당장 공론화를 할 수 있는 기재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예컨대 쌍용차 노동자들이 희망텐트를 하고 있는데, 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들어가는 의미도 가지지만, 정리해고자라는 주요하게 관통했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강화하고 발전시킬 거냐 같은 것들을 2012년에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 : 장시간 쉽지 않은 주제로 이야기 해주시느라 수고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