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음악

La Marseillaise - Mireille Mathieu

인서비1 2011. 4. 2. 20:21

 

Allons enfants de la Patrie Le jour de gloire est arrive
Contre nous de la tyrannie L'etendard sanglant est leve (bis)
Entendez vous dans les campagnes, mugir ces feroces soldats?
Ils viennent jusque dans vos bras, egorger vos fils, vos compagnes!

 

나가자 조국의 아들딸들아 영광이 날이 왔다 !
압제에 맞서 피묻은 깃발을 올려라 (두번)
들판에서도 들리는가 저 포악한 병사들의 외침이
그들이 여기까지 닥쳐와 당신의 자식과 아내를 죽이려 한다


Aux armes citoyens !  Formez vos bataillons !
Marchons, marchons!
qu'un sang impur abreuve nos sillons!

 

무장하라, 시민들이여 무리를 지어라
행진하자, 행진하자 !
적들의 더러운 피가 우리의 밭을 적실 때까지 !


Que veut cette horde d'esclaves De traitres, de Rois conjures ?
Pour qui ces ignobles entraves, Ces fers des longtemps prepares ? (bis)
Francais ! pour nous, ah ! quel outrage !
Quels transports il doit exciter !
C'est nous qu'on ose mediter De rendre a I 'antique esclavage !

 

저 노예, 반역자, 공모자의 무리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
끔찍한 족쇄와 오래도록 준비한 이 칼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
우리 프랑스인에게, 아 ! 이 무슨 모욕인가
끓어오르는 분노인가
바로 우리가 노예제를 과거로 되돌릴 용기를 가졌다 !

Quoi ! des cohortes etrangeres Feraient la loi dans nos foyers !
Quoi ! ces phalanges mercenaires Terrasseraient nos fiers guerriers (bis)
Grand Dieu ! par des mains enchainees Nos fronts sous le joug se ploieraient !
De vils despotes deviendraient Les maitres de nos destinees !

 

뭐라고 ! 외국의 무리들이 우리 땅을 지배한단 말인가 !
뭐라고 ! 저 돈에 팔린 용병들이 우리의 자랑스런 전사들을 쳐부순단 말인가 ! (두번)
신이시여 ! 결박당한 우리 손 속박하의 우리 전선이 쓰러진단 말인가 !
비열한 폭군이 우리 운명의 주인이 된단 말인가 !


Tremblez, tyrans ! et vous, perfides, L'opprobre de tous les partis,
Tremblez ! vos projets parricides Vont enfin recevoir leur prix (bis).
Tout est soldat pour vous combattre, S'ils tombent, nos jeunes heros,
La terre en produit de nouveaux Contre vous tout prets a se battre

 

각오하라, 압제자와 너희 배신자여 모든 이의 치욕이여
각오하라 ! 너희들의 반역은 결국 대가를 치르리라 ! (두번)
모두가 전사가 되어 너희들을 물리치고 우리 젊은 영웅들이 쓰러지면
이땅은 새로운 영웅들을 태어나게 하리니 모두가 너희와 싸울 준비가 되었다 !

 

Francais ! en guerriers magnanimes Portez ou retenez vos coups.
Epargnez ces tristes victimes A regret s'armant contre nous (bis).

Mais le despote sanguinaire, Mais les complices de Bouille,
Tous ces tigres qui sans pitie Dechirent le sein de leur mere

 


 

 

 

프랑스인이여, 고결한 전사여 주먹을 날리고 또 참아라 !
어쩔 수 없이 우리를 상대로 무장한 이 슬픈 희생자들을 용서하라 (두번)
하지만 저 잔인한 폭군들은 하지만 저 부이예의 공모자들은
가차없이 자신의 어머니들의 가슴을 찢어놓은 저 모든 호랑이들은 !


Nous entrerons dans la carriere, Quand nos aines n'y seront plus
Nous y trouverons leur poussiere Et les traces de leurs vertus (bis).
Bien moins jaloux de leur survivre Que de partager leur cercueil,
Nous aurons le sublime orgueil De les venger ou de les suivre.

 

우리는 그 길로 들어가리라 우리의 선열들이 더이상 없는 그때
거기서 그들의 흔적과 용기의 자취를 발견하리라 (두번)
그들을 대신해 살아남기보다는 죽음을 함께하고자 하는
우리는 숭고한 자존심을 지키리라 그들의 복수를 이루고 그들을 따르리라


Amour sacre de la Patrie
Conduis, soutiens nos bras vengeurs !
Liberte, Liberte cherie !
Combats avec tes defenseurs (bis).
Sous nos drapeaux, que la victoire Accoure a tes males accents,
Que tes ennemis expirant Voient ton triomphe et notre gloire

 

거룩한 조국애여
복수를 위한 우리의 팔을 이끌고 들어올려라
자유여 귀중한 자유여
너의 수호자와 함께 싸워라 ! (두번)
우리의 깃발 아래로 승리가 너의 강인한 노래에 발맞추고
쓰러져가는 네 적이 너의 승리와 우리의 영광을 보기를 !
 

 


 

 


지금 흘러나오는 노래는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국제 대회를 보면서 나는 경기도 경기지만

시상식이나 오프닝에서 울려 퍼지는 세계 각국의 국가에 큰 감동을 얻는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나라의 국가마저도 어찌나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지!

 

하지만 그중에서도 으뜸은 역시 이 프랑스의 국가가 아닐까 싶다.

멜로디도 물론이지만 가사에서 전하는 이 명확하고 직설적인 메세지는

노래를 듣는 내게 언제나 묘한 흥분을 일으킨다.

 

이 가사를 배우고 따라 부르며 자란 아이들은

속으로 어떤 가치들을 내면화하게 될까.

 

이런 노래를 제 나라의 국가로 삼는 나라의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전과가 수십 개나 되는 사람을 xxx 자리에 앉히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인터넷에 작곡 배경과 이 노래가 그동안 겪은 풍상에 대한 글들이

많이 있으니 관심있는 사람들은 찾아서 보는 것도 좋겠다.

 

아마도 전 세계 모든 나라의 국가들을 통 털어서 가장 살벌하고 공격적인 노래는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가 아닐까 합니다. 몇 일전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의

일생을 그린 영화 ‘라 비앙 로즈’를 보았습니다. 그 영화중에 인상 깊었던 장면이

이제 대, 여섯 살 밖에 안 된 어린 피아프가 ‘라 마르세예즈’를 동네 사람들 앞에서

부르던 부분이었는데요, 애처러울 정도로 작고 가냘픈 소녀의 입에서 나오는

무시무시한 노래 가사가 인상적이었죠. 사실 이 노래의 공격적인 가사와

격정적인 멜로디는 원래 이 곡이 프랑스 대혁명 때 작곡된 군가였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쓰는 ‘War & Song’, 오늘은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 편입니다.

 

1792년 이른 봄, 프랑스 전역은 임박한 전쟁 위기로 들끓고 있었습니다.

 혁명에 간섭하고 구체제를 복원하려는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연합군에 맞서

전쟁을 벌일 것인가, 아니면 굴복할 것인가를 놓고 프랑스 국민의회는 석 달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죠. 이제 명목뿐인 왕이 된 루이 16세 역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혁명군이 승리한다면 그의 목숨은

위태로워질 것이고, 만약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연합군이 승리한다고 해도

패전국의 왕으로서의 미래 또한 불투명해 질 것은 불 보듯 빤한 일이었기 때문이죠.

혁명파들도 강,온으로 나뉘어 각자 자신들의 권력획득에 어느 쪽이

유리할 지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1792년 4월 20일, 마침내 루이 16세는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에 전쟁을 선포 합니다.

 

몇 달 동안이나 숨죽이며 억눌려 있던 긴장이 한 순간에 폭발합니다.

특히 프로이센과 국경을 마주한 라인 강변 도시들의 흥분은 더욱 격정적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후방의 파리 시민들이 느끼는 추상적인 전쟁의 위협과는 다르게,

이들 ‘알자스 로렌’ 지방의 주민들에게 적은 바로 지척에 있는 존재였으니까요.

 

언제라도 사악한 적들이 쳐들어와 자신의 삶터를 짓밟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살육할 가능성은 바로 눈앞의 현실이었던 거죠.

 

4월 25일, 라인 강변 ‘스트라스부르’에서도 전쟁을 위해 소집된

군대가 요란한 북소리에 발을 맞춰 행진하고 민중들은 열광하고 환호했습니다.

 

스트라스부르의 ‘프리드리히 디트리히’ 시장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전장으로

향하는 이 젊은 군인들을 위한 행진곡을 지어줄 것을 절친한 친구이자

아마츄어 작곡가인 ‘루제 드 릴’(Rouget de Lisle)에게 부탁합니다.

 

스트라스부르 수비대의 공병 대위였던 ‘루제’는 흔쾌히 친구의 부탁을 받아들였죠.

‘루제’ 대위의 시는 한 번도 인쇄된 적이 없었고, 그가 작곡한 오페라는

번번이 퇴짜를 받았지만, 그의 열정만은 남달랐습니다.

 


 

순수한 열정에 사로잡힌 무명 작곡가는 하룻밤 사이에 불멸의 혁명가(歌)를 완성시킵니다.

흥분된 마음으로 초라한 숙소로 돌아 온 루제 대위는 밤새 곡을 써내려 갑니다.

그가 그 날 하루 동안 거리에서 들었던 웅변과 고함과 외침소리는

프랑스 민중의 심장박동 소리가 되어 그의 영혼을 움직입니다.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그가 이제껏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격정 속으로

그를 이끌고 가 그의 손끝에서 노랫소리로 다시 태어납니다.

하루 만에 노래 말이 쓰여 지고 곡이 붙여진 이 노래는 다음 날 저녁,

프리드리히 시장의 집에 모여든 청중들 앞에서 ‘라인 군대를 위한 행진곡’

(Chant de guerre de l'armée du Rhin)이라는 이름으로 최초로 연주 됩니다.

스트라스부르 시장의 집에 모인 청중들 앞에서 자신이 지은 곡을 노래하는 루제 대위.

 

그러나 한두 달이 지나자 사람들은 더 이상 이 곡을 듣지 못했죠.

단지 손으로 필사된 악보만이 이리 저리 뒹굴어 다닐 뿐이었습니다.

그대로 잊혀져 가는 듯 했던 이 노래가 빛을 발한 것은 엉뚱하게도

프랑스 남부의 항구도시 ‘마르세이유’에서였습니다. 조국과 혁명에 대한

순수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연합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어 이미 침략군이 프랑스 영토 깊숙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위기에 처한 혁명정부는 국민들에게 도움을 호소합니다.

“프랑스를 위해”, 혁명의 열정과 애국심으로 불타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젊은이들이 조국의 부름에 호응합니다.  6월 22일 마르세이유,

전쟁터로 떠나는 지원병들을 위해 마련된 집회에서 한 젊은이가 벌떡 일어나

“나가자, 조국의 자식들아.”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이 곡의 악보가 어떤 이유로 이 젊은이에게 전해졌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이제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로 나아가 혁명의 대의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젊은이들의 가슴속에 이 격정적인 노래 말은 불꽃을 피워 올리기 시작했죠.

"나가자, 조국의 자식들아." 루제 대위가 써내려 간 노랫말 원고.

 

 

프랑스 대혁명 이전까지 유럽의 군대는 국왕과 귀족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군대는 그들에게 봉급을 받는 직업군인들로 채워졌고, 이들은 곧 국왕과

귀족들의 고용인에 다름 아니었죠. 혁명을 지키기 위해 전장에 나선 의용병들은

이러한 이제까지의 현실을 완전히 뒤바꾼 새로운 창조물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시민들은 자신들이 지켜야할 조국과 지켜야할 가치를 위해

스스로 총을 들고 전쟁터로 향했습니다. 국왕에 의해 고용된 용병이 아닌,

강제로 끌려나온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국민군대’가 탄생한 것입니다.

파리에 입성하는 마르세이유 의용병들, 파리시민들은 이들이 부르는 노래소리에 열광했습니다.

 

곧 이 노래는 전쟁터로 떠나는 젊은 군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7월 2일, 마르세이유에서 파리를 향해 출발한 6백 명의 의용병들은

목이 터져라 이 노래를 부르며 행군합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열병처럼

이 노래는 프랑스 민중들의 가슴에 거대한 불길이 되어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800Km를 걸어 마르세이유의 의용병들이 파리에 도착한 것은 8월 10일,

마침 루이 16세가 퇴위당한 날이었죠. 의용병들이 샹젤리제 거리를 행진하며

소리 높여 부르는 이 노래는 곧 파리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들은 이 곡에 ‘라 마르세예즈’(마르세이유 군단의 노래)라는 제목을 붙입니다.

 그리고 프랑스 의용병들은 유럽 여러 나라의 상비군들에 맞서

조국을 방어하고 마침내 혁명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전선으로 향하는 의용군 병사와 소년 고수.


 

1795년 7월, 프랑스 국민의회는 이 노래를 프랑스의 공식 국가로 지정합니다.

그 뒤, 왕정복고 시절 혁명의 이상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금지곡이 되기도 했던 이 노래가 다시 불린 것은 1830년 7월 혁명 당시

파리의 바리게이트 앞이었고, 1879년 프랑스 제 3공화국 시절

다시 프랑스의 국가가 됩니다. 애초 ‘루제’ 대위가 쓴 6절까지의 가사에다

나중에 다른 사람이 추가한 7절 가사가 붙은 ‘라 마르세예즈’는

공식행사에서는 1절과 6절만 부릅니다.


   루제 드 릴(Rouget de Lisle), 1760.5.10~1836.6.26

 

하루 밤새 이 불멸의 혁명가를 창조한 ‘루제’ 대위의 후일담은

자신이 만든 노래의 영광과는 달리 불운했습니다. 원래 온건 혁명주의자였던

그는 혁명의 혼란기 속에서 군대에서 쫓겨나야 했고, 자신에게 작곡을 부탁했던

‘프리드리히’ 시장, 자신이 곡을 헌정했던 ‘루크너’ 장군, 이 노래 최초의

청중이 되었던 동료 장교들이 단두대에서 삶을 마감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아래서 반혁명 분자로 몰려 그 자신이 투옥되기도 했던

‘루제’ 대위에게 영광의 날은 너무도 짧았습니다. 곡을 쓴 후 40년이나 더 살았던

‘루제’ 대위는 온갖 하찮은 일들로 구차한 삶을 이어갔고, 그가 쓰는 시들과

오페라들은 인쇄되지도 무대에 걸리지도 못했죠. 어음을 부도내고

채무자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던 그가 1836년 일흔여섯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을 때, 아무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만 그의 사후 70여년 뒤 1차 대전이 터지고, 프랑스의 모든 전선에서

‘라 마르세이유’가 다시 울려 퍼지게 되자 ‘루제’ 대위의 시신은

 파리의 ‘앙발리드’(Invalides) 기념관으로 옮겨져 영원한 안식을 찾게 됩니다.    

파리 시내의 '루제' 대위 동상.

 

 

 

(사족) 곰PD는 가끔 축구 경기를 보다가 프랑스 대표팀이 국가를 부를 때,

상대편 선수들이 어떤 기분이 들까 상상하며 혼자 웃곤 합니다.

“우리 조국의 목마른 밭이랑에, 적들의 더러운 피가 넘쳐흐르도록!”

상대팀 선수들이 이 가사를 알아듣는다면 자신의 목이 제대로 붙어 있나하고,

슥 한번 만져 보지나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이 글은 슈테판 츠바이크 著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참고로 썼습니다.)


 

Michel Sadou의 '라 마르세예즈'

 

이탈리아 가수 Milva의 '라 마르세예즈'


 

 

Mireille Mathieu는 1946년 7월 22일 프랑스 남동부 Avignon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가난한 집 14명의 형제자매 중 맏딸로 태어나 마치 현대판 신데렐라처럼

동화같은 삶을 살았다. 그녀의 아버지 Roger씨는 비석공이었는데 그의 수입으로는

생활에 어려움이 많아 식구들이 모두 나가 함께 열심히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살던 집은 물이 새는 등 어려움이 뒤따랐다.

 

그녀의 재능은 어렸을때 부터 알려져 그녀가 처음으로 무대에 출연한 것은

4살때 성당의 자정미사때였다. 어릴 적 그녀의 꿈은 같은 프랑스 국적

31년 연배인 '에디뜨 삐아프(Edith Piaf, 1915.12.19 ~1963.10.11)'처럼

유명한 가수가 되는 것이었다. 정말 그녀의 꿈처럼 처음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을 땐

 '에디뜨 삐아프'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음색과 창법이 비슷했다.

학교에서 그녀는 'Edith Piaf' 의 'La Vie En Rose(장미빛 인생)'을 불렀다.

학교를 다니던 도중 그녀는 Laure Collière라는 선생에게 발탁되어

가수가 되는 길과 인격체 형성 등의 도움을 받게된다.

 

이는 그녀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강한 여성으로 만들었고,

노력없이 얻을수 없다는 집념으로 노래에 전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15세때 아비뇽의 샹송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하여, 버클레이 레코드의

사장 에디 버 클레이에게 스카웃되었다. 그녀가 19살때인 1965년 12월 ..

프랑스 국영 TV방송국은 1963년에 세상을 떠난 에디뜨 삐아프의 대를 이을

가수를 발굴하는 신인무대 성격의 프로그램으로 Tele Dimanche라는

아마츄어 샹송 콘테스트를 열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최종결승에서

19살 작은 체구의 '미레이유 마띠유'는 '에디뜨 삐아프'의 명곡

'L’Hymne A L’amour(사랑의 찬가)'를 불러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매스컴에서는 그녀의 노래를 듣고 2년전에 세상을 떠난 '에디뜨 삐아프'가

다시 탄생했다고 머리기사로 대서특필했다. 그리고 그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가수 '조니 할리데이(Jean-Philippe Smet)'의

 매니저 Johnny Stark가 마침 그 프로를 보고 있었는데

미레이유 마띠유와 바로 계약을 맺고 4주만에 그녀를

모든 샹송 가수들의 꿈인, 올랑피아 극장 무대에

서게하였고, 죽기전까지 그녀 곁에 함께했다.

 

그녀는 다음 해 1966년 봄에 데뷔하였고 "사랑의 신조"가 히트 하면서

스타가 되었다. 폴 모리아가 작곡한 데뷔곡 'Mon Credo(나의 신조)' 란

그녀의 샹송모음집이 17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던 것이다.

 

그녀는 하루 사이에 애수에 젖은 깊은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가수로서 성공의 길을 걷게 된다. 이로인해 '미레이유 마띠유'는

프랑스의 노래하는 대사의 역할을 하게되며 그녀는 모든 팬들을 위해

자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최고의 가수로 성장한다.

 

그녀는 불어 ,독어, 영어,이태리어,스페인어,러시아어 핀란드어, 중국어 등

9개국 언어로 1200 여곡을 불렀는데, 그의 공연은 Tom Jones 등

세계적인 가수가 따라다녔고, 40년이 넘는 기간동안 1억5천만장이상의

판매고 기록도 남겼다. 미레이유 마띠유(Mireille Mathieu)의 초기 음악은

에디뜨 삐아프(Edith Piaf)와 같은 샹송이었지만, 70년대 이후 음악은

샹송과 팝을 섞어놓은 프렌치 팝의 형태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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