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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숙의 '문밖을 나서니 갈 곳이 없구나'를 읽었다.

인서비1 2010. 4. 12. 21:07

<출처:http://blog.daum.net/favor15/18150156>

 

최기숙의 '문밖을 나서니 갈 곳이 없구나'(?)를 읽었다. 저자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고전 텍스트를 현대어를 번역하고 소개하는 데 힘을 쏟았으며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이 책은 부제 거지에서 기생까지, 조선 시대 마이너리티의 초상이 말해주듯 조선 시대 소수자들의 삶을 기록한 고전을 소개하고 저자의 관찰과 감상을 덧붙이고 있다.

 

소제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거지에 홀린 선비 추문 속에 꽃을 보다. 가릴 수 없이 쏟아진 재능 세상을 울리다. 이 여자의 파란만장한 생애 상식을 뒤바꾸다. 호협한 풍류 남아 세상을 들썩이다. 비천한 골목의 선비 그늘진 어둠을 걷다. 몸의 역사를 읽는 명의 희망의 불꽃이 되다. 이름없는 소년 소녀 언어의 집 속에서 영생을 얻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쓰는 것은 만남의 연장이며 그 만남을 읽는 이에게도 이어 주는 나눔의 시작이다. 그것은 인간과 그 생애를 존엄하게 받드는 개인적 의례이자 죽은 자에 대한 마지막 예의다. 혹시라도 서운했거나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는 傳을 쓰지 않는다. 쓴다는 것은 어떤 경우라도 관계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신분제 사회의 그늘에서 산 조선의 마이너리티는 자신의 일생을 세상에 남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힘들었다. 그런데 다행히 그 일을 가능하게 한 문학장르가 傳이다. 사람이 죽은 뒤에 일생을 요약하는 형식의 글이 많은데, 고인과 직간접적인 관계없이 쓰는 사람의 의지만으로 지을 수 있는 글이 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분이 낮은 사람들, 기생이나 여종, 궁녀, 아이들의 전은 써달라는 이가 없이도 쓸 수 있었다.

 

세상 물정을 알면 움직이기도 전에 그 뒤가 보인다.

 

사람들은 그(장생)에게 지나온 과거만을 물었고, 현재에 관해서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 시대에는 천한 사람을 이해하고 아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다. 장생은 이해받지 못한 자였고, 기꺼이 그 몫을 감당했다.

 

예쁘고 아끼는 것을 곁에 두면 그 기운을 받아 원하는 형상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은 옛사람의 예를 좇아 조희룡은 평소에 좋아하는 것들을 풍경처럼 두고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글씨와 그림은 모두 타고난 솜씨에 달렸다. 총명한 사람이 몸이 다할 때까지 배운다 해도 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손끝에 있지 가슴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자해는 가장 낮은 자가 할 수 있는 거절의 몸짓이었다. 타인에게 전해야 할 것을 자신에게 되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패배자의 마지막 자기표현이다.

 

핑계를 대는 것은 사악함의 증표가 아니라 연약함의 어쩔 수 없는 표식이다.

 

사람들이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시기하지 않고 공경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기의 맞수를 아끼고 경쟁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고 보듬는다면 세상이 태평하겠지요.

 

은애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 세상 윤리를 바로 잡겠는가? 특별히 용서해 사형을 면하게 한다.

 

더구나 당시에는 기릴만한 여인의 사랑이란 烈節로만 언급되었다. 그것을 가리키는 다른 말이 없었다. 말이 없었다는 것은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고, 그에 대한 문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소수자 삶이 눈에 보일듯 펼쳐진다. 소수자의 삶을 애써 기록한 고전, 고전을 번역하고 해석을 덧붙인 저자의 글이 이해와 감동을 만들어낸다.

 

          2008. 10. 1.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