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society

[정연주칼럼] 권력에 취해 눈이 멀다

인서비1 2010. 3. 23. 07:38

[정연주칼럼] 권력에 취해 눈이 멀다

 

 

 

 

 





“(돈이 든) 봉투를 의자에 놓고 나왔다.” 한명숙 전 총리에게 5만달러를 주었다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법정 진술이다. 검찰은 ‘돈을 받은 의자’를 기소해야 했다고 왁자지껄하다. 이런 코미디가 21세기 대명천지에 검찰이라는 국가기관에 의해 만들어졌다. 웃을 일이 아니다. 정말 웃을 일이 아니다. 곽영욱씨의 다음 증언을 접하면, 어쩌다 우리 공동체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나 싶다.

“검찰이 징그럽게, 무섭게… 조사… 죽고 싶었다” “그땐 검사님이 호랑이보다 더 무서웠다” “무섭다. 죄지은 ○이 검사님 앞에서…” “죽고 싶다, 죽고 싶다고…” “저녁에 조사받고 나오면 아침에 (언론에) 나오고…”

심장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70살 노인을 “징그럽게, 무섭게 조사”를 했고, 그런 검사가 “호랑이보다 무서웠다”. 그렇게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서 횡설수설했고, 그 횡설수설이 한명숙 전 총리에게 적용된 ‘범죄 내용’이 되었다.

“검사님이 막 죄를 만들잖아요”, “검사님이 무서워서 그랬어요”. 지금이 ‘25시’인가. 정치검찰이 죄를 만들어 인격살인을 하는 경험을 나 자신 직접 겪어 봐서 곽영욱씨의 그 처연한 외침이 무슨 소리인지 다 안다. “이게 제 조서입니까?”라는 곽씨의 반문에 이르면 할 말을 잊게 된다.

재판이 진행되면 될수록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내용들이 계속 쏟아져 나온다. 검찰 공소장에 돈을 ‘건네주었다’는 막연한 표현이 나왔는데, 그것을 분명히 밝힐 것을 요구받자 검찰의 설명이 가관이다. “건네주었다는 표현에는 의자에 놓고 나오는 방법도 포괄적으로 포함된다”, “기소할 때부터 손으로 건넸는지, 식탁이나 의자에 놨는지는 추상적이었다”. ‘포괄적으로’ ‘추상적으로’ 공소를 제기했다니, 누가 이걸 정상적인 공소제기라 볼 것인가.

검찰은 왜 그랬을까. 왜 돈 준 ‘전주고 출신 정치인’ 이름 다 불라며 일망타진의 의지를 불태웠고, 왜 추상파 작가가 되어 한명숙 전 총리를 그렇게 터무니없이 ‘추상적으로’ 공소제기했을까. ‘잃어버린 권력 10년’ 뒤에 잡은 그 권력 집단에 소속된 일체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권력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아울러 그런 장기집권 구조에 기여·봉사하겠다는 동기부여가 없었다면, 과연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 나의 배임사건도 그렇고, 미네르바, 피디수첩 사건 등도 그렇다. 한마디로 지금의 권력에 취해 눈이 멀어 버렸다. 그렇지 않고야 어떻게 국민을 이렇게 우습게 알까.

정치검찰뿐만이 아니다. ‘큰집 조인트’ 발언을 통해 방송장악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고백한 김우룡씨, 사진과 동영상을 그렇게 싫어한 사람이 어찌 배우를 했는지, ‘회피 연아 동영상’을 고발한 “에이 씨×, 사진 찍지 마”의 주인공 유인촌씨, 자기 딸이 한나라당 서울시의원 후보로 신청할 때 “너는 잘할 수 있을 거다”라고 말하면서도 “여성들이 직업을 갖기보다는 현모양처가 되기를 바란다”며 한 입으로 두말을 하는, 그리고 여성 취업이 저출산의 원인인 것처럼 진단한 봉건시대 인물 같은 최시중씨, 아동 성폭력도 좌파교육 때문이라는 ‘만사 좌빨 도사’ 안상수씨, 대통령의 발언을 ‘마사지’했다는 이동관씨….





모두 권력에 흠뻑 취하여, 그래서 오만이 넘쳐, 국민도 안중에 없이 함부로 말을 내뱉고, 방자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정치검찰과 권력 핵심부 인사들의 이런 권력도취와 오만한 모습을 보면, 그들만 모르는 것 같다. 이명박 정권이 이제 ‘3년 시한부’라는 것을.

정연주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