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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들이 봉숭아보다 더 붉어서 아프다 / 여림

인서비1 2010. 1. 8. 17:57

 손가락들이 봉숭아보다 더 붉어서 아프다 / 여림    


바다를 본 기억이 없다 분명 기억 속의 그 도시엔 바다가 있었는데 난
바다를 본 기억이 없다

횡단보도였지
차들이 소음을 지르며 질주하고
행인들이 지나가는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고
햇살은 부시도록 선명했는데

가게 앞 의자에 앉아 혼자 울 뻔했었다
살아 있다니
...그건
참으로 끔찍하기까지 한 현실이었다

울지 않으려 차창으로만 시선을 두다가 일시에 날아오르는 새떼를 보았지
황망하게도
그 풍경이 나를 울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늘 그 자리에 웃거나 혹은 뒤척이면서 지내고 있었다
우습게도
그런 모습이 또 서글퍼 보이기도 하더군
할 말이 너무 많아서일까?

웃다 울다 바보처럼 돌아서 왔다

그리운 사람,
때로 너무 생각이 간절해져서 전화조차 버거웠다면 쓸쓸히 웃을까?
보고 싶어서 컴퓨터 자판 위에 놓인 손가락들을 본다
그런데
손가락들이 봉숭아보다 더 붉어서 아프다
그리운 사람
조금씩만 서로 미워하며 살자
눈엔 술을 담고 술엔 마음을 담기로


눈에 술을 담고 술에 마음을 담고 사노라면 얋은 가슴에는 가랑잎만 쌓이겠죠.
잔바람에도 흔들리고,
작은 손짓에도 한번 인 파문은 하얀 이빨을 드러낸 파도로 밀려들기 일쑤죠.
허구헌날 가난한 마음에 찬바람이 휘도는데
그 누구 그리워하지 않곤 배겨날 재간이 없죠.
그저 그 사람만 간절히 기다리며 산다면 웃으시겠죠.
노을빛이 가을색과 어우러저 꽃으로 피고
이 모든 것이 부질없이 떨어저 눕는 늦은 가을 날.
오늘은 무슨 이유로 기다림을 허락해야 할까요.
토닥이며 달랬다가 사나운 손톱으로 할퀴기를 반복하며,
상흔 위에 상처로 뒤덮혀 슬픔은 아물줄 모르는데
가을의 끝자락을 밟고 맑은 하늘을 바라봅니다.
눈빛으로 마음을 하늘에다 그려놓지요.
슬픈 얼굴 하나.
그리움이 오늘도 컴퓨터 자판을 두두리게 합니다.
내 손톱에 봉숭아물이 깊게 들겠죠.
모두 잠들어 침묵이 어둠으로 깔린 밤입니다.
사랑이 뭔가요?
혹연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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