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society

금융위기, 경제학 패러다임 바꾼다

인서비1 2009. 11. 4. 22:02

금융위기, 경제학 패러다임 바꾼다

연합뉴스 | 입력 2009.11.04 18:02

 
효율적 시장·합리적 기대이론 근간 흔들려
(서울=연합뉴스) 김중배 기자 = 금융 및 경제위기는 늘 인류의 경제학적 아이디어에 영감을 부여해왔다.

이번 세기적 금융위기와 이로 인한 경기침체 국면도 예외일 수 없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부실화가 전 금융 부문에 걸쳐 도미노처럼 파국을 초래한 데 이어 '쓰나미'처럼 실물경제를 휩쓸어버렸지만,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들은 이에 대한 변변한 경고는 물론이고 사태에 대한 올바른 진단과 처방조차 내놓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같이 주류 경제학이 경제위기에 속수무책으로 수수방관하는 사이, 기존 경제학적 패러다임을 적용할 수 없는 새 시대가 도래했다는 깨달음이 경제학계에서 점차 확산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넷판이 3일 보도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에 몸담았던 컬럼비아대 프레데릭 미쉬킨 교수는 "우리는 현재 경제학 패러다임의 변동기를 목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WSJ은 이번 변화가 지난 대공황 이후, 그리고 1970년대 거품경제 붕괴 시기 이후 맞이하는 또 다른 큰 패러다임의 변혁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존 지아나카플로스 예일대 교수는 주류 경제학의 대안을 찾는 이들이 주목하는 '신성(新星)' 가운데 하나다.

한동안 변방에 머물러왔던 그의 이론은 경제위기와 더불어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의 새 이론은 공교롭게도 오래된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희곡에 등장하는 악덕상인 샤일록은 빚에 대한 대가로 실물인 '육체'를 요구한다.
지아나카플로스 교수가 주목한 지점은, 현대판 샤일록이라 할 금융전문가들이 실물인 자산을 담보로 삼아 그 레버리지 효과(지렛대 효과)를 활용해 끝없이 새로운 신용(각종 복합적 금융상품)을 창출한 상황, 또 이러한 거품이 결국 초래하게 된 위기의 전개 과정이다.

효율적 시장의 기제와 합리적 기대이론이 주류를 형성해온 경제학계는 오랜 기간 자본주의의 호황기 속에서 경기순환의 흐름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가능하다는 잘못된 신념을 쌓아왔다고 WSJ은 지적했다.

실제로 주류 경제학에 기반한 중앙은행의 정책 입안가들은 이번 경제위기의 과정에서 적절한 대응은커녕 제대로 된 진단조차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

이에 따르면 주류 경제학자들의 이론은 '이자'가 수요와 공급의 기제를 통제할 수 있는 주요한 정책수단이라고 판단했으나, 지아나카플로스 교수의 새 이론은 신용을 창출하는 담보에 대한 신용한도 비율에 주목했다.

그의 관점에서 볼 때 발행된 증권의 가치를 담보할 수 있는 실물 자산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단순한 사실이 이번 위기를 초래한 주된 원인이다.

담보물의 부족은 여러 가지 구조화된 새로운 형태의 담보 자산 창출로 이어졌으며, 급기야 모기지 대출 자체가 '담보물'이 되는 새로운 복합상품도 등장했다.

여기서 담보 가치 대비 신용창출 한도는 이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거품을 만들어내는 주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문제는 담보물을 토대로 한 신용창출이 호황기에 끝없는 거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이지만, 불황기를 맞이하면 비극적인 자산의 연쇄도산을 불러일으킬 뇌관이라는 점이다.

지아나카플로스는 이를 '레버리지 순환'이라고 지칭하며, 이자 외에 이러한 변수가 경기 순환에서 더욱 중요한 변수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통해 담보 및 레버리지 규제의 기틀이 마련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은행이 담보물에 대한 대출한도에 대한 정보를 취합해 시장에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노스웨스턴대 마틴 아이셴바움 교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창출은 향후 수년에서 수십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지만 이로 인한 변화의 폭은 엄청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jb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