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음악

야상곡/쇼팽

인서비1 2009. 6. 28. 19:53

 

 

 

 

전운이 감돌던 1939년 폴란드의 바르샤바.
유명한 천재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프 스필만은 대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폴란드의 국보급 천재 음악가다.
스필만은 여느 때와 같이
한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는데,
바로 그 순간 방송국이 폭격을 당하고
스필만은 자신의 연주를
완전히 끝내지 못한 채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나치는 폴란드 안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유대계인 스필만의 가족들은 모두
죽음으로 가는 기차에 강제로 실린다.
피아니스트인 자신을 알아보는
몇몇 사람들의 도움으로,
스필만은 극적으로 목숨을 건지고,
나치의 눈을 피해 숨어 다니며
폭격으로 폐허가 된 어느 건물에
자신의 은신처를 만들게 된다.

아무도 없는 폐건물 속에서
스필만에게 남겨진 것은 허기와 추위,
그리고 고독과 공포.
먹을 것은커녕 마실 것 조차 없는
절대 절명의 상황에서,
스필만은 오직 생존의 일념으로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텨 나간다.
온전히 혼자 남겨진 스필만은 어둡고
눅눅한 폐허 안에서 자신이 연주하던
곡들을 상상으로 연주하며 몸부림친다.
오래된 통조림 한 개로
간신히 목숨을 지탱하던 스필만은 어느날
그 주변을 돌던 독일 장교에게 발각되고 만다.
한눈에 그가 유대인 도망자임을 눈치챈 독일 장교.
그가 스필만에게 신분을 대라고 요구하자
스필만은 자신이 피아니스트였다고 말한다.
한동안의 침묵 끝에 스필만에게
연주를 명령하는 독일 장교,
그리고 그 말에 추위와 허기로 곱은
자신의 손가락만 내려다보는 피아니스트 스필만.
이윽고 스필만은 어쩌면 지상에서의
마지막 연주가 될 지도 모를 그 순간,
온 영혼을 손끝에 실어 연주를 시작하는데...

"폴란드 역사에서 가장 슬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영화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나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또한 있었다.
그러나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이 쓴
회고록의 첫 장을 열자마자 이것이
바로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그 영화가 될 것이라는 직감을 했다.
마침내 그토록 찾아왔던 이야기를 만난 것이다.
그 회고록은 참혹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인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나를 끈질기게 괴롭혀 왔다.
절대 다수가 싸늘한 시체로도 남아나지 못한
그곳에서의 생존은 안도가 아닌
죄책감으로 나를 눌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조각난 기억들을 다듬고
재창조해 나가면서 나는,
아니 우리는 또 다른 역사의 단면을 완성해 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 [피아니스트]가
우리가 겪어왔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 로만 폴란스키

전 세계가 왜 기립박수를 보냈는가?!
2002 칸느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감동의 대작 [피아니스트] 칸느 영화제 폐막 이틀 전 5월 24일,
[피아니스트]의 첫 공식시사회장은
격렬한 기립박수로 가득 찼다.
영화 크레딧이 끝난 후에도
관객들은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틀 뒤, 폐막식에서 [피아니스트]가
다른 후보작을 물리치고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발표되었을 때, 모든 사람들은 이 가슴 벅찬
휴먼드라마의 승리에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을 다룬
[피아니스트]는 유대계 폴란드인이자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블라디슬라프 스필만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는 39년부터 45년까지 폴란드 바르샤바의
게토에서 공포와 광기에 맞서 생존을 위한
외로운 투쟁을 벌였다. 수많은 죽음의
위험 속에서 스필만은 가까스로 살아나고
이 극적인 경험은 낙관적인 희망으로 물든다.
[피아니스트]는 죽음의 들판에서 승리한
한 예술가의 삶이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용기 있는 자들의 삶이다.

나는 가스실에서 어머니를 잃었다!
[쉰들러 리스트] 연출을 거부했던 로만 폴란스키
그가 20년 동안 기다려왔던
생애최고의 역작을 완성시키다!
영화 [피아니스트]는 실존했던
한 유대인 피아니스트의 삶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는 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자전적 경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유대계 폴란드인 감독 로만 폴란스키는
유년 시절 나치의 유대인 학살 현장에 있었다.
어머니를 가스실에서 잃은 폴란스키는
반드시 그 시기에 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스필버그가
[쉰들러 리스트]의 연출을 직접 제안했지만,
그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런 폴란스키는 스필만의 담담한,
그리고 마치 보고서 같은 회고록을 발견하자
이것이야말로 그가 평생을 기다렸던 작품임을 깨닫게 된다.
폴란스키는 [피아니스트]를 감상주의나
신파로 물들여 관객에게 호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냉정할 정도로 담담한 시선으로
역사와 광기, 예술과 인간애를 그려내며
이 영화는 어느 순간, 관객들에게
복받쳐 오르는 감동을 선사한다.
폴란스키는 영화를 통해 비극의 아픔이 아닌
승리와 꿈의 희열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공포와 폐허로 얼룩진 폴란드 바르샤바
반 세기 후 독일에서 그 처절한 역사의 현장이 부활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은 폐허 그 자체였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 [피아니스트]의 제작진들이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바로 그 폐허를 재현해내는 것이었다.
제작진은 영화배경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수개월 이상을 사전준비에 힘썼다.
제작진은 베를린에서 90킬로 정도 떨어진
주터보그와 베를린의 바벨스버그 스튜디오,
크게 이 두 곳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영화의 배경이 전시였던 만큼,
수많은 장비와 연기자들은 필수 조건이었다.
[쉰들러 리스트]로 오스카를 거머쥔
미술감독 앨런 스타스키와 그의 미술팀은
바르샤바 현지를 돌며 지금까지 남아있는
당시의 물건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준비했다.
그리고 스튜디오에 완벽한 바르샤바를
재현해내었다. 그곳에서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국에서 미국까지 이어진 주연캐스팅
마침내 모두를 사로잡은 피아니스트를 발견하다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폴란스키 감독은
주연 배우를 찾기 위해 유럽에서 미국까지
샅샅이 찾아 다녔다. 그는 스필만과 흡사한
외모를 가진 사람을 찾는 대신,
피아니스트 이미지의 일체를 가져다 주는
배우를 원했다. 영국에서의 대규모 오디션도
폴란스키에게 만족스런 배우를 가져다 주지 못했으나
미국까지 배우영역을 확장시킨
폴란스키는 마침내 애드리안 브로디를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빵과 장미]에서 연기력을 펼쳤던 브로디는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전시의 공포에서
살아남는 폴란드 예술가 스필만의 감정을
세심하게 연기해내었다.
한편, 폴란스키는 주연뿐만 아니라
잠깐 스치는 조연들에도 완벽을 기했다.
그는 수 천명의 인터뷰와 사진촬영 등을
통해 세기 전 폴란드, 유대인, 독일인들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보조연기자들을 캐스팅하였다.
특히 독일 나치군을 연기한 배우들은
감독조차 다시 한번 유년시절의 공포를
경험하게 할 만큼 섬뜩한 분위기를 던졌다.
지옥에서 울려 퍼지는 천상의 소리
천재 피아니스트 스필만의 감동적인 선율을 만나다

영화 속에서 가장 긴장된 순간.
바로 스필만이 독일장교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이다.
추위와 허기에 지친 유대인이 생존을 위해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
제작진들은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이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한 사람은
바로 야누스 올레니작이다. 그는 스필만과
마찬가지로 유명한 폴란드 피아니스트로
영화의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피아노 선율에 혼을 담아 생명을 불어넣었다.
전쟁과 평화, 아군과 적군. 이 모든걸 떠나
인간의 위대한 영혼과 승리를 연주한
올레니작은 결국 위대한 승리의 찬가를
전 인류에게 헌사한 셈이다.
그는 위의 장면 이외에도 영화의 첫 부분과
라스트를 이루는 쇼팽의 녹턴을 연주하였다.
총 제작비 $35,000,000
제작진 1300명, 거대한 군사장비
전 유럽대륙의 최고 스텝과
노련한 기술이 완성시킨 대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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