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미술

John Atkinson Grimshaw

인서비1 2009. 6. 22. 19:52

John Atkinson Grimshaw 1836~1893

 

유럽은 밤이 빨리 찾아오는 도시라는 걸

그 때 우린 알지 못했다.

처음 유럽의 한 도시,

런던에 내려서게 되었으니.

 

런던브릿지를 씩씩하게 건너

강으로 이어진 낡고 어두운 계단을 걸어 내려가자

비릿한 물냄새가 맡아질 정도로

강과 가까운 길이 나타났다.

 

한 참을 걸어가야 한두 사람을 마주칠 정도로

그 시간 강가를 따라 걷는 사람은 없었다.

 

조명이 비춰진 템즈강의 다리들은

몇 번이나 멈춰서서 사진을 찍을 정도로

이국적이고 아름다웠고,

강 위를 떠다니는 유람선은

낭만적인 음악을 들려주듯

우아하고 화려했다.

 

유럽의 밤은 그렇게 하염없이

우리를 걷고 꿈꾸게 만들었다.

 

 

Park Row, Leeds, 1882

 

꿈을 간직한 시간

 

밤은 날 꿈꾸게 만든다.

단지 부드러운 달빛과 노곤한 잠기운 때문이 아니라,

밤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익숙한 건물들 사이의 길들은

어둠과 희미한 빛들로

전혀 새로운 길이 되어버린다.

밤에 걷는 길들은

낯선 여행지를 찾아온 것 처럼

마음을 들뜨게 만들기도 한다.

 

그림쇼의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마치 그 날의 여행지에서 만난

낯설고 설레이는 런던으로 돌아간 듯 하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건물들 위로

의 하늘들이 뒤섞여 복잡한 색을 만들고

이슬을 머금은 축축한 돌길은

당장이라도 말발굽 소리가 들려올 듯이

과거현재의 시간이 함께 흐르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밤이 깊어질 수록

도시에서 내가 그려내는 환상들은 늘어만 간다.

 

 

 

Elaine, 1877

 

Elaine, 1877

Midsummer's Night, 1876

 

스물 다섯, 화가를 꿈꾸다

 

그림쇼의 작품에서

런던의 공기와 느낌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태어나 많은 작품을 남긴 곳이 바로

영국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첫 직장은 철도회사의 서기였다.

자신이 태어난 도시 리즈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주변 갤러리들을 돌아다니며 그림들을 구경하곤 했다.

이러한 예술적 탐험은 결국

스물 다섯인 그가 직장을 그만두고 화가의 길을 걷게 만들었다.

 

그의 선택은 그의 부모들로부터 전혀 환영받지 못했다.

심지어 그의 어머니는 그림쇼의 작품을

모두 없애버리기까지 했다.

 

우리에겐 다행히도,

이러한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림쇼의 미술에 대한 열망은

차근차근 영글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스물 아홉이 되던 해,

그의 이름은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리즈에서 인기 있는 예술가가 된 그는

1865년 부인과 함께 부유한 도시로 옮겨가게 된다.

 

 

The Lighthouse At Scarborough, 1877

 

Whitby Docks, 1876

 

The Thames Below London Bridge, 1884

 

Whitby from Scotch Head, 1879

 

달빛과 노을 속 세상을 그리다

 

주로 정물화를 그려 명성을 쌓기 시작한 그림쇼가

밤의 풍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마흔이 넘어서면서 부터였다.

 

1870년대 리즈 지역의 풍경화들과 정물화를 그렸던 그는

어느 날 부턴가 스크린에 비추는 밤의 풍경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관심은 그의 예술가로서의 세계를

전혀 새롭게 변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그의 예술적인 관심은

이제 도시의 밤 풍경으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그가 그린 풍경화들은

고풍스러운 유럽의 풍경에

환상적인 이미지를 부여해 더욱 특별하고 아름답다.

축축한 공기가 안개처럼 자욱한 거리를

생각에 잠겨 걷고 싶게 만드는.

 

하지만 그림쇼의 그림이

단지 낭만적인 밤의 거리 모습을 묘사한 것에 그쳤다면

이렇게 두고두고 그의 작품을 펼쳐보게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작품엔 묵직한 고독

삶의 고민

홀로 빠져들게 만드는 정적이 함께 한다.

그것도 상당히 현대적인 느낌으로.

 

Calm After the Rain

 

Winter Moonlight

 

 

November Moonlight

 

Hamstead Hill

 

 

근대 도시의 변화가 감춰져 있는

 

19세기 산업혁명을 겪은 유럽의 공업도시들은

연기가 만들어내는 짙은 안개에 감싸져 있다.

그림쇼는 바로 이 안개를 표현해내는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바로 이 안개로 인해

그의 작품을 보면 현대적이라 느끼게 된다.

새로운 시대로 넘어오기 위해

꿈틀거리는 당시 유럽의 에너지

도시를 감싼 안개 속에 감춰져 있는 것 같다.

 

뿐만 아니다.

길가 상점들에서 흘러나오는

희미만 조명들은

늦은 시간까지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의 고단하고 지친 하루를 보는 것 같다.

 

영국의 거리는 그림쇼가 그린 당시의 모습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오래된 것을 조금씩 고쳐나가며 중세에서 근대, 현대로 넘어온

영국인들의 움직임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다.

이것은 화가로서의 그림쇼의 작품 전반에도

상당 부분 해당되는 점이다.

 

사진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종종 작품의 윤곽을 잡기 위해

사진을 사용하곤 했다.

또한 새로운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물감에 모래를 섞기도 했다.

 

하지만 그림쇼의 작품 대부분은

눈에 띄는 새로운 도전이나 변화를 가지진 않았다.

그저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Blackman Street, London, 1885

 

Hampstead, 1881

 

Whitby Harbor by Moonlight, 1867

 

희망을 품은 도시의 밤

 

하지만 짙은 안개를 뚫고

다음으로 나가는 작은 변화들을

그의 작품 속에서 찾아낼 수 있다.

 

적막하던 거리에

불빛이 하나 둘 늘어가고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음을

그는 분명 발견하고 있었다.

 

미래를 향한 움직임을

언제나 지켜보고 함께한 그림쇼가

이렇게나 아름답고 평화롭게 그려낼 수 있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운 좋게 집으로 가는 지하철은

다리 위를 달려 한강을 건너게 되는데,

난 밤의 야경을 보기 위해 기꺼히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으로 바싹 다가서곤 한다.

 

꼬리를 물고 길게 늘어선 자동차 불빛과,

가로등이 아른아른 흔들리며 비추는 한강의 물결,

네모지게 이어진 강변의 건물들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보면

아침 해가 떠오르는 출근길보다 훨씬 더 희망에 차오르곤 한다.

 

이 길이 포근한 내 집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행복감과,

오늘 하루가 내일로 이어진다는 뿌듯함 때문에.

그것이 도시인들의 행복이 아닐까.

고단하고 분주했던 하루가

비록 어둠 속에 가려져 있지만,

그 속엔 여전히

뜨거운 에너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린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이.

 

The Old Hall Under Moonlight, 1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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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intry Moon, 1886

 

Liverpool from Wapping, 1875

 

Old Chelsea


Yo-Yo Ma 연주 / 'once Upon A Time in America'
('원스 어폰 아 타임 인 아메리카' / Sergio Leone 감독,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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