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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놀이

인서비1 2009. 3. 24. 00:57

 

설을 맞이하여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보고 싶은 사람 만나서 좋고

만나면 얘기 꽃이 피어서 좋고

꽃이 피면 행복한 것이 명절이다.

 

명절을 맞이하면 우리 선인들은 조상에 차례를 지내

일가친척 어르신을 찾아뵙고 세배를 올리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다.

 

산업화 이전 60년대 까지만 해도 친척이 아닌 동네 어른들에게도

세배를 올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세뱃돈 한 잎 받지 않아도 입술이 나오지 않았다.

 

돈이 귀했던 그 시절

세뱃돈을 준비하지 못한 할아버지가 곶감이라도 하나 주면 마냥 즐거웠다.

헌데 요금 아이들은 배춧닢에 눈이 휘둥그레 진다.

많이 주는 어른을 밝히니 안타까운 현실이다.

 

우리 민족이 윷을 놀기 시작한 것은 아득한 옛날 부터다.

윷판 생김새는 마치 고구려 5부의 조직도와 같다.

삼국지 부여전에 각 족장들이 사출도를 관장했다고 한 바, 이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아래 윷판과 같다.

 

 

 

 

  

가운데 왕, 지배 부족이 있고 네 귀퉁이에 각 부족이 있다.

고구려 부여 백제 신라 가야 모두 초기에는 부족 단위 조직이었다.

이것은 유목 내지 반농 반목 상태에서는 공통현상이다.

그런 사회편성원리가 놀이에 나타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호모 루덴스란 말이 있듯이

인간은 나서부터 죽을 때 까지 논다.

노는 것에는 인간의 모든 생활이 알게 모르게 녹아 있다.

 

오늘날 고스톱도 그렇다.

피박과 싹쓸이.

상대의 비극을 고소해 하고

그로부터 자기이익만을 챙기는 욕심스런 마음..

 

더불어 살아가기 보다

남이 못되야 내가 잘되는 것 같은 비 인간적인 이 모순

예전 놀이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윷놀이의 기원을 '부여'에 두고

부여 관직이름이 각각 윷판의 도, 개, 윷, 모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삼국지 동이전 부여전에 이르기를 육축의 이름을 따서 벼슬을 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등등

 

도는 바로 도야지고 저가고

개는 지금도 개다.

 

윷은 슟 곧 소다

옛날 소를 슛 이라고 했고 발음 상 ㅅ과 ㅇ은 서로 왔다 갔다 한다.

 

모는 몰, 말이다.

윷놀이에서 모를 제일로 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유목민들에게 가장 소중한 동물은 말이니 그 흔적이남아 있는 것이다.

 

걸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양이란 설과 닭이란 설이 양립하고 있다.

 

팍팍한 2009년. 신념 벽두.

윷가락이라고 신나게 던져 봤으면 좋겠다.

 

*** 이 글은 삿가스 칼럼에서 빌려온 글입니다.http://blog.daum.net/k30355k/13744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