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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푸코의 윤리적 문제설정에 있어서의 자유와 비판의 의미

인서비1 2018. 6. 8. 08:08

후기 푸코의 윤리적 문제설정에 있어서의 자유와 비판의 의미

도 승 연*1)

 

 


[논문개요]
본 논문의 목적은 푸코의 윤리적인 문제설정이 그의 비판의 프로젝트 전체에 있
어서 극점임을 드러내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이른바 ‘존재미학’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후기 사상이 자유의 유지라고 하는 윤리학적 문제설정에 어떠한 기여를 할 수
있는가를 조망하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자는 주체의 해석학이라는 푸코의
계보학적 기획을 따라서 그의 후기의 관심사가 어떠한 의미에서 그의 사상사적 체
계 안에서 보다 광범위하고 정제된 입장으로 이해되어야 하는지를 고찰하고, 윤리
학적인 그리고 미학적인 영역으로 그가 전회를 꾀한 의도를 서구 문화의 주체화의
역사와 관련하여 살펴볼 것이다. 그리하여 적어도 그가 행하는 주체의 해석학이라
는 계보학적 접근은 우리가 주체로서 형성되는 많은 방식들을 분석하는 다양한 측
면들에 접근하기 위한 가능한 시도이고 또 그것이 그 한계를 시험하여 자유를 획득
하기 위한 비판적 시도라는 점을 본 논문을 통해 주장하려고 한다.
주제어 : 존재미학, 성의 역사, 계보학, 통치성
*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강사
108 사회와 철학 제13호

 

 


Ⅰ. 문제제기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 철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푸코를 지명하는 많
은 학자들조차 푸코는 표상과 세계와 인식의 근원으로서 작동하는 전통적
주체에 대한 거부나 혹은 권력과 지식의 밀접한 관계에 대한 분석가로서
일반적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푸코가 생의 말엽의 문
제로서 연구해 왔던 주제, 비보편성과 비규범성에 기반을 두고서 자신을
윤리적 주체로서 창조하는-특히 그의 저서 성의 역사 2, 3권에서 주로 논
의되고 있는- ‘존재미학’에 대해 심각한 의심과 회의적 입장을 표명해온 것
은 당연한 일이었다. 푸코에게 호의적인 주석가들조차 권력에 의해 생산된
형식으로만 주체를 파악하던 그의 기존의 관점으로부터 푸코가 후기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려고 하는 윤리적 주체로의 이
행을 일종의 전환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보다 공격적인
입장에서는 이러한 전환이 푸코가 행했던 전체적 업적을 방법론적인 수준
에 있어서 흠집내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이전에 그가 주장했던 내용들
을 손상시켰다고 비판하였다. 성급하게 이야기 하자면 푸코에 대한 필자의
문제제기는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권력에서 자아라는 주제로 이동한 그의 전환에 이론적인 단절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푸코가 견지하고 있었던 전체적인 수준에서의 문제의
식은 언제나 동일한 것으로 남아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특정한 진리게
임 안에서 개인을 주체로서 구성하는 일련의 경험들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과 기술들에 대한 탐구’1)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푸코가 고고학적 분석으로
1) “20여 년 동안 나의 작업의 목표는 어떻게 인간이 그들 자신에 대한 지식을 만
들어 나가고 발전시켜 나가는 하는데 있어서 우리 문화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방식들의 역사를 그려보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의 중요한 점은 그저 지식의 가치
를 표면에 보이는 대로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위, 우리 자
신들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해왔던 특정한 기술들과 관계하고 있는 특정한 진실
게들로서의 과학들을 분석하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4가지 유형의
후기 푸코의 윤리적 문제설정에 있어서의 자유와 비판의 의미(도승연) 109
부터 계보학적 분석으로 자신의 방법론적 전환을 꾀했을 때, 이 전환을 단
순히 그의 전기와 중기의 학문적 구분의 지표로서 이해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담론’이라는 개념을 보다 넓은 관점으로 고찰하기
위한, 그리하여 그것의 현실적 작동과 기능을 검토하기 위한 불가피한 접
근으로서 이해하는 것이 정당하듯이, 필자는 그와 동일한 맥락에서 푸코가
행한 또 다른 전환‐권력에서 자아로의 분석대상의 전환‐에는 그가 이전
에 연구했던 이전의 저작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더 나아가 자유를 위
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푸코의 전략적 의도이며 그렇기에 보다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탐구의 초점도 여기에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일차적으로 푸코가 행한 윤리적 문제설정이 자신이 평생을 걸쳐
제기했던 비판적 기획이라는 문맥 안에서 적절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가를
검토하고, 나아가 이러한 후기의 작업 안에서 푸코가 담보하고자 했던 비
판과 자유의 개념을 고찰하여 그의 윤리적 전환을 푸코의 비판적 기획의
정점으로서 이해하기 위한 논의들로서 재구성함으로써 자유의 유지라는 측
면에서 그가 기여한 윤리적 의미를 평가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을
것이다. 연구의 방법적 측면에 있어서 푸코의 사상적 궤적을 연대기적 구
성을 통해 접근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으면서 주로 강의에 대한 문헌학적인
기술(테크닉)들이 존재합니다. 첫째, 생산의 테크닉들. 둘째, 기호체계의 테크닉
들, 셋째, 권력의 테크닉들, 넷째, 자아의 기술들 입니다. 비록 이 각각의 유형들
이 서로 분리적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들 각각은 특정한 방식의 지
배의 형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첫 번째 두 개에 해당하는 기술들
은 과학과 언어학의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다면 내가 집중하고 있는 마지막 두
개의 경우를 통해, 나는 자아와 지배와 관계에 있어서 어떻게 지식이 형성되는
가의 역사를 탐구하려고 합니다. 아마도 나는 지금까지 지배와 권력의 기술에
대해 너무 많은 연구를 해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자아와 타인들 사
이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과 또 개인의 지배의 기술들에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Foucault, Technologies of the Self pp.18-19) 이러한 구체적인
언급을 통해서 우리는 푸코 자신의 주요한 관심이 단지 지배의 기술이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개인이 자기 자신에게 행동을 부여하는가의 역사에 더 많은 관
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10 사회와 철학 제13호
해석과 그가 행한 인터뷰들에 기반한 내용들을 다룸으로써 새로운 삶의 가
능성을 자유와 비판의 문제로서 고찰한 푸코의 후기사상에 보다 구체적으
로 접근하고자 한다.
1. 지식, 권력, 그리고 주체성
푸코가 일생을 두고 관심을 가진 문제의 구도가 지식과 권력 그리고 주
체성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했을 때,2) 푸코의 초기
의 저작들이 지식의 담론적인 형성의 조건에 대한 집중적인 분석으로, 중
기의 저작들은 권력과 지식의 그 밀착적인 연계와 그것의 적용에 관심을
두었다면 그의 후기의 저작들은 자기와 자기와의 관계를 다룬 자아의 기술
로서, 즉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주체로 구성하는 과정에 대한 연구로서 특
징화하여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푸코가 일생을 두고서 연구한 세
가지 국면으로서의 분석의 축들은 각각의 상대적인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특정한 시기에 그의 분석에서 요구되었던 전략적 요지로서의 역할을 담당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분절로서 작동하고 있지만, 앞에서 이미 지적
했듯이 푸코의 일관적인 문제의식이 인간을 특정한 경험으로 이끄는 다양
한 문화들에 대한 탐구라는 점에서 각각의 측면은 역사의 층위를 변화시키
2) “계보학의 세 가지 영역이 가능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스스로를 지식의 주체로
서 구성하는 방식을 통해서 진리와 관계를 맺는 우리 자신의 역사적 존재론과
둘째로 타인들과의 행위로서 자신을 주체로 구성하는 방식을 통해 권력의 장과
관계를 맺는 우리 자신의 역사적 존재론과, 셋째, 자신을 도덕적 행위자로서 구
성하는 방식을 통해서 윤리와 관계를 맺는 역사적 존재론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영역은 서로 혼합되어 있는 상태에서 존재합니다.” (Foucault, on the
Genealogy of Ethics: An Overview of Working Progress, p.352. 이하 OGE로
칭함). 하지만 그의 문제의식이 이 세 가지 축들을 통해서 인간의 경험과 주체
성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의 문제의식이 이 축들을 통해 충분
히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문제제기는 언제나 지식과 권력, 혹은
권력과 주체, 주체와 지식의 문제 등으로 그 틈을 노리고 서로가 서로를 복합적
으로 연결, 중첩하려는 시도를 계속한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그가 제시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합적이고 확장적이라고 할 수 있다.
후기 푸코의 윤리적 문제설정에 있어서의 자유와 비판의 의미(도승연) 111
는 단계적인 과정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는 상보적인 축들로
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것들이 푸코가 견지하고 있는 문제의식
을 더욱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탐구의 대상을 분해하면서 각각의 방
법을 구축해가는 도약적인 전개를 통해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
도 간과해서도 안 될 것이다.
푸코에 따르면 지식의 생산과 권력의 작동 그리고 자아의 기술에 대한
세 가지 연구의 대상들은 역사적으로 개인의 특수한 경험을 구성하고 그것
을 주체성과 연관시키는 다양한 영역들의 축들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인간
의 자유에 대한 현대적 구성을 담당하는 영역들의 핵심적 위치에 있다고
파악한다. 특히 푸코의 윤리학적 관심은 위에서 언급했던 주체화의 과정에
있어서의 순서상 분석의 마지막 측면에 위치해 있지만 그 목적에 있어서
앞선 두 측면과는 다른, 즉 자아의 기술이라는 측면의 탐구를 통해서 주체
화 양식의 다양함과 역사성을 드러낸다는 점에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
것은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를 주체로서 설정하려는 역량capacity
으로서의 자유의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며 동시에 그러한 자유의 공
간을 협소화 하려는 모든 반‐자유적인 시도들에 대한 도전하려는 실천적
탐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푸코의 윤리학적 전환의 동기와 전략을 바라보았을 때,
그의 전환을 단지 방법론적인 단절로서 과소평가하거나 논의되어야 할 몇
몇 주제들이 간과되어 있다는 지리멸렬한 불평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주
체화 방식에 있어서 진행되는 진리의 게임을 탐구하려는 푸코식의 이러한
접근, 즉 ‘이성에 대한 하나의 찌름이 아니라 다양한, 그리고 끊임없이 풍
부화시키는 분화.’3)라는 새로운 방식의 시도로서 그의 전환을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성에 대한 끊임없는 찌름’이라는 이 비판적 기획은 필연적으로
비완결적이며 과정적인 작업일 수밖에 없겠으나 이것을 새로운 시도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그의 비판의 작업에 대한 생산적인 평가
를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3) Herman Nilson, Michel Foucault and the Games of Truth, p.64.
112 사회와 철학 제13호
푸코는 초기의 저작들을 통해 지식의 생산과 분배에 대한 문제를 제기
함으로써 세계를 인식하고 사유하는 근대적 ‘주체’의 부재를 주장하고자 했
으며 대신에 인식하고 사유할 수 있는 주체는 오직 그러한 사유와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특정한 앎의 조건-푸코는 이것을 에피스테메, 혹은 지식,
혹은 담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의 맥락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밝혀내
고자 하였다.
이러한 지식과 담론과의 상호 작동을 통해 개인은 특정한 방식으로 인
식하고 사유하는 주체로 파악되면서 전통 철학에서 이해되는 주체와 지식
의 관계 또한 푸코적 맥락에서는 완전히 역전되게 된다. 나아가 어떤 특정
한 담론이 주요한 것으로서 인식되고 그것의 실천이 영향력을 가지고 실행
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역사적이고 구체적인 조건들에 대해서 푸코가 한
걸음 더 깊숙이 질문했을 때 그의 중심적인 관심은 권력관계의 장으로 이
전하게 된다. 이제 푸코는 지금까지 당연하게 간주되어 오던 전통적인 이
해방식에 따른 주체는 포기되어야 하며 동일한 이유에서 주체는 더 이상
인식과 행위를 위한 중요한 장소로 이해될 수 없는, 권력의 장이 구성한
하나의 생산물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가 오해해선 안 될 사실은 푸코의 이러한 문제
의식이 결코 주체의 문제를 포기하려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반 인간주의적
형식을 통해 주체의 문제를 재고하려는 시도한다는 점이다. 즉 ‘주체의 죽
음’이라는 도발적인 주장을 통해 푸코가 제기하려는 문제는 우리에게 너무
나 친근하여 비역사적인 영역으로 이동해버린 주체의 개념을 해체하여 특
정한 주체로서 인간을 구성해가는 다양한 방식의 역사와 조건을 탐구하려
는 이른바 ‘주체화’4)의 형식을 탐구하려는 자신의 보다 궁극적인 관심을
함축하고 표면적인 물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주체화’의 형식을
탐구하려는 문제설정을 통해서 푸코는 개인을 특정한 형식을 가진 주체로
구성해 가는 과정을 인식하고 나아가 그러한 한계를 위반하고자 노력하는
4) 푸코는 “나의 목표는 권력의 현상을 분석하려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러한 분석
의 형식을 정교화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대신에 우리의 문화에 있어서 인간이
주체로 만들어지는 다양한 양식의 역사를 창조해오기 위함입니다”라고 밝힌다.
(Foucault, The Subject and Power, p.208. 이하 SP로 칭함)
후기 푸코의 윤리적 문제설정에 있어서의 자유와 비판의 의미(도승연) 113
방식을 통해서 또 다른 양식의 삶의 가능성을 추구하고자 했다. 이러한 맥
락에서 그의 모든 도전들을 고려했을 때 그것은 특정한 방식으로 인간의
주체성을 결정지으려는 예속에 반대하고, 나아가 그와는 다른 위반의 경험
을 획득하기 위한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식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이른바 “자명성과 일반성을 무너뜨
리고 …삶의 위험을 감행하도록 하려는 자발성을 발생시키는 것”5)이라는
푸코의 주장처럼 이제 철학은 진리에 대한 반성작업으로서의 사유의 형식
을 떠나 ‘자기 자신에 대해 물으라’6)는 질문에 응답해야 할 것이다. 즉 우
리 시대의 철학의 임무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보다 확증적인 것으로 정
당화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나란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여
우리가 여태까지 사유해오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부터 도출된 자유로운
사고 안에서 ‘지금, 여기’에서 나란 누구인가의 문제를 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계보학적인 분석을 통해 전통적 주체가 담당해
왔던 허구적인 합법성에 손상을 가하고, 이제 우리 자신의 자유를 위해 돌
아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의 모든 시도는 마치 철학 그 자체로서 우리에
게 다가온다.
이 지점에서 이제 필자는 어렴풋이나마 푸코의 진정한 의도와 주장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그것은 우리의 ‘자아’가 어떻게 특정한
‘주체’로 변화하는 지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 그러한 사실에서 기인된 현대
의 상황이 위기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7) 우리
가 아는 것은 고작 해야 종교적, 과학적, 법률적인 담론들과 그에 관련된
여러 규범의 양식들, 실천들에 의해 해석된 주체의 형식뿐이다.
적어도 자기와 삶과 타인들과의 관계를 구성하는 방식에 대한 푸코의
윤리학적 주장이 삶의 ‘빈곤화’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자들에게 이전과
5) Foucault, “Power and Sex,” p.124.
6) Foucault, “What Our Present is,” p.407.
7) 이때 푸코가 주장하는 “자기에 대한 앎”이란 세계와 자아에 대한 인식의 근원으
로서의 데카르트적인 자기 인식이 아니라 특정한 진리게임을 통해 주체로서 구
성된 다양한 문화적 경험 안에서 자기에 대한 현재의 자기 비판적 태도로서의
비판적 존재론을 의미한다.
114 사회와 철학 제13호
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직시하여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조할 수 있
는 가능성을 부여할 수 있다면, 이러한 자기 창조의 과정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특정한 형태로 고착시키려는 모든 지배적인 요소를 가능
한 최소화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그들의 창조적 활동 안에서 발생하는 실
천과 태도를 현재 살아가고 앞으로 살아갈 삶의 방식에 부여함으로써 자신
의 자유의 공간을 최대화시킬 수 있다면, 이때 그들이 만나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유의 경험으로서의 ‘순간’일 것이며 이것이야 말로 금지의 도
덕을 떠나 자기와의 충실한 관계 안에서의 스스로 획득하는 자유. 그 가능
성에 대한 푸코의 윤리학적 기여일 것이다.
Ⅱ. 위반의 실험을 위한 준비들
1. 푸코적 문맥에서 새롭게 분석된 주체와 권력의 개념
푸코는 흔히 권력과 권력 관계에 주된 관심을 가졌던 철학자로서 여겨
지지만 많은 책들과 인터뷰를 통해, 그는 자신의 목표가 권력의 현상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체화의 과정을 폭로하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즉, 푸코가 행한 것은 권력 그 자체에 대한 이론이라기보다는 근대
의 권력관계에 연계된 주체의 출현과, 어떻게 주체가 권력과 지식의 생산
물로서 구성되는 지는 밝혀내는 것이었다. 우리는 권력의 생산적인 측면
을 날카롭게 포착한 그의 작업들을 통해 그의 주된 관심이 권력이며 그를
이른바 ‘권력의 탁월한 분석가’로서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그가 권력에 천
착한 이유는 지금까지 간과되어 왔던 권력의 생산적인 측면을 드러내어
그를 통해 ‘구성된’ 주체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로서의 기능을 강조
하기 위해서였다. 즉, 권력과 지식의 상호작용을 통해 출현한 주체를 효
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권력의 지배적인 특징인 ‘억압적인’ 권력이라
는 구도가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며, 나아가 만약 주체가 특정한 사
회적 역사적 상황아래서 생산된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주체의 구성을
폭로하는 일은 특정한 사회적, 역사적 상황아래서 작동하는 새로운 권력
후기 푸코의 윤리적 문제설정에 있어서의 자유와 비판의 의미(도승연) 115
의 개념아래 분석될 수 있고 분석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
이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을 통해 비정상적 개인들이 어떻게 ‘대상’으로 만들어
지는지, 어떻게 그들의 행동의 규율의 강요와 처벌, 감시와 강압에 의해
통제되는지를 드러내어 서구 문명에서 발생한 형벌 체제의 변화에 주목한
다. 즉 공개적인 처벌과 요란한 힘의 명시를 과시하여 자신의 권위를 행사
한 군주권력으로부터 감옥체제로의 처벌 방식의 대대적인 변화가 그 효과
와 작동의 기술면에서 질적인 변화를 동반하는데 그것의 주요한 지점은,
사람을 ‘대상’으로 만들어 내는 감옥의 체제가 결코 물리적인 폭력의 형태
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푸코는 군주의 복수에서 감옥
의 고립으로의 형벌 체제의 변화는 사람들의 신체에 폭력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을 주입시키고 그들이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규범을 만들
어 개인을 그 규범에 맞게 개조시킨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보다 구체적인
심급의 형벌의 체제 속에서 판단 내려지고 검사된 수감자들은 자신 스스로
를 학문의 대상으로 간주하게끔 만들어지며 그들은 점점 확고한 방식을 통
해 비정상으로 분류되게 되고 자신에 대해 자기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전문
가들을 스스로 필요로 하게 되며 그들로부터 적절한 처방을 받길 원하게
된다. 교도소의 수감자의 예를 들어 푸코는, 어떻게, 또 얼마나 권력의 기
술이 우리의 학교, 병원, 공장 등과 같은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 퍼져있는
가를 보여준다. 즉 감옥은 우리 사회 전체를 의미하는 하나의 은유이다.
우리는 모두 감옥 속에 살고 있으며, 그 감옥 안에서 우리는 관리되어, 우
리가 속해있는 공동체의 적합하고 모범적인 일원으로, 즉 정상인의 모습으
로 통제, 생산된다. 형벌체제의 변화를 통해 포착된 권력의 작동은 이제
규제와 금지의 부과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장 속에 연
관된 ‘진리’와 관련된 담론적인 실천의 유포를 통해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
되고 있다는 사실에 푸코는 주목하는 것이다.
116 사회와 철학 제13호
2. 성적 욕망의 영역과 기능에 있어서의 특이성
이제 푸코는 이전의 감시와 처벌에서 다루었듯이 단지 범죄자들과 같은
사회적 소수에 자신의 주장을 적용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성의 역사 1
권에서 ‘생체 권력Bio-power’이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으로서 일반화한다. 생체 권력이란 18세기의 자본주의적인 질
서의 팽창과 함께 등장한, 개인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그에 예속
시키기 위한 일련의 일관성을 띠는 권력의 기술Technologies을 말한다.
이것은 크게 두 가시적인 구성요소로서 이루어지는데, 하나는 앞에서 언
급했던, 훈육적 권력이 작동하는 측면, 예를 들어 개인을 과학적 지식의
대상으로 변환시켜 새로운 규범 체제에 따라 예속적인 주체성으로 장착된
이른바 유순한 신체를 만들어 가는 권력의 측면과 또 다른 하나로서 인간
을 종, 혹은 인구, 혹은 기타 성적인 장치들과 관련하여 그들을 과학적인
범주로 나누는 일련의 과정과 제도, 그것에 따른 실천의 측면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성적 욕망은 이제 과학적 연구 아래 측정가능하고, 객관
화가능하고 분석 가능한 어떤 것으로 이해되며 결과적으로 이러한 성적
욕망을 규범적으로, 행정적으로 관리하는 과정들을 통해 인간의 성은 이
제 일종의 사회의 질서와 유지라는 목표와 관련하여 이해된다‐인구의 통
계학이나 공중의 위생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실증적인 과학의 이름으로 진
행되는 예들이 이에 해당한다. 간단히 말해서 이러한 ‘생체 권력’은 근대
의 성적 욕망이란 맥락 하에서 그 효과를 생산하였으며 ‘규율과 관련된
인체의 해부 정치anatamo politics of human body과 인구에 대한 생체정
치bio-politics of the population.8)이라는 두 축을 따라 작동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제 섹슈얼러티는 ‘생명과 생명의 매커니즘을 명확한 계산의
영역으로 편입시키고 권력과 지식을 통해 인간의 삶과 권력의 변화를 작
동시키는 요인’이며9) 동시에 두 측면의 접합점에 위치해있다는 점에서 생
8) Michel Foucault, The History of Sexuality vol.Ⅰ: An Introduction,
p.139. 이하 HS1로 칭함.
9) Ibid., p.143.
후기 푸코의 윤리적 문제설정에 있어서의 자유와 비판의 의미(도승연) 117
체 권력의 효과적인 작동을 위한 전략적 거점을 확보하게 된다.
‘어떻게 개인들이 훈육 기술의 수행에 의해 유순한 신체로 만들어지는
가?’의 문제가 감시와 처벌에서의 주제였다면, 성의 역사에서의 논의의 초
점은 ‘우리 몸에 부과된 본성에 의해 어떻게 개인들이 성적인 주체로 만들
어지는가’에 대한 물음인 것이다. 일단 성적인 욕망에 대한 담론들, 이를테
면 심리학, 정신분석학, 범죄학 등에서 주장하듯이 개인들은 성욕이라는 본
성을 가졌으며 그것들을 학문의 대상, 객관적인 지식으로 구체화한 담론의
형식이 형성되면, 개인들의 성적인 활동은 특정 사회가 전개하는 이러한
규범과 실천에 따라 조절되어야 한다.
하지만 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러한 전개에 대해 푸코는 섹슈엘러티
는 자연적인 특성, 혹은 인간 존재의 본성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구성된 인
간 경험의 범주라는 사실에 그 결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본다. 즉, 그것은
결코 생물학적인 기원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그리고
문화적인 바탕 안에서 발생되어 특정한 맥락 하에서만 이해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지점에서 그의 계보학적 분석의 목표는 성적 욕망의 전개
Deployment of Sexuality 하에서 발생한 전략들과 장치들의 상호관계의 흔
적들을 추적하고 또한 섹슈엘러티의 출현과 그 파생물들에 대한 탐구를 통
해 그 구성에 얽힌 역사적 상황을 폭로함으로써, 성적 욕망의 생물학적 합
법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아가 푸코는 우선 우리의 성
적 욕망이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 이래 억압되어 왔다고 보는 이른바, 우리
에게 가장 친근하게 느껴지는 ‘억압가설 Repressive Hypothesis’에 대해 도
전하면서 19세기 이래 성에 대한 담론들은 금지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
물학적, 의학적 규율의 한 부분으로써 성에 대한 담론은 다양한 형식을 통
해서 과도하게 증가하였다고 지적한다. 억압가설에 대한 도전으로서 푸코
가 주장하려는 것은 바로 성적인 행위를 검열하는 의학적, 사회적, 정치학
적 그리고 종교적인 담론들을 단순한 억압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
이다. 성적 행위에 대한 이러한 검열의 모든 면들이, 더욱 많은 담론들과
더욱 많은 연구, 더욱 많은 사례들을 생산해냈으며 그 결과 개인이 그것에
순응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어느새 성적 욕망은 정상과 비
118 사회와 철학 제13호
정상을 구별하는 선으로서 점점 더 진리와 지식의 문제가 되어갔다. 푸코
가 이러한 현상에서 주목했던 것은 단지 성적인 욕망의 억압 그 자체가 아
니라, ‘권력 자체가 작동하는 영역에 있어서 성에 대한 담론이 증가’10)한다
는 역사적인 사실에 있다.
푸코는 성적 욕망의 장치들이 전래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고안
물로서 ‘제도적인 고해’를 지적한다. 처음에는 선택된 소수에게만 해당되었
지만 후에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일반화된, 기독교에서 유래한 이것은 후
에 특히 정신분석학이라는 영역을 통해, 자기 자신을 아는 방법으로써, 그
리고 각자의 욕망이 조절되고 해독되는 방법으로써 종교적인 맥락을 벗어
나 세속적인 실천 안에서 19세기 서구 문화 사회 전체로 확장되었다. 어
떻게 고해가 성적인 욕망의 전개를 더욱 강화시키는 장치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기독교인의 경험의 양식이었던 것이 사회전체로 퍼져 개개
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데 핵심적인 요소로서 작동하고 또 중대한 영향력
을 미칠 수 있었는지를 명확히 하기 위해, ‘섹슈엘러티와 고독Sexuality
and Solitude(1980)’에서 발췌한 다음의 내용은 이러한 주장에 대한 더
할 나위 없는 예가 될 것이다.
오거스틴 Augustine 에 따르자면, 아담은 자신의 의지의 존재가 전적으
로 신의 의지에 의존하고 있음을 간과하고서 그러한 신으로부터 도피하여
그 자신의 의지를 획득하려고 했다. 이러한 반항의 결과로서, 신으로부터 독
립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의지한 것에 대한 결과로서, 아담은 자신의 몸의 성
적인 기관에 대한 조절권을 상실하게 된다. 오거스틴에 따르자면 아담이 무
화과나무의 잎사귀로 자신의 성기를 가린 그 유명한 장면은 사실 단순히 성
기라는 존재에 대한 수치심에서 벌어진 행동이 아니라 그의 성적 기관이 그
자신의 의사와는 달리 발기한 것에 대한 수치심에서 기인한 것이다. 발기 상
태의 성을 가진 인간의 이미지는 그러한 신에 대한 대항의 결과로서 인식되
는 것이다. …
성적 기관의 이러한 자율적인 운동의 원칙을 오커스틴은 리비도라 칭한
10) HS1, p.18.
후기 푸코의 윤리적 문제설정에 있어서의 자유와 비판의 의미(도승연) 119
다. 이제 리비도는 그것의 강도와 기원, 효과에 있어서 문제를 가진 것, 나
아가 자신의 의지에 대한 주요한 문제로서 대두된다. 이제 의지는 외부적인
방해에 대한 문제가 아니며 의지는 일종의 내적인 구성요소, 의지의 부분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리비도는 신이 원래 정해 놓은 한계를 넘어섰을 때 생
기는 인간 의지의 한 결과이다. 따라서 리비도에 대항하는 정신적인 투쟁의
수단은 우리가 이전에 알았거나 혹은 잊어버린 현실을 암기하거나 하늘을
바라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오히려 리비도에 대
한 투쟁은 우리의 눈을 안으로 돌려 내 안의 영혼에 대한 문제를 해독함으
로써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은 단지 자신을 통제하는 일일 뿐 아니라 자신에 대한
지식과 자신의 환상에 대해 분석하고 해독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것은 영구
적인 자기 해석의 작업이다. 이러한 관점에 있어서 성적인 윤리란 진리를
추구하려는 엄격한 의미를 의미한다. 이것은 도덕적이고 성적인 행동을 배우
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성적인 욕구를 가진 존재로서 상정
하고 끊임없이 검토하고 분석하는 일을 요구한다.11)
이는 ‘진리’와 관련된 고백의 작동을 설명할 수 있게 해준다. 고해의 기
술은 종교적인 맥락을 떠나 정신분석학의 영역 안에서 편입되어 더욱 과
학적으로 확장, 발전, 강화되었다. 성적 욕망이 한 사람의 주체성, 누군가
의 자아를 지시하는 지표, 척도가 된다는 것에 대한 강한 믿음을 통해 규
율사회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훈육적인 테크놀러지들과 과학적 지식들,
그에 따른 실천들은 이른바 ‘비정상인들의 정상적인 행동’의 형성과 그들
의 올바른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을 보다 용이하게 하였다. 이러한 관점에
서 푸코가 성의 역사 1권의 부제를 프랑스어로 ‘앎에의 의지(La volonté
de Savoir)’로서 명명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제 오로지 진리라는
이름 하에서 한 사람의 숨겨진 욕망을 아는 것에 의해 그리고 그것을 해
석하는 것에 의해 개인을 주체로서 구성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것이
11) Foucault, “Sexuality and Solitude,” p.186. 굵은 글자체는 필자에 의해
강조됨.
120 사회와 철학 제13호
바로 푸코가 도전하는 ‘욕망하는 주체에 대한 해석학’의 기본 구조를 지칭
한다.
이러한 견해를 보다 확장시켰을 때, 성적 억압에 맞서는 해방 운동과 그
담론들에 대한 푸코의 회의적 입장은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보인
다. 푸코는 성적인 억압에 맞서는 그 모든 시도들은 그들이 억압에 대항해
아무리 격렬하게 반기를 들며 전복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을 취한다 할지라
도 그러한 모든 실천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섹슈엘러티라는 개념을 전제
하기 때문이다. 푸코에게 그것은 결코 충분하지 않다. 그 모든 억압에 반
하는 운동들과 그것과 연관을 가진 담론들은 결국 동일한 매커니즘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며 더욱 과격하게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근대의 섹슈엘
러티가 낳은 부가적인 효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푸코는 해방
의 개념을, 그것이 이데올로기적 왜곡과 기만이라는 의미에서 환상일 뿐이
라고 거부한다. 억압으로서든 해방으로서든 이것들은 푸코가 끊임없이 도
전해왔던 권력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의 맥락 안에서만 정당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렇다면, 권력이 마치 혈관처럼 미세하게 퍼져있
는 힘들이 역동적 장 안에서 해방의 순간은 결코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권력 관계들로부터 완전히 달아날 수 없으며, 순수한 의미에서의
해방의 순간도 부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비관적인 결론은 푸코를 다음과 같은 비판들에 직면하게 만들었
다. ‘도대체 지배적인 권력관계에 맞서 저항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
인가?’ ‘왜 우리는 저항해야 하는가?’12) 이러한 질문들은 푸코로 하여금
더 이상 권력 관계들의 생산적인 측면만을 조명하는 분석가로 머무르게 하
지 않고, 동시에 그가 거부하는 환상으로서의 해방을 전제하지도 않으면
서, 어떻게 하면 인간을 특정한 주체성으로 고착시키는 지배적인 권력 관
계들을 넘어서서 저항할 수 있는가를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보다 실용적
인 길을 찾도록 이끌게 된다.
12) Nancy Fraser, “Foucault on Modern Power: Empirical Insight and
Normative Confusions,” p. 283.
후기 푸코의 윤리적 문제설정에 있어서의 자유와 비판의 의미(도승연) 121
Ⅲ. 푸코의 계보학적 비판의 기획
‘생체권력’이라는 개념이 푸코에게 논의된 것은 감시와 처벌을 통해서 였
지만 저서를 통해 처음 개념적 용어로서 명명된 것은 성의 역사 1권의 초
반부에서였다. 그러나 성의 역사 1권의 후반부로 가면서 본격적으로 등장
하고 그로부터 8년 뒤의 작업들을 통해 보다 명시적인 문제로서 제기된
성적 욕망의 문제를 설명하기에 생체권력이라는 개념이 결코 충분한 것은
아니었다. 푸코가 성의 역사 1권에서 성적 욕망에 대한 근대적 경험을 우
리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다루기 시작하면서, 구체적인 제
도(감금소, 감옥, 병원 등)의 영역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지배 지향적인 형
식을 떠나 자기가 스스로를 구성하는 실천 안에서 주체화의 양식을 바라보
려 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푸코가 지금까지 주장해왔던 주체
의 개념을 다시 돌아가, 그가 말하는 주체가 권력과 지식의 연관되어 구성
된 어떤 것이면서 동시에 스스로의 주체성을 경험하는 어떤 것이라는 점을
상기했을 때, 주체화의 한 축을 구성하는 후자의 측면에 대한 설명은 주체
의 양식을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해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푸코는 권력과 지식의 분배와 효과, 그리고 성에 대한 계보학을 넘
어서, 개인이 성적인 실천들을 통해 자기와의 관계를 구성하고 스스로를
주체로서 인식하는, 즉 자기가 맺는 자신과의 관계를 조명하고자 한다. 이
것이 바로 푸코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업으로서의 ‘주체에 대한 계보학’을
말한다. 하지만 어째서 그는 ‘성의 역사’의 계보학을 떠나 ‘주체의 계보학’
으로의 전환을 꾀했는가? 왜 자신이 그동안 전문적으로 탐구해 왔던 16‐
19세기라는 시대를 떠나 오독의 여지가 있는 낯선 고대로 돌아가 그들의
주체화 양식에 대해 질문했던 것일까?
푸코가 주체의 자기 구성에 있어서의 관계들의 형식과 양태를 분석한다
고 했을 때 이것은 단지 근대적 섹슈얼러티에 대한 비판일 뿐 아니라 종속
의 관점에서 구성된 주체가 아닌, 개인 스스로 자신을 주체로서 정립시키
는 측면을 강조하기 위한 전환적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종속의
관점에서 구성되는 주체성의 형성 조건과 작동에 대한 푸코의 논의가 구체
122 사회와 철학 제13호
화되면 될수록 특정한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를 주체로서 구성하는 자기 구
성적 측면에 대한 문제가 논쟁적으로 대두하게 되기 때문에 이제 성의 역
사에 대한 계보학적 구도와는 달리 앞으로 진행될 주체의 계보학에서 섹슈
엘러티는 이전의 중요성을 상실하게 된다. 왜냐하면 19세기에 이르러 비
로소 탄생한 이 새로운 섹슈엘러티라는 개념은 심리학적, 공중위생학적,
교육적, 종교적, 사법적인 다양한 영역들과 긴밀하게 연결되고, 그에 근거
한 다양한 지식의 영역들이 인간을 대상화하는 주체화의 방식을 통해 지속
적으로 전개되면서 섹슈엘러티와 주체성의 문제는 너무나 친숙하고 밀착되
어 분리가 불가능한 마치 비역사적인 관계처럼 사유되었기 때문이었다. 따
라서 섹슈엘러티를 중심으로 한 주체화의 종속적 맥락 하에서는 결코 스스
로의 경험을 통해 주체성을 구성하는 측면을 상상하는 것조차 힘들다는 사
실을 인지한 푸코는 섹슈얼러티가 탄생하기 이전으로 돌아가 다시 주체화
의 양식의 가능성을 물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 결과 ‘주체의 계보학’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푸코의 후기적 문제설정은, 욕망하는 주체를 해석하고
그에 대한 진리와 연관하여 주체를 구성하기 이전의 시대인, 고대의 그리
스, 로마 시대로의 우회로를 택하고 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주체는 스
스로 자신을 주체로 구성하는 방식을 망각하게 것일까? 그것은 단지 성적
욕망을 해석해야만 했던 기독교의 영향 때문인가? 어떻게 고대인들은 성
적인 실천에 있어서, 쾌락의 자제를 통해 자신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는
가? 보편적인 도덕 규범에 따르지 않고, 성적 욕망이라는 객관적 대상을
해석하는 일 없이 어떻게 그들은 스스로를 성적인 주체로서 자신으로서
바라보는가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푸코는 질문하며 고대인들이 자신과 맺
는 관계들의 기술에 대해 바라보고자 한다. 이러한 주체의 계보학이라는
문제설정을 통해, 푸코는 궁극적인 의미에서의 계보학적 목표에 더욱 가까
이 접근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개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에 직면하여
그 위반의 실험을 감행하고 나아가 그것의 틈을 벌려 자신과의 새로운 관
계를 맺어나가도록 추동하는 것, 이것이 계보학을 통해 우리가 달성하려고
한 궁극적인 목표라는 점에 동의했을 때, 그의 ‘주체의 계보학’은 이와 동
일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후기 푸코의 윤리적 문제설정에 있어서의 자유와 비판의 의미(도승연) 123
1. 행위들의 행위로서의 ‘통치’
근대 국가의 출현과 더불어 나타난 생체권력에 대한 푸코의 논의들은
기존의 권력에 대한 부정적 이해대신 그것의 생산적인 측면을 제시하면서
분석의 관점을 보다 구체화시켰다는 방법론적인 장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
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육체에 각인을 새기는 듯한 물질적 효과를
통한 일면적인 경향’13)으로 권력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비난 받아왔다. 특
히 푸코가 주장하는 주체가 지식과 권력의 연관 작용에 의해 종속된 대상
이면서 동시에 그 자신의 주체성을 스스로 경험하는 그 어떤 것이라고 했
을 때, 후자의 측면은 오직 유순한 신체만을 생산해내는 생체권력과 같이
‘대상화시키는’ 성격이 강한 권력의 개념만으로는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비난과 관련하여 푸코 자신도 “내 작업의 두
번째 부분에 있어서 나는 ‘나누는 실천들’이라고 부르게 된 것들에 관한 연
구를 해왔습니다. 즉 주체는 자신의 내부 안에서 나누어지는가 하면 혹은
타인으로부터도 나누어집니다. 이러한 과정은 그를 대상화시킵니다… 마지
막으로 나는 인간 존재가 스스로를 주체로 변형시키는 그 방식에 대한 연
구를 하고자 했습니다”14)라고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아래, 이제 생체
권력이라는 용어는 푸코의 후기연구에서는 사라지게 되고 1978년 콜레지
드 프랑스Collegé de France의 첫 강의에서 등장한 ‘통치government’이
라는 새로운 용어 속에 개념적으로 포섭되는데 푸코는 통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권력의 실천은 행위의 가능성을 인도함으로써, 그리고 가능한 결과를 명
령함으로써 구성된다. 권력은 근본적으로 두 적대자들 간의 대결이나 연결이
아니라 통치의 문제이다. 통치라는 말은 이 말이 16세기에 가졌던 매우 넓
은 의미로 허용되어야 한다. “통치”는 정치적인 구조나 국가의 관리를 의미
하는 것으로 국한되지 않으며 오히려 이것은 개인이나 집단의 행위를 이끄
13) Lois Mcnay, Foucault: Critical Introduction, p.85.
14) SP, p.208.
124 사회와 철학 제13호
는 방식으로서 구상되었다: 아이들에 대한 통치, 영혼에 대한, 공동체에 대
한, 가족에 대한, 병자에 대한 통치들이 있다. 통치한다는 말은 타인의 가능
한 행위의 장을 구조화하는 것을 뜻한다. 15)
통치의 가장 근본이 되는 개념은 다름 아닌 가정의 통치이며 이것은 이
코노미economy로서 정의된다. 즉 통치의 기예art는 ‘이코노미를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하는 방법의 문제를 중심으로 떠오르는데 이와 같이 가정을
부유하기 만들기 위해서 개인의 재화를 보다 어떻게 올바르고 효과적으로
관리할 것인가의 문제는 국가라는 수준에서 적용되었을 때, 통치의 의미는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된다. 즉, 근대국가의 출현이라는 사건에 이코노미를
도입시켰을 때 ‘통치’의 의미는 연방제가 실패한 뒤 중앙집권 형식을 가진
국가의 정부식의 권력을 의미하며 이것은 마치 가장이 가정을 돌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정부, 국가 수준에서 관리하는 라는 것으로서의 통치를 지
칭하게 된다. 이것을 푸코는 ‘통치성governmentality’이라고 부른다. 근
대 국가의 이러한 관리에 대해서 푸코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국가를 통치한다는 것은 이코노미를 전체 국가 수준에 적용하고 확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국가 내의 국민들, 그들의 재화, 개개인과 인구 전
체의 행동에 대한 통치를 의미하며 가장이 그의 가계와 재화를 다루는 것과
같은 주의 깊은 감시와 통제의 형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16)
약 18세기의 자본주의적인 질서의 발전과 더불어 등장한 인구의 팽창은
인구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근대국가에 있어서의 통치의 문제를 재정의하도
록 하였다. 푸코는 성의 역사 제 1권에서 생체권력이 인구를 통제하는 방
식과 관계하는 인구에 대한 주제를 처음 소개하였는데 이제 생체 권력이
근대 국가의 통치성 개념을 통해 보다 포섭, 확장되면서 인구의 문제 또한
15) Ibid., p.220.
16) Foucault, “Governmentality,” p.92.
후기 푸코의 윤리적 문제설정에 있어서의 자유와 비판의 의미(도승연) 125
이코노미로서의 올바르고 효과적인 관리의 주제와 연관된 구체적인 인식의
문제로서 떠오르게 된다.17)
푸코에 따르면, 근대 국가의 작동은 결코 편협한 정치적 의미에서의 지
배 로 국한되지 않으며 오히려 ‘안전 기구 Apparatus of security’18)
들을 통한 기술적인 사용을 통해 인구의 문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관리하
는, 통치라는 관점에서의 통치성의 실천으로서 연합되어 확장되어 왔다고 본
다. 인구의 문제를 근대 국가가 관리하는 데 있어서 일련의 안전기구들
은 두 가지 근본적인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푸코는 파악한다. 하나는
사람들과 그들이 맺고 있는 사물들과의 연관을 보다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사람들이 서로 사물을 교환하고 작업하는 과정에서 있어서 아무 문제없이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방식들과 관계하는 폴리스Police
의 개념으로써 접근하는 것이다. 이때 폴리스가 담당하는 역할을 금지적인
기구나 그러한 실천으로 편협하게 이해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사물들을 보
다 잘 정리하고 사회를 보다 낫게 만들려는 노력이라고 보아야 한다. 안전
기구를 통해 실천되는 또 다른 접근 방식은 근대 국가의 통치성의 기술에
있어 보다 결정적인데, 이것은 사목권력Pastoral power과의 연관 하에
서 진행된다.
마치 통치라는 개념을 가정의 수준에서 고찰했을 때 가장이 모든 가족
구성원들과 그들 소유의 재화와 권련된 모든 문제를 세심하게 돌보아야
하는 것처럼, 사목권력과 연결되어 실행되는 권력의 기술들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실행될 때에도 인구 각각의 대한 매우 세심하고 끊임없이 전개
되는 지식을 가지고 그들을 통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때 양 떼의 목
17) “인구는 통치에 장악되어 있는 객체이며, 동시에 통치에 대해서 그것이 무엇
을 원하는 지 알고 있지만 무엇이 행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객체이기도 합니다. 인구를 형성하게 되는 각개인의 의식수준에서의 이익이나
인구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특별한 이익이나 열망과는 관계없는 인구 전체의
이익으로서의 이익, 이것이 인구 통치에서 새로운 목표이며 근본적인 도구가
될 것입니다. 즉 이것은 새로운 기예art의 탄생, 또는 어찌 되었건 일련의 전
혀 새로운 전술들과 기술들인 것입니다.” (Ibid, p.100.)
18) Foucault, “Politics and Reason,” p.77.
126 사회와 철학 제13호
자로서의 사목이라는 개념은 원래 헤브류Hebrew인들이 사용하던 것으로
써 목자의 역할은 양 떼들을 모아서 세심하고도 개인적인 지식을 바탕으
로 그들을 구원시키고자 하는 것19)인데 이 사목이라는 개념은 특정 공동
체의 일원의 상태에 대한 앎에 대한 강조부터 영혼에 관한 지식의 획득
에 대한 강조로 변환되면서 ‘양심의 인도나 자기 검증적인 기술’20)들을
통해 영혼에서 발생하는 일에 대한 지식의 획득을 강조되면서 그것이 기
독교적 전통 안에서의 통제의 형식으로서 점차 강화된 것이다. 자기의 기
술로서, 기독교적 정체성으로서 특징화된 이러한 측면들은 결과적으로 모
두 통치적인 기술로서 병합되게 된다. 이제 내세에서의 구원을 목적하는
초기의 사목의 주제가 근대 국가에서의 사회적 안전을 위한 관심으로 전
이하는 과정에서 폴리스와 사목권력의 개념은 점차 개인을 개별화면서
동시에 전체화하는 근대국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통치의 기술들로 변
모해가게 된다.
통치의 기술을 특징짓는 이 두 측면 개별화하고 전체화하는 것은 우리
로 하여금 푸코가 이전에 비난했었던 생체권력과 동일하게 전개되는 작동
방식을 연상시킨다. 사실상 푸코의 통치성 개념이 생체권력에 깊은 뿌리를
두고서 발전된 것이긴 하지만 생체권력과 통치성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
한다. 즉 생체권력의 경우 유순한 신체의 개인을 만들기 위해서 권력의 물
질적 효과를 향한 일면적인 차원을 강조했다면 통치성의 경우, 통치에 반
대하여 스스로를 주체화하는 힘의 작동을 허용하는 범위로까지 확장된 보
19) “통치와 관련한 몇몇 주제들이 사목이라는 헤브류인들의 개념 안에서 발전되
었습니다. 첫째, 목자는 토지보다는 양 떼에 대해 주된 권력을 행사합니다.
둘째, 목자는 그의 양 떼를 모으고 인도하며 지도합니다. 셋째, 목자의 역할
은 끊임없이 개별화된, 돌봄을 통해 자기 양 떼의 구원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넷째, 목자는 그가 보살피는 양 떼를 위해 활동하고, 일하고, 노력하여야 하
고 개개의 양들에게 주의를 기울여 세밀히 살펴야 합니다. 따라서 목자의 권
력의 양 떼의 개별 구성원들에게 기울여지는 주의를 의미합니다.”(Ibid., pp.
61-63).
20) 자기검증과 양심의 인도 등은 고대 그리스에서 쓰이던 자기 기술들이었으나
이것이 기독교 전통 안에서 사용되면서 개별적 지식을 획득하는 방향으로 상
당 부분 변화를 겪게 된다.
후기 푸코의 윤리적 문제설정에 있어서의 자유와 비판의 의미(도승연) 127
다 포괄적인 개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비록 통치성이 어떤 지점에서는 이전 보다 더욱 세밀화된 방식으로 개
인을 대상화하는 힘으로서 작동할 뿐 아니라, 사회적 규범과 관료적 전개
를 통해 개인의 주체화 방식에 있어서 부정적인 측면으로서 간주된다 할지
라도 그러한 통치적 기술들이 오직 지배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지는 않는다
는 점을 푸코는 누차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전의 생체 권력이 가지는
대상화하는 힘들을 통치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보다 정교한 방식으로 보충
함으로써 그것을 규율적인 통제보다는 일종의 규제의 기술로서 이해했기
때문이다. 맥내이Mcnay의 “개인들을 규제하여 발생한 주체화 과정은 그
러한 통치의 형식들이 보다 구체화될 수 있는 저항의 기반을 제공한다” 21)
고 주장도 이러한 푸코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상이한 권력 관계들이 작동하는 복합적인 현실의 장을 보다 정확하게
그려내려는 푸코의 시도는 그로 하여금 권력의 문제를 재구성하도록 만
들었다. 즉 ‘권력관계가 진정 권력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다음의 두 요소들의 기초 아래 구체화될 수 있다. 그 한 요소란 타자(권
력의 행사를 받는 사람)가 자체의 목적상 행위하는 자로서 철저히 인지
되고 주장된다는 점이며 또 한 요소는 반응, 반작용, 결과, 가능한 고안
등의 전 영역이 권력의 관계에 직면하여 열려진다는 점이다.’22) 권력 관
계를 자유로운 양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열린 장에서의 작용이라고 명시
적으로 밝히고 있는 푸코의 언급을 통해 통치란 다른 편의 행위를 변경
시키려고 의도하는 또 다른 한 편의 시도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통치는 ‘행위를 위한 행위’23)를 지칭한다. 다시
말해 통치의 존재이유는 강압을 위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행위들이 그들
의 의도대로 유도하고 이끌어 가능한 결과를 이루려는 행위의 방식인 것
이다.
21) Lois Mcnay, Foucault: A Critical Introduction, p.123.
22) SP, p.220.
23) Ibid.
128 사회와 철학 제13호
권력은 자유로운 주체들에 대해서만 행사되며, 또한 이들이 자유로운 경
우에만 가능하다. 이로써 우리는 다양한 행위 방식이나 반작용, 그 밖의 다
양한 구성 요소들이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에 직면하게 되는 개인적
이고 집단적인 주체를 의미한다. 결정 요소들이 전체에 침투되는 곳에서는
권력의 관계는 있을 수 없다. 노예가 사슬에 묶여 있을 때의 그의 상태는 결
코 권력의 관계가 아니다.24)
그 결과, 근대적인 권력의 역동적 장안에서 행위들의 행위를 할 수 있는
어떤 능력을 부여받은 ‘자유로운 개인’25)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전의 대상
화시키는 힘으로서만 이해되었던 권력의 이론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들이 ‘개별화하
는 통치’의 규범적인 힘들에 대항할 수 있는 윤리적인 지점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개념을 통해 확보된다는 점은 이후의
푸코의 윤리적 문제설정으로 이어지게 되는 커다란 전환점으로서 작동하게
된다.
푸코는 개인에게 특정한 정체성을 고착시키려는 통치의 기술들에 저
항 하는 일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밝히는 작업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무
엇인가를 거부하는 일을 통해 가능하다고 역설적으로 주장한다. 오늘날
우리가 누구인가를 거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그러한 실천들이 기
반을 삼아야 할 것은 개인을 주체로 만들어가는 그러한 방식들과 자기
자신을 떼어놓는 일이며, 이 떼어놓음이라는 거리화가 가능한 분석을 이
끌어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이 발생한 특정한 힘들의 장 안에서, 그
리고 그러한 힘들이 가능했던 역사적 배경아래서 진행되어야 한다고 푸
24) Ibid.
25) 푸코가 말하는 자유로운 개인이란 결코 추상적 자율성을 부여받은 인간을 의
미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상황적인 권력 관계의 상호작용 속에서 부여
받은 일종의 역량을 소유했다는 의미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즉 한 개인이
그를 둘러싼 사물과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다양한 처분과 결정을 내릴 수 있
고, 스스로 자신의 경험을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으며 나아가 스스로
를 변환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는 의미에서 그는 자유로운 개인이다.
후기 푸코의 윤리적 문제설정에 있어서의 자유와 비판의 의미(도승연) 129
코는 강조한다.
저항의 첫 번째 단계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거부하는 일이라면, 당연하게
도 그 다음의 단계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거부한 그 자리에 주체성의 새로
운 형식을 창조하는 일일 것이다. 만연한 권력의 형식에 의해 부과된 규범
화되고 개별화된 주체성이 아니라 저항의 과정으로서의 실질적인 내용을
제공할 수 있는 어떤 것, 자신에게 스스로 부과한 그러한 경험과 정체성이
물어져야 할 것이며 이것은 곧 푸코에게 윤리의 문제를 의미한다. 하지만
새롭게 창조된 정체성을 기존의 것과 대체시킨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아
마도 푸코는 그러한 정체성을 창조해 나가는 그 과정에서 개인이 스스로의
경험에서 기인한 주체성을 만들어 간다는 과정적인 측면을 더욱 강조하고
있기에 이것은 곧 통치성의 개별화와 전체화에 대한 부단히 거리두기, 그
틈을 겨냥한다는 점에서 주체가 추구하는 자유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된
다고 할 수 있다.
저항의 이러한 이중적인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 푸코는 두 가지의 방
식 혹은 순간들 안에서 작동하는 계보학을 제안하는데 그 중 하나는 사유
의 현재적 방식이 변환하는 순간으로서, 그것을 포착하여 현재를 진단하는
방식이고 또 다른 방식은 우리의 실존에 대한 역사적 질문을 제기하는 방
식이다. 이 두 질문의 양식을 통해 특정한 방식으로 사유하고 행하고 말하
는 현재의 나라는 주체의 우연성을 파악하게 되고 결국은 그러한 우연적
경험들과 나 자신의 구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두 질문이 현재
의 자신에 대한 비판적 존재론이라는 문제설정이라는 구도 안에서 서로 조
우하고 중첩된다고 했을 때 이제 푸코의 계보학은 스스로의 주체화를 문제
삼는 윤리적 물음으로 결정적으로 전환하게 된다.
2. 위반의 가능성과 현재에 대한 비판
‘형이상학’에 기반을 둔 현실적인 실천들의 정당화하려는 모든 시도들에
대한 거부로서, 혹은 연속체로서의 역사가 아닌 그것의 불연속성을 탐구하
려는 그의 비판적인 지적 태도를 고려했을 때 푸코가 특정한 영역의 역사
를 연구한다는 것은 곧 그것이 암묵적으로 함축하고 있었던 형이상학적
130 사회와 철학 제13호
가정들을 무너뜨리는 것,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자연적이고도 필
연적인 사실의 역사적인 구성을 드러내어, 과거와는 다른 현실의 가능성
을 상상할 수 있는 전복적 기획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푸코가 니체로부터 빌려온 ‘계보학’을 자신의 방법론적인 전략으로 삼았
을 때 그것은 “현재의 문화적 현상들의 역사적 변형과 구성을 드러내어
어떻게 발생하였는가의 설명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26)을 의미했으며, 그
를 통해 푸코는 기원으로 회귀하거나 사건들을 꿰뚫는 초월적 본질로서
모든 것을 설명하는 대신 그것의 우연성에 빛을 비추고 그것의 역사적인
조건들을 드러낼 수 있는 한에 있어서, 즉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현재
의 실천들을 바꾸어볼 가능성이 있는 지의 잠재성을 타진하는 방법적인
전략으로서 유효한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푸코의 계보학적 기획이
문제 삼는 ‘현재’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일이 무엇보다 필수적인데, 앞에서
도 이미 언급했듯이 그의 주요한 관심의 문제가 다름 아닌 ‘주체의 형식’
이며, 보다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우리가 현재의 주체로서 구성되었는가’,
나아가 ‘지금,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라는 이라고 했을 때 우리의 그
의 모든 비판의 기획은 현재에 대한 질문을 통해 그 극점을 이루게 되
기 때문이다.
역사에 대한 계보학을 자신의 방법론적 도구를 삼은 이후, 푸코의 주체
에 대한 관심은 다음의 ‘세 가지 영역’으로서 명시적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의 주체로서 구성되는가?
우리는 어떻게 권력 관계 안에서 행사하거나 행사를 받는 그러한 주체로
서 구성되는가? 어떻게 우리는 자신의 행위의 도덕적 주체로서 구성되는
가” 27)
첫 번째 질문은 특정의 과학적 담론 안에서 말하고 생활하고 노동하는
구성된 주체에 대한 그의 관심들의 결과로서 초기의 저작인 광기와 문명
26) Hubert Dreyfus and Paul Rabinow, Beyond Structuralism and Hermeneutics,
p.106.
27) Foucault, “What is Enlightenment?” p.49. 이하 WE로 칭함.
후기 푸코의 윤리적 문제설정에 있어서의 자유와 비판의 의미(도승연) 131
과 사물의 질서에서 주로 다루어졌다면, 보다 규율적인 방식에서 진행된
두 번째 질문을 통해 푸코는 지식과 권력의 대상으로서의 주체에 대해 분
석의 초점을 두었으며 관련 논의들은 주로 감시와 처벌과 성의 역사 전반
부에서 찾을 수 있다. 이제 성의 역사의 나머지 부분과 관계하는 그의 마
지막 질문에서 현재의 비판적 존재론에 대한 탐구는 보다 명시적으로 드러
나게 되는데 이것은 경험으로서의 성적 욕망의 역사를 통해 기독교적 전통
에 깊숙이 새겨져 있는 욕망의 주체의 해석학을 다시 구성해 내는 일이었
다. 하지만 성적 욕망의 해석을 통해서 특정한 정체성을 이끌어내려 했던
서구의 전통은 근대에 이르러 더욱 성공적으로 계승되면서, 더욱이 그것이
공공의 이익을 위시하여 사회 전체적인 제도와 장치들을 통해 통치성이라
는 이름으로 개인을 개별화하고 그들을 전체화하려는 기술들과 깊은 연관
을 가지게 되면서 이제 섹슈엘러티와는 별개로 개인의 주체성을 사유하려
는 일련의 실천은 모두 낯선 것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주체성의 고착화,
혹은 정체성의 예속이라는 위기에 직면하면서 푸코는 지금까지 우리를 주
체로서 구성해온 기존의 문화적 지평의 자명함과 필수성을 공격하고 그것
이 역사적 정당성을 폐기하기 위해서 주체화의 역사에 대한 계보학을 감
행을 통해 ‘어떻게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성적 욕망의 주체
로서 구성해 내는가?’ 하는 세 번째의 문제설정으로 진입하게 된다.
비록 주체의 계보학이라는 기획을 감행함에 있어서 푸코가 다루는 분석
의 영역이 달라지고 그로 인한 방법론적인 전환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이
것이 이전의 푸코가 제기했던 질문들과 공유하는 동일한 지반이 있다면 그
것은 ‘어떻게 개인이 특정 주체로 변화하여 가는가’의 역사적인 과정을 이
해하고 그 많은 측면에 있어서 인간 스스로 주체가 되기 위해 자기의 기술
들과 어떠한 연관을 맺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설정이라는 것, 그것은 결코
변화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앞서 두 개의 연구 영역들 ‘지식의 형성과 그것의 실천을 규제하는 권력
의 체제’28)에 있어서, 즉 주체의 경험의 역사에 대한 접근하는 이러한
28) Foucault, The History of Sexuality, Vol Ⅱ:The Use of Pleasure, p.4. 이하
UP로 칭함.
132 사회와 철학 제13호
연구의 방법들은 이미 개인을 대상화하는 힘들을 논의하면서 논의되었던
부분이다. 따라서 푸코가, 개인이 자신을 스스로 주체로서 구성해 가는
주체화의 양식을 탐구하는 영역에 대한 마지막 질문에 집중하는 과정에
서 이전의 연구에서 이미 다루어왔던 내용을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처
럼 취급한 것이 전개의 문제에 있어서 심각한 약점으로는 간주되지는 않
을 것이다. 다른 영역들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상대적인 집중의 차이가
그것의 정당성을 완전히 부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도덕적
주체로서의 개인을 이끄는 주체화 과정에 대한 푸코 후기의 질문은 이전
의 두 영역과 완전히 분리되어 전개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전의 문제
의식들이 이루어놓은 바탕이 없었더라면 착수되지 못했을, 그러나 그 당
시 바라보던 방식 안에서는 정교화되지 않았던 부분을 예전과는 다른 새
로운 방식을 통해 그것을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타진한다는 점에서 분명
푸코의 윤리학적 전환에는 방법론적 단절, 그 이상의 의미로서 이해되어
야 할 것이다.
푸코 자신도 후기의 인터뷰를 통해 그 당시 자신의 작업은 어떻게 개
인 이 지식과 권력의 대상으로서 구성되는가의 문제에 너무 몰두해 있어
서 자신의 이전의 작업을 가지고서는 주체화 양식의 긍정적인 측면을 읽
어 내기 힘들었다는 점을 순순히 인정하고 있듯이 그는 이전의 논의들에
서는 포착해 낼 수 없었던, 즉 주체화 방식의 자발적인 측면을 이끌어 내
기 위해서, 생체권력보다는 보다 넓은 운신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통
치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문제를 바라보고 또 그러한 통치성과 끊임없이
대결하면서 스스로를 구성해 가는 자기 구성적인 주체의 가능성을 도출
해 내려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윤리학적 문제설정이 ‘개인이 스스
로를 주체로서 인식하고 구성함으로써 자기와 관계를 맺는 형식과 양
태’29)에 대한 탐구하고 했을 때, 또 그것이 이전의 작업들 안에서 주체와
의 양식을 탐구할 때는 결코 인식하지 못했던 측면에 대한 새로운 대응
으로서, 명료화 된 문제의식으로서 발전되었다는 관점에서 그의 전환
29) UP, p. 6.
후기 푸코의 윤리적 문제설정에 있어서의 자유와 비판의 의미(도승연) 133
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의 윤리에 대한 문제가 성급하지 않게, 보다
생산적인 맥락에서 읽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의미 있는 한,
주체에 대한 푸코의 계보학은 현재를 진단하고 ‘지금 내가 누구인가’의 문
제를 물을 수 있는 우리 자신의 역사적 존재론으로서, 그 안에서 자유의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는 푸코의 비판적 기획의 극점으로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푸코가 현재에 대한 이러한 비판의 기획을 통해 우리에게 주장
하려는 바는 단순히 어떤 특정한 정체성을 우리에게 부여하고 그것을 고착
시키려는 현재의 문화적 현상들을 전적으로 경멸하고 거부하라는 요구가
아니며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재료로 삼아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보라는 일종의 전환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완고해 보이고
당연해 보이는 모든 문화적 현상들은 무너뜨릴 수 없는 기원적 배경을 가
지고 우리에게 주어진 실체가 아니며 우리가 스스로를 위해 다른 방식으로
변경시킬 수 있는, 우리 앞에 직면한 새로운 과업일 뿐이다. 후기 작업에
서 그는 이러한 삶의 방식의 전환과 창조의 가능성을 ‘존재 미학’이라고 명
명하고 있으며 이것은 푸코가 주장하는 자유의 개념과 연결되어 금지의 도
덕이 아닌 자기 배려로서의 윤리적 관계를 통해 보다 심층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3. 윤리학적 전회로의 배경에 대하여
보편적인 진리와 이성이라는 이름 하에 인간의 경험을 특수한 방식으
로 통제하려는 모든 시도들에 대항하여 저항과 위반을 꿈꾸며 자신의 삶
과 열정을 바쳤던 실천가, 근대적 사유를 가장 뛰어난 방식으로 넘어선
이 사상가가 성의 역사 2권 이전의 논의에서 내린 결론, 진정한 주체인
‘나’는 존재하지 않으며 주체란 단지 역사적으로 형성된 구성물에 불과하
다는 이 비관적인 주장이 성급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권력이 없이는 주체란 존재하지 않으며 권력과 그것의 관계만이 영구적
인, 따라서 그 어떤 것도 권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그로테스크한 세
134 사회와 철학 제13호
계의 그림. 이러한 비관적인 주장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한
다. “도대체 저항을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하는 한, 푸코가 계보학적인 분석을 통해 기존의
권력의 관계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을 추구한다고한들, 우리가 만나게 되는
유일하고 영원한 것은 오직 권력뿐이며 그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다는 참담한 결론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주체의 형식을 거부하기 위함
이든, 주체화의 방식을 탐구하기 위함이든 지간에 상관없이 –분석의 도구
를 권력으로 삼고 있는 푸코에게는 매우 심각한 비판으로서 작용하게 된
다. 권력의 그치지 않는 효과라는 현실 안에서, 푸코는 보다 ‘실재적인’ 방
식에서 저항의 문제를 재구성해야 했을 것이다. 이때의 보다 실재적인 방
식이란 도대체 무엇이 이루어져야 하고, 무엇을 우리가 이루어야 하는가의
문제라기보다는 저항이라는 실천의 영역에서 우리가 무엇을 이룰 수 있는
가의 측면으로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접근을 의미한다: 만약 권력 외의
다른 어떠한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고 우리의 현실은 다양한 형식의 지배뿐
이라면 그러한 권력 관계의 현실 속에서 저항에 대한 묻는 질문이야말로
가장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보다 실재적인 관점은‐무엇을 우리가 이룰 수 있을 것인가를 가
지고 저항을 평가한다 했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적어도 우리 삶에서
의 지배와 착취의 형식을 가능한 한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즉 자신의 외부
로부터 작동하면서 자신을 통제하고 규제하는 규범들 대신에 자신의 내부
로부터 추동되어 자기를 통제하고 시험할 수 있는 어떤 장으로서 자리를
주체로 만드는 자기 구성적인 측면이 이전의 주체화 방식에 비해 보다 자
유로울 것이라는 실재적인 전략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은 외부로
부터가 아닌 나로부터 나온 것. 해석되고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고
배려하는 것으로서의 자기 구성을 의미한다. .
주체화의 양식을 구성하는 세 번째의 질문, 어떻게 인간은 욕망하는 자
신을 도덕의 주체로서 구성해내는가의 문제에 대해 푸코는 이른바 ‘자기
에의 배려’라는 고대 그리스인과 라틴인들의 삶의 양식, 즉 자신의 취약
한 욕망의 지점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통해 어떠한
형식을 자신에게 부여하는 새로운 주체화의 양식을 통해 윤리적인 측면
후기 푸코의 윤리적 문제설정에 있어서의 자유와 비판의 의미(도승연) 135
을 새롭게 발견했던 것이다. 성적 욕망을 해석해내려는 기독교적 전통에
영향을 받지 않은 그 이전 시대의 성의 역사를 고찰하면서, 지금의 우리
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욕망, 쾌락, 성적 행위를 바라보고 스스
로를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배려의 대상으로 바라보던 그 이전의 시대
속에서 푸코는 실재적인 전략의 가능성을 만나게 된다. 고대인들의 자기
구성에는 권력 관계들에 의해 통제되고 보편적 진리의 이름으로 해석되
고 발견되는 그러한 주체화 방식과는 다른 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고 푸
코는 주장한다. 고대인들은 스스로를 도덕적 주체로 구성해 가지만 이것
은 체제나 제도에 의한 복종에 의해서가 아니라 ‘권력을 행사하고 자유
를 실천함에 의한 행위의 정교화와 스타일’30)에 의해서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푸코가 고대 그리스, 라틴인들의 윤리적 문화를 그의 방법론적
인, 실재적인 전략으로 삼을 때 오해해서 안 될 점은 그들의 문화와 윤리
를 어떤 해결책이나 대안으로서 제시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언제나
일관적인 입장을 고수해왔듯이, 그는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완
결된 해답의 체계를 거부해왔으며 근대의 서구문명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
기와 관계를 맺어가는 고대인들의 삶의 방식을 통해 우리를 특정한 주체로
구성해 왔던, 과학에만 의존하는 그러한 편협한 방법이 아닌,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만날 수 있다는 하나의 가능성을 시사하
고자 했다.
주체화의 양식의 계보학을 탐구하려는 푸코의 기획은 이제 윤리라는 주
제어를 가지고 이전과는 다른 일종의 전환을 맞이했지만 이러한 감행에는
분명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타당한 많은 근거들이 존재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또 그러한 근거들은 그의 전체 문맥 안에서 서로 긴밀히 얽혀
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작용하고 반작용하며 존재하고 있다. 우선 그가
해방의 개념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취했을 때, 특히 성적인 억압에 대항
하는 운동들에 대해서 그러한 시도들은 단지 성적 욕망의 전개를 공고화하
는 효과로서 진행될 뿐이며 기껏해야 동일한 역학의 장 안에서 얻는 소정
30) UP, p.23.
136 사회와 철학 제13호
의 이익만을 얻을 뿐이라고 혹평할 때, 이러한 비판에는 아마도 일상의
삶을 관통하는 권력에 대해 대응하는 개인의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동
일한 권력의 장에서 발생하는 저항과 지배는 그저 자리의 변동일 뿐이라
고 푸코는 간주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체의 개념의 경우에도 기존에
그가 주장했던 대상화하는 권력의 생산물로서 간주되는 그러한 주체의
개념에 의존해서는 어떠한 저항도 불가능했을 것이며, 심지어 왜 저항해
야 하는가의 동기부여마저 힘든 상황에서 주체는 저항의 장소를 상실한
다. 하지만 행위자 없는 저항의 개념은 상상하기가 조차 힘들다. 따라서
푸코가 비판과 저항의 기획으로서의 계보학이 더 이상 자신의 임무를 수
행하지 못할, 심각한 타격을 받고 막다른 골목에 직면했을 때, 이러한 이
론적인 봉착은 저항의 사상가이며 실천가인 그를 매우 의기소침하게 만
들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8년의 공백 후 그는 주체와 권력의 문제를 이전
보다 더욱 실재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했으며, 그러한 방식으로 저항
할 수 있는 전략으로서 주체 안에서 작동하는 지배의 문제를 가능한 한
최소화 할 수 있는 윤리의 문제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윤리
학적 전환은 이러한 이론적 봉착에 직면한 푸코의 필수불가결한 탈출의
방법이었으며 동시에 실재적이며 저항적인 효과를 가진 전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쾌락의 자제적인 활용과 배분의 기술을 통해 자기의 삶에 일정한 스타
일을 부여하고, 자기 자신과 충실한 관계를 맺어 나가는 그들의 자기 구성
적 방식은 기독교적 경험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푸코에게 매력적인
방식으로 다가와 큰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을 종속시키는
방식과 관련하여 만연해있는 현실의 권력 관계에 대한 저항의 잠재성을 가
진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때 철학의 역할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것이 아
님을, 새로운 사유와 행위의 가능성을 창조하기 위함이라는 그의 주장을
다시 진지하게 고찰했을 때,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31)라는 에세이에
31) 칸트의 소론은 1784년 Berliniche Monatsschrif(Berline Monthly)에서
발표되었다.
후기 푸코의 윤리적 문제설정에 있어서의 자유와 비판의 의미(도승연) 137
대한 푸코의 답변을 통해 그가 고지했던 비판의 관점을 보다 분명히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푸코의 에세이는 칸트의 같은 제목의 소
론을 태도와 비판이라는 관점에서 재평가한 글이다. 푸코는 칸트의 계몽
(Aufklärung)이라는 개념을 인용하며 이것은 우리를 ‘미성숙’32)의 상태로
부터 탈출하려는 일종의 출구(Ausgang)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즉, 칸
트적인 맥락에서의 계몽은 독단이나 자기의 이성을 무분별하게 사용함으로
써 발생한 미성숙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출구를 의미하며
“개인적으로 성취되어야 할 용기 있는 행동’33)으로서 이해된다. 하지만
푸코는 계몽에 대한 칸트의 관심은 우리 지식의 어떤 한계를 지으려는 시
도에서 시작되었기에 그것은 부정적인 방식에서 특징지어질 수 있다고 주
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가 주장하는 ‘알려고 하는 개인의 용기 있
는 행위’로서의 ‘근대성을 태도의 문제로 이해’34) 하려는 푸코의 의도와 관
련하여 의미 있는 시사점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이라는 현실에 관계하는 양식이며 특정한 사람들에 의한 자발적인
선택을 말한다. 또한 이것은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을 말하며 또한 그것은
스스로를 한 과업으로써 표상하고 귀속감을 표시하는 행위와 행동의 양
식’35)으로서 태도를 이해했을 때, 현재에 대한 비판적 반성을 통해 성숙
의 상태에 도달하려는 칸트적인 계몽은 ‘우리의 역사적인 시대에 대한 영
구적인 비판’36)의 한 예가 되는 동시에 근대성을 구성하는 결정적인 요
소가 된다고 푸코는 주장한다. 칸트적 계몽에 대한 푸코의 이러한 해석은
이제 근대를 단순히 역사적인 시대로 간주하지 않고 영구적으로 현재의
자신의 삶의 방식에 도전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태도나 조건의 문제로
보게 한다. 이러한 비판적 태도를 통해 현실에서의 성적 문제에 접근했을
32) WE, p.34
33) Ibid., p.35
34) Ibid., p.38.
35) WE, p.39.
36) Ibid., p.42
138 사회와 철학 제13호
때, 푸코가 도전하려 한 것은 ‘출구’로서 명시된 성적 억압에 대한 해방이
아니라 기존의 문화적인 한계들을 위반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양식을 발
명하려는 하나의 태도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푸코가
계몽에 대한 칸트적 구상을 왜 부정적인 방식으로 특징지었는지가 보다
분명히 드러나는데, 결국 칸트적 계몽의 기획은 우리의 이성의 사용에 어
떤 한계를 지으려는 목적에서 구상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관련하
여 푸코의 기획은 우리의 현재를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상상하기를, 실
천하기를 추동시킨다는 점에서 그러한 부정적 방식의 문제설정을 넘어서
는 것이다
계몽에 관한 푸코의 기획은 다음이 언급을 통해 보다 명시적으로 드러
난다: ‘한계에 대한 분석과 성찰이 곧 비판이다. 지식의 한계를 규정짓는
것이 칸트의 작업이었다면 오늘날 중요한 문제는 긍정적인 방식으로 표현
되어야 한다. 필연적인 한계라는 방식으로 추진된 비판은 이제 가능한 위
반의 형태를 모색하는 실천적 비판으로 바뀌어야 한다. 비판은 더 이상
보편적 가치를 가지를 갖는 형식적 구조에의 탐구라는 형태로 진행되어서
는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 자신을 형성케 하고 우리의 행위, 언술, 사유
의 주체로 스스로를 파악하게 만든 사건에 대한 역사적 탐구로서 비판이
실천되어야 한다.’37) 푸코에게 있어서 비판이란 더 이상 형식적인 구조의
한계나 조건을 명시하기 위해 분할선을 긋는 일이 아니며 계몽과 관련하여
찬성이냐 반대냐의 양자 택일을 해야 하는 선택의 입장이 아니다. 만약 계
몽이 우리의 역사적 존재론이라는 영역에서 비판적인 태도의 역할을 담당
해야 한다면 이것은 보다 긍정적인 방식을 통해 가능한 위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푸코는 칸트가 제기했던 계몽의 문
제를 현재에 대한 ‘비판의 태도’라는 측면으로 규정함으로써 계몽이라는 근
대의 정신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해내었으며 동시에 그러한 근대의 정신
을 통해 우리의 현재에 대한 역사적 존재론으로서의 계보학과 연결시키면
서 진정한 비판의 정신이란 무언가의 한계를 긋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위반의 실천이라는 것을 주장함으로써 칸트식의 비판을 넘어서
37) WE, p.45.
후기 푸코의 윤리적 문제설정에 있어서의 자유와 비판의 의미(도승연) 139
려는 것이다.
이때 푸코가 만나게 된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의 삶과 사상은
그가 주장하는 비판의 정신을 근대식으로 보여준 전형적인 인물이었으며,
그를 통해 푸코는 비판으로 근대성을 인식하고, 나아가 그것을 적극적으로
삶에서 구현해 낸 이른바 ‘존재미학’으로서의 가능성을 탐지하게 된다. 그
리하여 푸코는 ‘끊임없이 유동하는 근대성을 단순히 인식하고 수용하는 것
만이 그것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그러한 운동에 대해 일정한 태
도를 취해야 하는데, 즉 이 순간을 넘어서거나 다음에 오는 것으로 바라보
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안에 내재하는 영원한 그 무엇을 포착해 내
려는 의도적이고 어려운 노력’38)이라는 보들레르의 주장을 의미 있게 받
아들인다. 현재라는 순간은 우리의 삶으로부터 쉽게 도망쳐 버리는 유동적
인 것이기에 세인들은 그것을 잡으려고 노력하지만 보들레르는 ‘근대성의
태도는 스쳐가는 그 순간을 유지하거나 영속화시키기 위해서 그것을 신성
한 것으로 취급하지 않으며’39) 오히려 그 유동적인 순간에 참여하고 도전
함으로써 변화의 기반을 모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그
러한 위반의 실험은 오직 현재를 숭배함으로써 동시에 그것을 파괴함으로
써만 가능하다고 보들레르는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근대성에 의한 위반을 꿈꾸는 보들레르의 시도는 ‘실재
하는 것의 진리와 자유의 실천사이의 힘겨운 교류’40)를 의미한다고 푸코
는 지적한다. 이 때 보들레르의 사유에서 드러난 ‘진리와 자유에의 실천사
이의 힘겨운 교류’는 푸코 자신의 이토스ethos와 개념적인 측면에서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푸코가 계보학적 기획을 감
행하면서 현재를 위반을 위한 기반으로서 간주하고 자신으로부터 추동된
규칙들에 스스로를 단련시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해 가는 존재의 미학
은 기존의 문화적 경험들과 그 안에서 다르게 사유하고 행위하려는 자유의
실천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미학은 보들레르의 근대성의 태도와
38) Ibid., p.39.
39) Ibid., p.40.
40) WE, p.41.
140 사회와 철학 제13호
근본적으로 동일한 태도를 지칭한다고 보인다.
보들레르가 이해하는 근대성이란 자신의 ‘현재’에 대해서 맺는 비판적
인 관계일 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사이에서 성립되는 관계에 대해서
도 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는 자신과 맺는 이 관계의
양식을 ‘댄디즘’이라고 부른다. 이때의 댄디즘이란 ‘스스로를 복잡하고 어
렵게 정제된 대상으로 만드는 작업’41)으로 만드는 작업이며 이것은 ‘이것
을 가능하게 하는 근대성의 태도는 필수불가결하게도 금욕주의와 연결되
어 있다’42)고 주장한다. 즉, 보들레르 식의 댄디Dandy는 그 자신의 ‘몸,
행위, 감정과 정열, 그리고 그의 존재와 관련하여 스스로를 예술작품’43)으
로 만들려는 노력을 통해 어떤 특정한 스타일을 자신에게 부여하고 그를
통해 스스로를 평균적인 사람들과 구분되도록 애쓰는 그러한 인물을 지
칭한다. 따라서 보들레르의 댄디는 그의 ‘진정한’ 자기나 ‘억압된’ 자기를
찾아 스스로 자유를 찾으려는 인물이 아니며 스스로의 형식을 창조하고
구상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예술과 철학을 자신의 실존 안에서 중첩시키
려는 매개자이다.
보들레르의 이러한 관점은 자신의 삶을 작품으로 만들려는 푸코의 존재
미학적 관점과 매우 유사한 것이었다. 보들레르가 금욕적인 정제를 통해
얻어진 자아의 구현이 일상의 현실과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힘들고 오직 이
와는 다른 독특한 영역으로서의 이른바 ‘예술’44)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동일한 이유에서 푸코 역시 자신의 존재의 미학으로서의
삶의 실천에 대한 주장이 과학적인 지식과 보편적인 규칙을 강조하는 아카
데미나 기존의 철학체계에서 용납되기는 힘들 것임을 예상했던 것처럼, 이
두 사상가는 주어진 삶의 실존을 위반하기 위해 무엇보다 시급하게 요구되
는 것은 지배적이고 독점적인 과학적 담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어떤
41) Ibid.
42) 이것은 기독교적인 의미에서의 금욕과 동일한 용어가 아니며 오히려 진리와
자유사이의 교류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아름답고 빛나게 만들려는 실천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43) Ibid.
44) WE, p.42.
후기 푸코의 윤리적 문제설정에 있어서의 자유와 비판의 의미(도승연) 141
능력으로서의 ‘미적인 경험’을 주장하는 듯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의 주장
안에는 자신의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매뉴얼과
지침표를 요구하는 듯한데, 그것이 –후에 더욱 자세히 논의되겠지만 –
미학적인 측면 안에서 논의된다고 했을 때, 이것은 자신의 삶의 선택과 방
식을 통해 타인에게 ‘아름다운’ 삶이었다는 영향을 주려는 의지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논의되는 ‘아름다움’은 결코 예술작
품과 관련된 기호의 차원이 아니며 그렇다고 대상의 사물적인 특징도 아닌
경험의 측면이기 때문이다.
푸코의 존재미학의 내용적인 측면은 니체 사유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간주되는데, 단적으로 푸코가 고대 그리스인들의 존재의 미학은
‘절제할 줄 아는 삶의 척도는 진리에 근거한 것으로 어떤 존재론적 구조에
대한 존중인 동시에 어떤 가시적 미의 윤곽’45)으로서 생각했다면, 니체의
경우 ‘삶의 광채는 오직 스스로를 환희의 대상으로서 간주하고 그에게 자
기 스타일과 어떤 특성을 부여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푸코가 그의 존재미학을 구상함에 있어서 니체로부터 받은 영향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자기의 삶을 예술의 대상 삼아 특정한 스
타일을 그에게 부여한다는 형식‐부여Form-giving적 측면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푸코의 존재미학의 개념을 도식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그
동기는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비판의 문제를 태
도로 받아들여 이것을 보다 긍정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라면, 그것의 내용은
니체의 자기 스타일적 개념에 기반을 둔 것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푸코의
존재미학은 그 구도면에서 칸트와 니체의 중심적인 문제의식이 중첩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그의 존재미학을 정치적인 상황과 연결시켜 바라보았을 때, 존재
미 학으로의 그의 윤리학적 전환과 관련된 많은 이론적이고 암묵적인 언
급들이 당시 그를 둘러싸고 벌어진 실재의 정치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그 당시 푸코는 폴란드와 이란
의 정치상황에 깊은 환멸을 느끼게 되었고, 따라서 개인이 어떻게 자기
45) UP, p.89.
142 사회와 철학 제13호
와 충실한 관계를 맺으며 스스로를 구성해 나가는가의 문제보다 더 의미
있는 정치적인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대
로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비판의 문제에 대한 전환으로 이어져 개인을 윤리
적 관심의 주체로서 강조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존재론적인 조건으로서의
자유의 개념을 고민하게 되었다는 추론이 결코 무리는 아닐 것이다.
Ⅳ. 결론
푸코가 일생을 두고 감행한 비판의 기획은 결국 주체성이 역사적으로
어떠한 경험으로써 구성되는가와 관련된 진리의 게임에 대한 탐구로서 요
약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푸코의 사상적 궤적이 남긴 문제와 흔
적들을 통한 결과론적인 평가임이 분명하다. 특정한 종류의 지식이 가능한
앎의 조건들을 분석함으로 전통적 주체의 개념을 거부했을 시절의 푸코는
담론과 앎의 조건 밖에서 작동하는 권력 관계들, 그 실증적인 효과들에 대
해 효과적으로 질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식의 대상으로 구성되는 주체
를 분석하려는 이론적 발판을 습득하기 위해서 그는 기존의 억압적인 권력
의 특성이 아닌 생산적으로 작동하는 권력이라는 구도의 틀을 도입하였고
그를 통해 대상화하는 권력의 생산물로서의 주체의 모습을 보다 효과적으
로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생산하는 권력의 작동이 스스로를 주
체화하는 개인을 설명해 낼 수 없는 일면적 차원에 머무름으로써 푸코는
저항의 공간을 마련할 수 없었으며 자유라는 역량적 개인도 상상할 수 없
는 치명적인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다시 그는 인간을 대상화하는 생체 권
력이 아닌 행위를 위한 행위로서의 통치의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다시 자유
로운 행위를 할 수 있는 가능적 행위자로서 개인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
고, 자기의 통치화의 기술들에 대한 탐구로서의 윤리학적 전환을 꾀하게
되었던 것이다.
분석의 영역은 언제나 변화했고 논의가 성숙의 시점에 도달했을 땐 언
제나 그는 다른 방향으로의 전환을 꾀해야 했다. 그를 위해 때로는 자신에
후기 푸코의 윤리적 문제설정에 있어서의 자유와 비판의 의미(도승연) 143
게 익숙한 근대의 길이 아닌 낯설고 먼 고대로 우회해야 했고 자유로운 역
량을 가진 개인을 확보하기 위해 ‘행위를 위한 행위로서의 통치의 개념을
도입하여 기존의 생체권력이 가진 이론적 실패를 인정하고 권력 작동의 정
의를 재조정해야 했다. 스스로 행했던 이전의 작업을 통해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현재를 보려 하지 않았던 이 위험한 철학자는 스스로도 철저하게
인식하지 못했던 사상적 노정을 따라 결국 부정과 도약, 비난과 전환을 거
치면서 비판의 극점에서 제기되는 ‘주체화의 계보학’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변화를 수반하는 경험만이 진실한 경험이듯이 푸코는 근대성으로 구성
되었던 자신의 주체성과 그 형성의 조건들로부터 그와는 다른 삶의 방식과
틈을 상상함으로써 스스로를 변환시키려는 경험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자신의 삶에 새로운 형식을 부여하는 위반의 양식을 통해 얻게 되는 자유
의 경험을 그는 존재미학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푸코에게 있어서 존재
미학이란 고정된 상태를 지칭하는 것도 아니고 삶의 완결을 보장해주는 그
무엇도 아니다. 이것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결코 끝나지 않을 과
제로서의 과정적 작업이며 경험을 지칭할 뿐이다. 그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주장할 때 그것은 한 개인이 순수하게 그로부터 발생한 어떤
자의적인 규범이나 형식들을 스스로 창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정체성이나 그러한 정체성을 상당 수준에서 결정짓는 도
덕적 선택들은 불가피하나 이미 만연해 있는 지배적인 담론, 혹은 제도나
실천의 영역들과 중첩되어 존재하기 때문이다. 존재미학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것이 한편으로는 우리의 윤리로서의 실천과 다른 한편으로는 지식
과 권력에 의해 행사된 통치의 기술들, 그 힘들이 충돌하는 틈 안에서 존
재한다는 사실이다. 즉 존재의 미학은 결국 자신의 자유를 얻기 위해 모든
지배와 종속의 양식을 최소화하려는 투쟁 안에 존재한다고 푸코는 주장
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자신의 삶에 미적인 특징을 부여하려는
새 로운 삶의 양식으로의 전환을 단지 경계의 내부인가 아니면 외부인가의
문제로서 받아들이거나, 혹은 어떤 대안의 제시로서 인식해서는 안 되
며, 이것은 오직 우리가 그러한 경계 ‘위’에 존재할 때에만 획득할 수 있
144 사회와 철학 제13호
는 실천의 윤리로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존재미학의 장소는 아름답게
보이는 그 명칭과는 달리 우리의 삶과 정체성, 그리고 자유의 문제를 가지
고 서로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 힘의 장, 전쟁터만큼이나 치열하고 역전
적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정체성의 예속에 항거하는 윤리적 저항이기 때문
이다
따라서 푸코가 감행한 후기의 윤리학으로의 전환을 보다 생산적인 방식
에서 평가하기 위해서는, 단지 그가 행한 방법론적인 전환을 단순한 단절
로서 혹은 권력의 이론화에 실패한 자의 도피로서 받아들이기보다는 오히
려 푸코가 윤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로부터 다시 출발하여 그의 전
환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진행
되는 치열한 정치적 문제제기이며 나아가 우리 각자의 역사적 현실에서 당
면하고 있는 자유의 공간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점에서 그가 전회한 윤리학
으로의 문제설정은 각각의 실존의 맥락에서 보다 지속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푸코의 비판의 기획의 극점으로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