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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의 노래

인서비1 2009. 3. 20. 08:15

항아리의 노래

                                                                  

                                                                     김 자연

 

 

 

                                                                                                                                     

순이네 집 옥상에는 항아리가 여러 개 있습니다.


 어느 맑은 날이었습니다. 고추장 항아리가 어깨를 으쓱 거리며 말하였습니다.


 "조금 있으면 순이 할머니가 고추장을 퍼 가시겠지? 순이 할머니는 고추장에 오이를 푹  찍어 먹는 걸 좋아하시니까 말이야. 뭐든지 고추장처럼 화끈한 게 좋아. 얼마나 정열적이야! 미적지근한 것은 ㅓ딱 질색이라고!"


 " 또 흥분하는군. 너는 그게 문제야. 너무 성격이 매워서 남을 이해하거나 용서할 줄 모르지. 생각해 봐. 중요한 것으로 하자면 소금을 담고 있는 나지. 소금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다고. 그래서 나는 이 소금을 아끼고 지켜야해."


소금 할아리가 팔짱을 끼며 말하였습니다.


 " 흥! 너는 역시 남을 칭찬하는 데에도 짜구나. 너는 모든 일에 너무 인색해."
고추장 항아리가 얼굴이 벌겋게 되어 소리쳤습니다.


 "허허, 또 흥분하였네. 이제 그만하자고. 소금이든 고추장이든, 무엇인가를 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잖아? 그보다 행복한 일이 또 어디 있겠나?"


 "오랫만에 옳은 소리 하는군. 하기는 저기 있는 금간 항아리를 좀 봐. 언제나 비어 있잖아? 아무것도 담을 수 없으니까 누가 관심이나 가져 주겠어?"


 소금 항아리는 고추장 항아리의 말을 듣고 금간 항아리를 쳐다보았습니다.
 "누가 아니래. 금간 항아리와 같이 산다는 게 창피해."


 "나도 그래 여보게 날씨도 좋은데 우리 함께 노래나 부르자고!"


 순이네 집 옥상에는 노랫5소리가 널리 퍼져 나갔습니다.

 


 하지만, 노랫소리가 울려 퍼질수록 금간 항아리는 슬퍼졌습니다. 


 "하루하루 이렇게 산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야. 아무것도 담지 못하고 쓸모 없는 몸으로 살아갈 바에야 차리리 벼락이라도 맞아 산산이 부서지는 게 나아!"


 금간 항아리는 마침내 울먹였습니다.


 '하필이면 야구공이 왜 나에게로 날아왔을까? 담넘어 날아온 야구공 때문에 즐겁던 내 인생은 달라지고 말았어. 나는 잘못한 게 없어. 옥상에 얌전히 있었을 뿐이야. 나는 이제 아무것도 담을 수 없어. 이건 너무 억울해!"

 

 

 


 밤이 깊어 갔습니다. 금간 항아리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거리면 밤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한줄기 바람이 금간 항아리 앞에서 머뭇거렸습니다. 금간 항아리는 바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 조금 쉬었다 가도 괜찮을까요?"


 금간 항아리는 자기 귀를 의심하였습니다. 고추장 항아리와 소금 항아리도 눈을 크게 뜨고 바람을 바라보았습니다.


 "지금 뭐라고 말하였어요?"


 "당신에게 앉았다 갔으면 해서요. 하루 종일 골목을 돌아다니며 감나무잎과 오동나무 잎을 흔들고 놀았더니 다리가 아프네요."


 "정말이에요? 내 가슴에 들어와 쉬어 가겠단 말인가요?


 "다른 항아리 가슴에는 된장 고추장 간장 소금이 가득 담겨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네요. 그러니 허락해 주세요,네?"


 "물론이에요. 어서 들어오세요ㅣ"


 금간 항아리는 바람에게 자기의 가슴을 활짝 열어 주었습니다. 바람는 금간 항아리 가슴에 안겼습니다.     
 " 아! 참 편하네요. 당신은 편안하고 따뜻하군요."


 "하지만 나는 금간 쓸모 없는 항아리인걸요."


 "당신이나 저 항아리들이나 하나도 다를 게 없어요. 똑같은 그릇이지만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지요. 고추장을 담으면고추장 항아리 소금을 담으면 소금 항아리가 되는 거죠."


 "그럼 나는 바람 항아리가 되겠네요?"


 "어디 바람뿐이겠어요? 달빛을 담으면 달빛 항아리, 햇살을 담으면 햇살 항아리. 당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어요. 당신은 아무것도 담지 않고 비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잖아요?"


 "정말인가요?"


 "그렇고 말고요. 비어 있다는 것은 앞으로 무엇이든지 담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거예요. 희망이 있는 거지요."


 금간 항아리는 바람의 말에 목이 메었습니다.


 '그래 내가 왜 그 동안 금이 간 모습만 탓하고 가슴을 열지 못하였을까? 왜 쓸모 없다고만 생각하였을까? 가슴을 열어야 해. 가슴을 열자, 가슴을. 더 활짝.'


 그러자 금간 항아리 가슴에 달빛이 가득 담겼습니다. 금간 항아리는 달빛을 꼬옥 껴안았습니다.


 '아, 난 달빛을 담을 수 있구나! 별빛도, 햇살도, 하늘도 담을 수 있구나!'


 금간 항아리는 기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밝은 달 아래 순이네 집 옥상에는 희망의 노래가 은은히 울려 퍼져 나갔습니다.